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분이 빠진 자리엔 피해자만 남았다
이정우 교수가 말하는 정부와 사회의 과제
우리는 대형 사건사고 후 무엇을 했는가

납득하기 힘든 사건이 터지면 우리는 분노한다. 음주운전 사고 때 그랬고, 어린이집 교사의 폭행 사건 때 그랬다. 강서구 PC방 살인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쉬운 게 있다. 흥분이 사라진 자리엔 ‘피해자’만 남는다. 해당 사건이 어떻게 해결됐는지, 또 유사사건을 막기 위한 대책은 만들어졌는지, 관심을 갖는 이들은 드물다. 그 틈새를 또 사건사고가 파고들고, 우리는 다시 분노한다. 우리가 준비해야 할 건 무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가 도왔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인 김성수씨가 정신질환이나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10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 피의자인 김성수씨가 정신질환이나 심신미약으로 감형을 받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100만명 이상의 추천을 받았다.[사진=연합뉴스]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우리는 흥분했다. 잔혹한 칼부림에, 우울증이란 뻔한 병력病歷에 우리는 분기를 감추지 못했다. “젊은 알바생을 무참히 살해한 피의자가 우울증이나 심신미약 등을 이유로 감형을 받지 못하도록 처벌 규정을 강화하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의 추천인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하지만 흥분을 내려놓고 잠시만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를 흥분의 도가니로 만든 사건은 강서구 PC방 살인만이 아니다. 음주운전으로 인한 살인, 어린이집 교사의 유아 폭행과 살인, 연쇄살인마의 성폭행과 살인 등 숱하게 많은 광기狂氣의 현장이 우리 사회에 펼쳐졌다. 

우리는 때마다 흥분했고, 때마다 제도개혁을 외쳤다. 그런데 어떤가. 달라진 게 있는가. 흥분이 사라지고 난 자리를 우리는 ‘시스템’으로 메우지 못했다. 정부든 사회든 사건을 예방할 수 있는 대책을 만들지 않았고, 그런 해태懈怠의 결과는 참혹했다. 우리는 무얼 준비해야 할까. 이정우 인제대(사회복지학) 교수에게 조언을 구해봤다.  

✚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에 흥분하는 국민들이 많다. 
“내가 피해자 유가족이라도 피의자를 강력히 처벌하라고 할 것 같다. 하지만 조금은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부분도 있다.” 

✚ 피의자가 정신질환을 이유로 가벼운 처벌을 받을까 우려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냉정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피의자가 힘 있는 혹은 돈 많은 집안의 자식이어서 특혜를 받고 있는가. ‘술 마시고 저지른 일’을 심신미약으로 포장하고 있는가.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은 것으로 안다. 진짜 정신질환이 있다면 우리가 가진 법체계의 양형 기준에 따라 처벌을 하면 된다. 그 피의자만 사회적 공분을 얹어 강력히 처벌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 아니겠나. 
“맞다. 그런데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또다른 살인사건을 막을 대책을 논의해야 하는 게 순서다. 사후조치보다 예방조치가 문제 해결에 더 효과적이고, 사회적 비용도 적게 들며, 부작용도 적다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다. 정부도, 사회도 흥분만 할 뿐 예방조치를 마련하는 덴 소홀하고 게으르다.” 

✚ 그렇다고 범죄 동기를 환경 탓으로 돌리는 건 위험하지 않나.
“환경 탓으로 돌리자는 게 아니다. 최소한 환경적인 요소는 제거하고 개인의 죄를 물어야 한다고 본다.”

공분보다 중요한 건 예방

✚ 사후조치보다 예방조치가 필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하지만 우리는 예방은 뒷전으로 밀어놓기 일쑤였다. 논의 자체가 잘 되지 않는다.”

 

✚ 예를 들면.
“어린이집 교사의 폭력으로 아이가 죽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했나. 어린이집의 시스템, 교사의 자질과 처우, 교사가 폭력을 쓴 당시의 상황 등을 모두 고려해서 대안을 마련했나. 그저 학부모들의 요구에 따라 CCTV 설치 의무화로 끝났다. 학대와 폭력, 살인은 사라졌나. 아니다. CCTV의 사각지대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고, 학부모들은 결코 안심하지 않는다.”

✚ ‘지켜보는 눈’이 있어 그나마 낫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던데.
“CCTV를 설치한다는 건 믿지 못한다는 거다. 의심하고, 감시하는 바로 그 현장에서 아이들이 자란다. 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그야말로 미봉책 중 미봉책이다.”

✚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달라.
“사회적 공분보다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꾸준한 담론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문제 해결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필요하다.”

✚ 참여와 관심? 좀 추상적이고 원론적이다.
“예컨대 아파트 입주자 모임의 대표가 공금을 횡령하다 구속되는 사건이 종종 보도된다. 그럴 때 늘 처벌이 약해서 그렇다고 얘기한다. 그런데 모든 입주자들이 입주자 대표회의에 늘 참석하면 어떻겠나. 감시의 눈이 많아져서 그런 일이 쉽게 일어나지 않을 거다. 이게 예방효과다. 5% 지지로 뽑힌 동 대표도 있다는데 과연 주민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이나 되겠는가.”

✚ 사회적 공분도 관심 아닌가.
“그렇다. 공분도 관심의 일부분이다. 문제는 공분은 그때뿐이라는 점이다.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고, 재발 방지 대책이 어떻게 나오는지 끝까지 지켜보는가. 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시스템 등을 논의하는 데는 얼마나 동참하는가. 그러니 새로운 이슈는 계속 나오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 요즘 분위기는 많이 달라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다수의 목소리가 그렇지 않다. 일례로 정부의 ‘적폐청산’은 과거의 잘못된 시스템을 상식적인 선에서 바로잡겠다는 건데, 다들 지겨우니 그만하라고 난리다. 일제 부역자 청산 문제나 백주대낮에 군인들이 국민을 쏴 죽인 얘기를 하면 ‘그걸 지금까지 붙잡고 있냐’면서 답답해한다. 그런 면에서 독일은 많이 다르다.”

✚ 어떻게 다른가.
“최근에도 나치 부역자를 붙잡아 처벌을 논의했다. 그 사람 나이가 벌써 여든이 넘었다. 하지만 아무도 이를 두고 지겹다거나 그만하자고 하지 않는다. 탈세를 하면 수십년간 사돈의 팔촌까지 돈이 오가는 정황을 포착해 세금을 받아낸다.”

✚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난다고 보나.
“언론의 역할 덕분이 아닌가 생각한다. 독일 언론은 흥분하지 않는다. 밋밋하다고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끝까지 추적한다. 그러니 국민들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는 것 아닐까.”

✚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건가.
“그렇다. 이슈를 만들고 불을 지피는 게 바로 언론 아닌가. 국민의 관심과 참여도 이끌어낸다.”

✚ 관심과 참여가 있어도 앞서 말한 예방에 관한 논의가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 같지는 않은데.
“옳은 지적이다. 정치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장기적이고 중요한 이슈는 단기적이고 덜 중요한 이슈에 묻히게 마련이다. 예방조치는 늘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해결책 나올 때까지 관심 가져야

✚ 예방조치를 우선순위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근본적으로 대차대조표 작성 방식을 바꾸는 걸 생각해볼 수 있을 듯하다. 예방조치에 따른 효과를 수치화한다든지, 예방조치 비용을 독립계정으로 만들어 사업성과와 비교하지 못하게 한다든지.”

✚ 예방조치를 객관화하자는 건가.
“예방이 더 좋은 거라는 건 누구나 안다. 문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예방에 들어간 건 비용을 손실이라고 생각한다는 거다. 예방으로 인한 성과를 대차대조표에 넣어서 단순히 비용이 아니라는 걸 보여줌으로써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 사후결과만을 중요시하는 한국에서 이런 대안이 받아들여질지 의문이다. 현실적으로 예방효과를 통계화할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방법은 논의해보면 되지 않겠는가. 모든 변화는 작은 데서 시작되는 법이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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