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권순관 개인전

❶ 파도, 2018, 디지털 C 프린트, 225×720㎝ ❷ 어둠의 계곡, 2016, 디지털 C 프린트, 225×720㎝
❶ 파도, 2018, 디지털 C 프린트, 225×720㎝ ❷ 어둠의 계곡, 2016, 디지털 C 프린트, 225×720㎝

사진인지 추상 회화인지 알아보기 어려울 만큼 어둡다. 얼핏 보면 수풀만 무성해 보이는 숲이지만 뭔가 깊은 사연을 직감할 수 있다. 가로 720㎝에 달하는 이 야산의 모습은 사진작가 권순관의 ‘어둠의 계곡’이다. 그는 이 캄캄한 숲에 어떤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 걸까.

권순관의 개인전 ‘The Mulch and Bones’가 11월 10일까지 학고재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국가의 사회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당한 이들의 흔적을 담은 작품들을 선보인다. ‘어둠의 계곡’은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이 충북 영동군 황간면 노근리 일대에서 피난 중이던 주민들을 사살한 사건을 다뤘다.

권순관은 그들이 암매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현장을 찾아 텐트를 치고 지내며 촬영했다. 시신이 썩은 뒤 땅에 스며들고 낱낱의 잎으로 다시 나는 것을 생각했다. 아울러 은폐된 역사 앞에 선 개인의 자괴감과 무력함을 나타내고자 했다. ‘저 뿌리 덮개 아래는 뼈가 있고 사람이 있을 것이다. 여전히 권력에 가려진 채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다.’ 그는 겹겹이 쌓인 잎이  역사의 순간을 덮어버린 가해자들의 권력 같다고 생각했다.

이번 전시작들은 ‘어둠의 계곡’을 제외하고 모두 처음 선보이는 것들이다. ‘파도’는 제주에서 파도의 포말을 촬영한 작품이다. 발레리(Paul Valery)의 시 ‘바다의 묘지’를 읽으며 제주 4ㆍ3항쟁의 희생자들을 떠올려 시작했다고 한다.

❸ 붉은 연기 #1,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83×150㎝ ❹ 초상 2,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10×90㎝ ❺ 수천마리 나방의 비행,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46×120㎝
❸ 붉은 연기 #1,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83×150㎝ ❹ 초상 2,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10×90㎝ ❺ 수천마리 나방의 비행, 2018, 아카이벌 피그먼트 프린트 Archival Pigment Print, 146×120㎝

권순관은 쉼없이 밀려오고 가는 파도를 통해 아픈 역사를 불러내고자 했다. 바다 앞에서 희생당한 누군가가 죽기 전에 바라봤을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고 그가 경험했을 찰나의 감정을 파도에 녹였다. 이 작품은 카메라에 파도를 맞아 필름에 소금물이 들어가 색이 변화한 것을 그대로 표현했다.

음향 작업도 함께 선보인다. 전시장 지하 2층에 들어서면 괴괴한 소리가 반복적으로 흐른다. DMZ에서 17시간 동안 채집한 소리를 1분이라는 시간 안에 겹쳐놓은 ‘소용돌이 속으로 떨어지다’는 한국전쟁 이후 60여년간 부유하는 소리를 모았다. 권순관은 숲ㆍ바다 등 실제 장소를 찾아 그곳에 머물렀던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흔적을 담아낸다. 과거엔 명백한 형태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젠 사라져 버린 흔적들. 그것이 결코 잊지 말아야 할 진실이라고 전한다.
이지은 더스쿠프 기자 suujuu@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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