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老老 상속, 그 바보 같은 짓
[윤영걸의 有口有言] 老老 상속, 그 바보 같은 짓
  •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 호수 311
  • 승인 2018.10.29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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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자식에게 재산 물려주면…
죽는 날까지 재산을 쥐고 있으면 자식싸움만 부추길 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죽는 날까지 재산을 쥐고 있으면 자식싸움만 부추길 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재산을 자식에게 미리 물려주는 게 좋을까, 아니면 죽을 때까지 손에 꼭 쥐고 있어야 할까. 많은 독자들은 물려줄 게 별로 없다며 다소 시큰둥하게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재산은 많고 적음의 차이일 뿐이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간 남겨놓고 세상을 하직한다. 집 한채 있는 사람도 그렇고 은행에 장례식 비용 정도의 통장잔고라도 있다면 상속을 고민해야 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재산이 있어야 자식과 교류가 활발한 나라다. 그만큼 돈의 가치가 소중히 취급된다. 그렇다고 마지막 순간까지 놓치 않은 돈을 미끼로 자식으로 하여금 찾아오게 만든다면 그 노년은 자식들로부터 존중받는 삶일지 의문이다. 또 하나. 100세에 70세 된 자녀에게 상속한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자녀가 이미 노년기에 접어들었으니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게다.

한국 재벌은 총수가 죽어야만 비로소 승계가 이뤄진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올해 81세. 얼마 전 아들인 정의선(49) 부회장에게 권한을 대폭 넘겼다. 전문가들은 정몽구 회장이 좀 더 일찍 물러났어야 했는데 회사 임직원이나 가족들 중 아무도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지 못해 회사가 수렁에 빠졌다고 한탄한다.

현대차를 글로벌 기업으로 이끈 탁월한 리더십의 소유자인 정몽구 회장은 최근 아들하고 가깝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즉시 해당 임원을 축출할 정도로 ‘판단력’에 의구심을 받아왔다. 연구개발에 총력을 기울여도 해외 선발주자들을 따라가기 힘든 판에 서울 강남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에 10조원 넘게 투자한 배경에는 정 회장의 ‘외고집’이 있었다.

롯데는 아흔살이 넘은 신격호 총괄회장을 마냥 방치하다가 아들 간 경영권분쟁을 초래했고, 신동빈 회장이 감옥에까지 다녀왔다. 삼성도 이건희 회장이 2010년 경영복귀 뒤 후계문제를 조기에 마무리했다면, 이재용이 경영권승계를 위해 뇌물을 준 혐의로 감옥에 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총수가 죽어야 승계가 이뤄지는 후진적인 관행은 역량이 검증되지 않은 3세의 승계와 함께 한국 재벌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수명이 길어지면서 세상을 떠나는 노인이 이미 노인이 된 자식에게 재산상속을 하는 이른바 ‘노노老老상속’은 세계적인 현상이 돼가고 있다. 60대 이상 일본 고령세대들이 보유한 금융자산 규모가 일본 전체 가계금융자산의 70% 가까이에 이른다는 조사결과도 있다. 세계 최장수국으로 꼽히는 일본에서는 치매환자들이 갖고 있는 금융자산이 지난해 기준으로 143조엔(약 1443조원)에 이르러 심각한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일본에서는 또한 고령자들을 상대로 한 보이스피싱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데, 젊은 범죄자들이 경찰에서 “나는 세대간 부富의 이전에 기여하는 사람”이라고 큰소리치는 일이 적지 않다고 한다. 황당한 궤변이지만 부가 고령세대에서 젊은 세대로 이전되지 않는데 대한 젊은층의 반감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주는 예다.

지금의 한국의 실버세대는 단군 이래 가장 부유하다. 산업화 과정에서 얻은 과실을 고스란히 챙겼다. 700만명에 이르는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가 60세 이상 고령세대로 편입되는 시점이 되면 전체 가계 금융자산 중 절반 이상이 고령세대가 차지할 가능성이 크다. 반면 베이비부머의 자식들은 별로 돈이 없다. 취업도 힘들지만 자력으로 내집 마련은 꿈도 꾸기 어렵다. 돈 가진 아버지 세대는 쓸 줄 몰라서 돈을 못 쓰고, 자식세대는 돈이 없어 소비를 하지 못한다.

일본은 생전 증여를 하거나 자녀에게 집을 사주면 세제혜택을 주고 있다.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있는 영국에서는 주택부 차관이 자녀를 건너뛰고 손주 세대에게 상속권을 주자는 제안을 해 논란을 빛기도 했다. 유산을 자식이든 손자에게 물려줄 것인지는 당사자가 결정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노노상속’으로 인한 후유증이 크다는 방증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자식에게 물려주면 곤란하다. 더 바보 같은 일은 죽는 날까지 재산을 손에 쥐고 있는 거다. 죽은 다음에 자식들 싸움붙이는 일이다.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 놓는다는 마음가짐으로 상속플랜을 준비하면 자신의 인생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자녀 또한 미래를 설계할 수 있어 유익하다. 자녀가 자기계발로 자신의 몸값을 높이는데 도움을 주면 더욱 좋다. 재산 대신 가풍을 상속한다는 생각으로 당장 준비해야 한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준비할 일이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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