식생활과 지속가능성

식생활 정책의 요즘 화두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다. 미국 영양교육행동학회, 일본 영양개선학회 등 세계 각국의 대표적인 식생활 분야 학회가 올해 들어 모두 식생활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었을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민의 식생활 지속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북한 주민은 또 어떨까.
 

지속가능한 식생활은 요즘 식품학계의 최대 화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속가능한 식생활은 요즘 식품학계의 최대 화두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지난해 영국 식생활 정책의 대가로 손꼽히는 팀랭(Tim Lang) 박사가 「지속가능한 식생활(Sustainable Diets)」이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했다. 팀랭 박사를 비롯한 다수의 학자들이 지속가능한 식생활의 의미와 특성을 주장하면서 빈번하게 인용하는 정의는 다음과 같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이란 현재와 미래세대를 위한 식품안정성과 건강에 기여하며,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정도가 적은 것이다. 또한 자연과 인간 자원을 최적화하면서, 생물 다양성과 생태계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문화적으로 수용 가능하며, 접근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공정하며 적정한 가격의 식생활이다. 영양학적으로 적절하며, 안전하고, 건강한 것도 지속가능한 식생활이다(2010년 유엔식량농업기구ㆍFAO 발표).”

다소 장황한 이 문구를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람의 건강과 함께, 지구와 사회의 건강을 함께 지키는 식생활 또는 건강ㆍ환경ㆍ상생을 위한 식생활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는 ‘지속가능한 식생활’을 일찌감치 추구했다. 2010년 농림축산식품부를 중심으로 전개된 ‘녹색 식생활’이란 정책을 통해서다. 정권이 바뀌면서 명칭이 ‘바른 식생활’로 달라지긴 했지만, 추구하는 핵심가치는 ‘건강’ ‘환경’ ‘배려(감사의 마음)’로 대동소이하다.

물론 ‘녹색 식생활’이나 ‘바른 식생활’은 세계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지속가능한 식생활’과 비교했을 때 상생이나 사회적 공정성의 가치가 부족하긴 하다. 하지만 선진적 식생활 정책이 우리나라에서 일찍 시작됐다는 점은 놀라운 사실임이 분명하다.

 

흥미롭게도 이 지점에선 또 다른 이슈가 떠오른다. “북한 주민의 식생활은 지속가능할까”이다. 4ㆍ27 남북정상회담 이후 우리 사회의 최고 관심사는 단연 남북교류와 평화다. 남북교류가 활성화되고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면 ‘통일의 꿈이 실현될 날 또한 머지 않으리라’는 희망도 커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남한 사회의 곳곳에선 ‘통일시대’의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9월 20일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의 대북영양정책지원실이 개최한 ‘보건ㆍ영양분야 남북협력의 실제와 과제’라는 정책세미나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다. 이 세미나에서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북한 주민, 특히 북한 어린이들의 영양 실태가 심각한 수준에 다다랐음을 강조했다.

이는 근거가 확실한 주장이다. 최근의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2500만 북한 주민 중 41%(1030만여명)에 이르는 주민이 영양부족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식량기구(WFP)의 2017년 기아지도에서도 북한은 아시아 국가 중 유일하게 영양결핍 비율이 ‘매우 높은’ 국가로 표시돼 있다.

북한 내부자료의 결과도 비슷하다. 2017년 실시된 북한 종합지표조사에서 북한의 5세 미만 어린이의 약 19%는 만성영양실조로 나타났다. 이는 1998년의 조사에서 보고된 62%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고, 2012년의 28%보다도 크게 떨어진 수치다. 하지만 선진국의 만성영양실조 비율은 3% 미만이라는 점에서 북한의 실태는 심각한 수준이다.

지속가능한 식생활의 숨은 뜻

물론 영양실조 문제는 북한만의 얘기가 아니다. 지구상엔 기아와 영양결핍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여전히 많다. 식생활의 지속가능성을 논하기 위한 출발점인 건강의 기초적 니즈조차 충족하지 못하는 국가들이 수두룩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북한의 안타까운 실상은 우리에게 특별할 수밖에 없다. 영양ㆍ건강의 격차가 통일 후 남북주민의 실질적 통합의 장애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다.

 

그렇다면 2018년 현재 우리나라 국민의 식생활은 지속가능한 수준일까. 북한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긴 하지만 대한민국 식생활의 지속가능성 역시 상당히 낮은 수준이다. 영양공급 과잉으로 인한 비만, 이로 인한 다양한 대사성 질환은 우리 국민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탄소발자국이 큰 식품(육류ㆍ수입식품)의 소비 증가, 과다한 음식물 쓰레기의 생산, 식품 포장재의 남용 등 환경적 요인을 감안해도 우리나라 식생활의 지속가능성은 매우 낮은 수준이다. 사회적 공정성 측면도 마찬가지다. 일례로 우리나라에선 공정무역ㆍ동물복지ㆍ문화적 수용성 등이 식생활의 주요 가치로 인식되거나 논의되지는 못하는 실정이다.

북한 주민 영양개선 사업 재개해야

유엔이 국제사회에 제시한 지속가능 개발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ㆍSDGs)를 달성하는 데 식생활이 기여할 것이라는 점에 이견을 제기하는 이는 없다. 식생활은 가장 직접적으론 식량안보 확보와 연관이 있다. 또한 SDGs의 두번째 목표인 ‘기아 종식’ 달성과 상관관계가 깊다. 이밖에도 건강과 웰빙, 지속가능한 소비와 생산, 기후변화 대응 등 SDGs의 세가지 목표와도 식생활은 밀접하다. 이를 풀어 설명하면 사람들이 지속적인 식생활을 선택해야 먹거리의 생산과 유통이 지속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을 준비하는 지금, 한반도의 SDGs를 달성하기 위해 식생활의 지속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정책적 노력이 절실하다. 가령, 2009년 여느 대북사업과 마찬가지로 중단됐던 북한 주민의 영양개선사업을 재개하는 건 중대한 과제다. 통일 한반도의 지속가능한 식생활, 남과 북이 머리를 맞대고 협력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윤지현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교수 hoonyoon@snu.ac.kr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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