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 말 없는 정부들

부정부패, 방만경영, 특혜인사 등등. 공공기관의 고질병이다. “공공기관을 개혁하겠다”면서 칼을 빼든 정부는 숱했지만 개혁에 성공한 정부는 없다. 현 정부도 공공기관을 혁신시켰다고 하기엔 민망한 수준이다. 대체 왜일까. 역대 대통령들이 공공기관을 향해 으름장을 놨음에도 변화가 없었던 이유는 뭘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그 질문의 답을 찾아봤다. 

공공기관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공공기관의 부정부패를 막기 위해서는 ‘낙하산 인사’를 차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일러스트=아이클릭아트]

정권의 집권 2년차는 권력이 정점에 오를 때다. 대통령의 철학과 정책이 구체화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콘셉트는 ‘적폐청산’과 ‘혁신’이다. 공공기관 역시 그 대상임에 분명하다. 문 대통령은 지난 8월 29일 열린 ‘공공기관장 워크숍’에 참석해 이렇게 비판했다. “최근 밝혀진 공공기관의 비리에서 보듯이 몇몇 공공기관은 국민의 편이 아니었다. 오히려 특권과 반칙의 온상이 되어 국민의 공복公僕이라는 자부심을 잃기도 했다.”

문재인 정부가 집권 1년차부터 ‘적폐청산 드라이브’를 걸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2년차엔 성과가 드러날 법하다. 하지만 공공기관은 요지부동이다. 고질병이라는 부정부패, 일감 몰아주기, 채용비리 등은 사라지지 않았다. 사실 공공기관의 구태舊態가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집권 2년차를 앞두고 공공기관에 선전포고를 했던 박근혜 정부도 결국 ‘쓴잔’만 마셨다. 시계추를 2013년으로 돌려보자. 그해 11월 14일 공공기관 조찬간담회에서 참석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제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면서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해 공공기관의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려 한다”고 밝혔다. 공공기관의 고질병인 과잉복지, 방만경영, 도덕적 해이, 부채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로부터 한달 만에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이 발표됐고, 공공기관장을 대상으로 한 공공기관 정상화 워크숍도 개최했다. 해가 바뀐 2014년 1월에는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2단계’를 추진하면서 성과주의 도입, 공공기관 기능조정 등의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운 ‘공공기관 정상화’ 정책의 방점은 부채감축에 있었다. 2013년 216.6%에 달했던 공공기관의 부채비율을 2017년까지 200% 수준까지 낮추겠다는 게 주된 목포였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2015년 공공기관 부채는 2013년 대비 15조6000억원 감소했다.

부채비율도 216.6%에 182.6%로 하락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의 부채절감이 개혁의 성과라기보다 자산매각에 따른 효과라는 지적이 일었다. 실제로 한국철도공사는 20 14년 411%에 달했던 부채비율 2015년 28 3%로 낮추기 위해 공항철도 지분 1조8241억원어치를 매각했다. 한국전력공사 역시 삼성동 부지를 현대차그룹에 10조5500억원에 매각하면서 199%의 부채비율을 158%로 낮췄다. LH공사도 보유하고 있던 토지를 매각해 부채를 줄였다. 근본적인 체질개선에 성공한 게 아니라 단기적인 성과를 내는 데 급급했다는 얘기다. ‘눈 가리고 아웅’만 한 셈이다.

공복이라는 자부심 잃었나

‘공공기관 혁신’을 슬로건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성과 역시 신통치 않다. 지난해 12월 정부는 “공공기관 본연의 역할과 성과를 국민의 눈으로 평가하도록 하겠다”며 ‘공기업 경영평가 지침’을 대폭 개편했다. 사회적 가치 배점(15점)을 확대했다. 공기업 위주로 설계된 평가체계와 지표를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으로 분리해 평가과정에서 기관의 자율성을 확대했다.

하지만 공공기관에 변화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이번 국감에선 공공기관의 더 많은 문제점들이 지적됐다. 서울교통공사는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재직자의 친인척을 대거 채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예탁결제원은 직원 숙소에 135억원을 쓰면서 방만경영을 하고 있다는 질타를 받았다.

한국수력원자력·한국전력 등 산업통장자원부 산하 공기업의 임직원이 지난 5년간 57억원이 넘는 뇌물 및 향응을 받았다는 것이 알려졌다. 전문가들이 “권력의 힘으로 공공기관을 개혁하는 시대는 갔다”면서 “이젠 제도적 대응책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럼 우린 무엇을 개선해야 할까. 무엇보다 공공기관의 내부통제 강화를 위해 이사회와 감사제도를 손봐야 한다. 낙하산 인사를 막는 것도 중요한 개선책이다. 퇴직 후 산하기관의 요직을 독점한 낙하산은 ‘부패의 온상’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음에도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사회공공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2015년)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임명된 낙하산 인사는 전체 임명자 928명 중 204명에 달했다. 22.0%의 비율로 5명 중 1명이 낙하산 인사였다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364명 중 낙하산 인사는 161명으로 전체의 44.2%에 달한다고 밝혔다. 신임 기관장 199명 가운데 47%인 94명, 신임 감사 165명 중 41%에 해당하는 67명이 낙하산 인사였다는 것이다.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중 161명이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바른미래당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임명된 공공기관 임원 중 161명이 ‘낙하산 인사’라고 지적했다.[사진=뉴시스]

김철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은 “지난 정권과 달리 전문성을 감안한 건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낙하산 인사 논란에서 벗어나긴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낙하산 인사는 정부의 코드에 맞게 움직일 수밖에 없다”며 “당장은 아니더라도 낙하산 인사가 계속되면 방만 경영과 부실경영 논란은 계속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사실 해외 선진국들도 공공기관의 폐해 때문에 골머리를 앓아왔다. 이들은 이사회 등을 개혁함을 통해 공공기관 문제를 바로잡았다. 캐나다·덴마크 등은 이사회를 대부분 독립이사로 구성해 독립성을 높이고 있다. 핀란드도 공공부문 1명의 이사를 제외하면 전부 독립이사다. 독일은 이사회에 노동자를 포함한다.

해외 선진국 사례 벤치마킹해야

이사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도 계속되고 있다. 덴마크는 장관과 관계부처의 장이 전문성과 경력을 살핀 후 공동으로 지명해 전문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있다. 핀란드는 이사 후보 선정을 외부에 맡긴다. 경쟁절차를 통해 선정한 외부 채용 컨설턴트의 이사풀(Pool)에서 후보를 선정한다.

우리나라의 공공기관 문제를 개선할 방법은 어쩌면 간단하다. 공공기관의 내부통제를 강화하고, 낙하산 인사를 근절하는 것이다. 그중 정부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건 ‘낙하산’을 내리지 않는 거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공공기관은 ‘낙하산의 천국’이다. 그래놓고 개혁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면 누가 그 영令을 듣겠는가. 문재인 정부 사람들이 귀 기울여야 하는 말이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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