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서울 제2장 생가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진짜 생가터가 있다.[사진=연합뉴스]
충무로 인쇄골목에는 이순신 장군의 진짜 생가터가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순신 장군이 태어난 곳 : 충무로 인쇄소 골목

서울 중구 마른내로 47. 명보아트홀의 주소입니다. 명동성당이 근처에 있고, 백병원도 이 부근에 있습니다. 명보아트홀의 옛 이름은 명보극장입니다. 지금은 CGVㆍ롯데시네마 등에 밀려났지만 예전엔 참 유명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적지 않은 차와 사람들이 명보아트홀 앞을 오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무심히 스쳐 지나갑니다. 극장 앞에 자리잡은 ‘충무공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의 존재 자체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참고: 조선시대에 충무공 시호를 받은 분은 아홉명이나 됩니다. 이순신하면 충무공이 떠오르지만, 충무공과 이순신은 동의어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순신 생가터의 표지석은 이뿐만이 아닙니다. 거미줄처럼 얽힌 충무로 골목 깊숙한 곳에 또 하나의 이순신 생가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서울시 중구 인현동 1가 31-2번지 신도빌딩이 둥지를 틀고 있는 곳입니다.  

바로 궁금증이 발동합니다. 사람은 한명인데 생가터 표지석은 왜 두 개일까요? 명보아트홀 앞에 있는 표지석은 1985년 서울시가 세웠습니다. 그런데 이때 많은 사람들에게 표지석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실제 생가터가 아닌 대로변에 설치했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30여년이 흐른 2017년, 뜻있는 분들이 역사학자의 고증을 받아 신도빌딩 자리를 진짜 이순신 생가터로 확정한 다음에 표지판을 설치했습니다. 이곳은 명보아트홀에서 걸어서 5분도 걸리지 않습니다.

자! 이제 역사서에 담긴 이순신의 고향과 집안을 살펴보겠습니다. 이순신은 1545년에 한양 건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건천乾川은 마를 건乾과 내 천川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순우리말로 바꾸면 ‘마른내’가 됩니다. 지금의 서울 중구 인현동, 초동 일대를 옛날 분들은 마른내라고 불렀답니다. 이번에 새로 바뀐 주소명도 ‘마른내로’입니다. 필자의 귀에는 건천동보다 아름다운 것 같습니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서울시 중구 인현동의 이순신 장군 생가터에 설치한 안내판.[사진=뉴시스]
한국 홍보 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팀이 서울시 중구 인현동의 이순신 장군 생가터에 설치한 안내판.[사진=뉴시스]

이순신은 덕수 이씨입니다. 덕수 이씨는 고려 말과 조선 초를 거치며 다수의 과거 급제자와 문신을 배출한 집안이었습니다. 대제학까지 배출한 문신 집안이었지요. 우리가 잘 아는 율곡도 덕수 이씨입니다. 이순신의 바로 손윗세대였습니다.

율곡과 이순신은 서로가 같은 집안 사람이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두분 사이에 왕래가 있지는 않았습니다. 예전에는 이순신의 할아버지 이백록李百祿이 기묘사화에 연루됐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보는 게 정설입니다. 기묘사화는 1519년의 일인데, 1534년(중종 29년), 1540년(중종 35년), 그리고 1546년(명종 1년)에 작성된 실록에 이백록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李貞은 희신羲臣, 요신堯臣, 순신舜臣, 우신禹臣의 네 아들을 두었습니다. 중국 고대 제왕의 이름(복희伏羲→요堯→순舜→우禹)을 딴 것입니다. 이순신은 그 순서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셋째 아들이었습니다. 다만, 이순신의 어린 시절을 기록해 놓은 문헌은 거의 없습니다. 물론 풍문을 기록한 문헌은 있지만 정확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이 문신 집안에서 태어나 무과에 급제했다는 것은 사실이고, 이는 흔한 경우가 아닙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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