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부부 재무설계 上

대한민국의 40대는 대부분 여유보다 조급함이 앞선다. 자녀 교육비부터 내집 마련, 노후 대비 등 챙겨야 할 재무 이벤트가 점점 늘어나는 나이대이기 때문이다. 이번에 소개하려는 부부도 무엇에 집중해야 할지 헤매고 있었다. 더스쿠프(The SCOOP)-한국경제교육원㈜이 김씨 부부의 고민을 들어봤다. ‘실전재테크 Lab’ 18편 첫번째 이야기다.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장만하면 그만큼 노후 준비가 소홀해질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무리하게 빚을 내 집을 장만하면 그만큼 노후 준비가 소홀해질 수 있다.[사진=더스쿠프 포토]

15년 전 서울 구로구의 33㎡(약 10평)짜리 빌라에 신혼살림을 차렸던 김선화(가명·41)씨와 박상중(가명·43)씨. 부부는 이곳에서 6년을 살다 2009년 첫째를 가지면서 지금의 빌라(66.1㎡·약 20평)로 보금자리를 옮겼다. 남편인 박씨는 전세 빌라에 만족하고 있다. 주거 환경이 나쁘지 않은데다 무엇보다 집주인이 그동안 전세 가격을 거의 올리지 않아서다. 집이 박씨의 직장, 시댁과 가까운 것도 큰 장점이었다.

반면 김씨의 머릿속은 ‘내집 마련’ 고민으로 가득하다. 김씨는 40대가 되도록 ‘내 집’이 없다는 점이 여간 불안하지 않다. 자고 나면 오르는 집값도 김씨가 부동산에 관심을 가진 계기다. 그렇다고 아파트 청약을 신청하기엔 부부의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2009년 부부는 전세 빌라를 얻기 위해 1억2000만원을 대출받았다.

지금은 대출잔액을 3200만원까지 줄였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액수(월 107만원)를 대출을 갚는 데 쓰고 있다. 이렇다 보니 중소기업 과장인 남편의 월급(월 360만원)만으로는 4인 가족이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빠듯했다. 그동안 저축은 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청약에 당첨되면 계약금 10%를 내야 하는데, 부부는 당장 계약금을 낼 돈도 없는 상황이다.

김씨는 청약 얘기를 꺼낼 때마다 “갚아야 할 빚도 많은데 무리하게 대출하면서까지 집을 살 필요가 있느냐”는 남편의 핀잔을 듣는다. 틀린 말은 아니다.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 집을 샀다가 집값이 떨어져 손해만 봤다는 지인의 ‘하우스 푸어’ 경험담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직장인의 76.1%가 스스로를 ‘하우스 푸어’라고 생각한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다(잡코리아·9월 기준).

부부가 해결해야 할 재무 이벤트는 이뿐만이 아니다. 10살·6살인 두 자녀의 교육비, 노후 준비도 있다. 김씨는 “이런 와중에 아파트 분양을 넣어야 할지 하루에도 수십번씩 고민한다”고 털어놓았다. 부부는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몰라 재무상담을 신청하게 됐다.


9월 4일 진행한 1차 상담은 부부의 지출 흐름을 꼼꼼히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뒀다. 상담을 통해 드러난 부부의 월 소득은 425만원이다. 중소기업 과장인 남편이 360만원, 아내가 방과 후 교사 활동으로 55만원을 번다. 정부로부터 월 10만원의 육아수당도 포함했다. 이제 지출내역을 살펴보자. 부부는 소비성 지출로 전기세·수도세 등 각종 공과금으로 15만원을 낸다. 생활비로는 58만원을 쓴다. 4인 가족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액수가 크지 않다.

부부는 휴대전화 요금으로 매월 17만원을 낸다. 인터넷·TV는 5만원이다. 두 자녀(10살·6살)의 교육비로는 33만원을 지출한다. 용돈은 부부가 각각 20만원씩 총 40만원을 쓴다. 자동차 유류비와 교통비에는 20만원을 소비한다. 앞서 말했듯 107만원이 대출상환으로 빠져나간다. 

다음은 보험료다. 부부는 가족 보험료에 총 61만원을 쓰고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박씨(월 27만원)이지만 자녀들 보험료(각각 7만5000원씩 총 15만원)가 높다는 점도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자녀 보험의 만기를 30세로 책정할 것을 권했다. 성인이 된 이후엔 자녀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보험을 직접 선택하는 게 맞다는 판단에서다. 병원비로는 월 3만원을 지출하고 있었다.

부부의 취미는 온라인 게임이다. 부부는 게임 구매나 게임 아이템 구매하는 데 10여만원을 쓰고 있다. 김씨는 동네 헬스장 등록비로 월 5만원을 낸다. 비정기 지출은 명절·경조사비(10만원), 여행·휴가비(20만원), 자동차 유지비(11만원), 의류·미용비(25만원) 등 총 66만원이다. 부부는 금융성 상품을 갖고 있지 않았다. 총 지출은 440만원이고, 15만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이제 부부의 지출구조 파악이 끝났다. 잉여자금을 만들기에 앞서 적자(15만원)를 메울 필요가 있었다. 우선 생활비를 58만원에서 53만원으로 5만원 줄였다. 온라인 게임비(10만원)는 과감하게 삭제했다. 대신 부부는 무료로 할 수 있는 게임을 즐기기로 했다.


지출구조를 살펴보니 부부는 한가지 목적에 지출을 집중하는 ‘세로저축’을 실천하고 있었다. 107만원에 달하는 대출상환이 여기에 해당한다. 부채를 빨리 정리하는 건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별도의 저축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과도한 부채 정리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높다. 또다른 재무 이벤트가 닥쳤을 때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부부는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것이다.

지금 부부에게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다. 주택 장만에 ‘올인’하거나 내집 마련을 포기하고 자녀교육과 노후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필자가 보기에는 후자가 더 적절한 방법으로 보인다. 직장인인 박씨가 퇴직한 뒤 기대할 수 있는 자금원은 퇴직금과 국민연금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현재 재무구조로 4억원이 넘는 아파트를 마련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3억원을 주택담보대출로 받는다고 가정해도 매월 갚아야 할 원리금이 어림잡아 135만원(3억원×연이율 3.5%)에 이른다. 지출을 지금보다 30만원 가까이 줄여야 한다는 얘기다.

필자는 부부에게 과도하게 대출을 받으면 심각한 후유증에 시달릴 것이라고 조언했다. 재무설계에서 유념해야 할 점은 ‘무리하지 않는 것’이다. 처음부터 지출을 확 줄이면 제대로 실천하기 어렵다. 그래서 보통은 분기나 반기마다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조금씩 지출을 줄여 나간다.

그런데, 김씨 부부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지출을 대폭 줄이지 않으면 자산을 만들기가 어렵다. 따라서 2차 상담에서 줄이기 목표를 제시한 뒤 한달을 지켜보고 3차 상담을 진행하기로 했다. 부부가 내집 마련의 꿈을 정말 포기해야 하는지는 다음편에서 자세히 다뤄보기로 하자.
서혁노 한국경제교육원㈜ 원장 shnok@hanmail.net | 더스쿠프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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