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물ㆍ금융 동시 위기 경고음

저성장의 고착화를 막으려면 기업의 투자 욕구를 북돋아주는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민간기업이 활력을 찾아야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사진=연합뉴스]
저성장의 고착화를 막으려면 기업의 투자 욕구를 북돋아주는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민간기업이 활력을 찾아야 많은 일자리가 생긴다. [사진=연합뉴스]

한국경제에 실물경기와 금융시장 양쪽에서 위기 경고음이 울려대고 있다. 그러나 정부 대응은 긴박감이 보이지 않고 단기 대증요법에 머물고 있다. 고용 참사와 투자 부진이 핵심 과제인데 노동개혁과 규제혁신에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실물경기 동향을 나타내는 3분기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0.6%에 그쳤다. 두 분기 연속 0%대 성장이다. 전년 동기 대비로 따져도 2.0%로 9년 만에 최저치다. 냉각된 실물경제의 실상은 수치로 드러났다. 설비투자가 두 분기 연속 감소했다. 건설투자도 마이너스 증가율로 20년 만에 최저치다. 산업 생태계가 무너지는 소리도 들린다. 현대차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76% 급감했다. 

실물경제의 거울인 증권시장도 흔들린다. 주가가 연일 큰폭으로 하락하고 외국인 자금이 빠져 나간다. 코스피는 10월 넷째주에 나흘 연속 연중 최저치를 경신했다. 외국인의 ‘셀 코리아’ 행진이 한달째 이어졌다. 10월 들어 채권시장과 코스피 시장에서 5조원 가까운 자금이 이탈했다. 

코스피 2000선 붕괴가 현실화하리란 비관론이 고개를 든다. 증시 침체는 미중 무역전쟁, 미국의 금리인상, 국제유가 상승, 중국의 경기둔화와 세계경제의 호황 마감 조짐 등 대외요인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실물경기 침체는 대외요인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세계경기가 괜찮았던 지난 3월 이후 7개월째 감소했다. 20년 만의 최장기 마이너스 행진이다. 투자 부진이 고용대란 및 경기침체의 주된 요인이다.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을 외치고 최저임금을 큰폭으로 올렸지만 민간소비는 여전히 부진하다. ‘저투자→저성장→저고용’의 악순환이 우려된다.  

먼저 투자 부진의 장기화를 차단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현 정부 정책에서 투자를 막는 걸림돌이 무엇인지를 찾는 일이어야 할 것이다. 청와대와 경제팀에는 노동자 편에 서서 분배를 중시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인물이 다수 포진했다. 그 결과, 친노동ㆍ반기업 정책이 주류를 이뤘고, 이것이 기업투자를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가 역점을 둬 추진해온 최저임금 인상,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일련의 노동정책을 보자. 경영계의 입장과 시장의 수용능력을 지나치게 간과한 점이 없는지 살펴야 할 것이다. 음식ㆍ숙박업과 도ㆍ소매 유통업, 건물관리서비스업에서의 취업자 감소로 문제점이 드러난 최저임금 정책의 경우 인상속도 조절과 지역ㆍ업종별 차등 적용 등이 검토돼야 한다.

위의 노동정책이 이미 일자리 시장에 진입한 ‘내부자’들의 안정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짐으로써 정작 일자리를 구하는 ‘외부자’들의 취업은 더 어려워지는 부작용을 초래했다는 비판에도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는 앞으로의 노동정책이 탄력 근로 단위기간을 연장하는 등 노동시장 유연화를 고려해야 하는 배경이다.  

0%대 저성장의 고착화를 막으려면 기업들의 투자 분위기를 북돋는 규제혁신이 절실하다. 그러나 현실은 공유경제가 가야 할 길이라면서 택시업계의 반발을 의식해 카풀을 허용하지 못한다. 숙박공유 사업과 빅데이터 활용도 필요성은 인정하면서 진전이 없다. 그리고선 10ㆍ24 혁신성장과 일자리 창출 지원 방안에서 내놓은 것은 고작 유류세 인하와 공공기관 단기 알바 일자리다.  

승차공유 등 공유경제 논란을 카풀서비스 업체와 택시업계 간 밥그릇 싸움으로 보는 것은 단견이다. 이 문제를 풀지 못하면 앞으로 인공지능(AI)이나 5G, 자율주행 등 4차 산업혁명 진행과 함께 정보통신기술(ICT)과 융합하는 많은 산업 분야에서 한국은 뒤처질 수밖에 없다. 

혁신성장을 구호로만 외치지 말고 신산업을 일으킬 규제혁신을 이뤄내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 정책이 노동자 권익보호와 원활한 기업활동 보장, 신성장동력 육성의 균형점에서 출발해야 한다. 지나치게 노동자 편에 서거나 이익단체에 휘둘리고 기존 전통산업에 치우쳐선 신산업이 태동하기 어렵고 경제성장도 지체될 수밖에 없다. 

전통적으로 보수는 성장을, 진보는 분배를 중시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진보 색채인 미국 클린턴 정부와 영국 블레어 정부가 ‘제3의 길’ 정책으로 추진하며 검증된 진보적 경제정책이 이른바 ‘성장 친화형 진보’다. 기업하기 힘들다는 아우성을 재계의 이기주의나 엄살로 치부하지 말고 경청하라. 일자리도, 경제성장도 대부분 민간기업 활동에서 나온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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