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사막의 라이언 ❺

‘리비아(Libya)’라는 나라 이름은 유서가 깊다. 리비아는 그리스 신화 ‘벨루스’의 어머니다. 리비아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정을 통해 벨루스(Belus)를 낳는다. 벨루스의 후손들은 그리스를 비롯한 페르시아, 아라비아 등 중동 지역 여러 왕가의 조상이 됐다. 리비아가 자신들이 이 지역의 주인이라는 확고한 의식을 갖고 있는 이유다.

1945년 독립을 과연 리비아나 중국 · 미국처럼 ‘한국 독립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1945년 독립을 과연 리비아나 중국 · 미국처럼 ‘한국 독립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벨루스’라는 이름은 그리스어로 ‘주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땅의 임자는 원주인의 후손에게 물려지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가 공증公證한 자신들의 땅에 감히 이탈리아인들이 쳐들어왔으니 순순히 받아들일 리 없다. 1911년  이탈리아의 침공과 식민지화는 리비아인의 거센 저항에 부딪힌다.

영화 속 ‘사막의 라이언’ 오마르 무크타르는 20년 투쟁을 주도하다 결국 1931년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러나 리비아인의 투쟁은 무크타르 사후에도 줄기차게 이어져 1951년 독립을 쟁취한다. 1911년부터 1951년까지 40년간 이어진 이들의 독립투쟁을 ‘리비아 혁명’이라고 명명한다.

요즘 ‘혁명’이라는 말은  ‘4 ㆍ19 혁명’부터 ‘산업혁명’ ‘인터넷 혁명’ 등 워낙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남용되기도 해 혼란스럽다. 혁명의 엄격한 본래 의미는 영국의 사학자 크레인 브린튼(Crane Brinton)이 내린 정의처럼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역전逆轉’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지금까지의 피지배 계층이 지배 계층으로 자리바꿈하는 것이다. 어쩌면 본래 집주인에게 집을 돌려주거나 되찾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

혁명의 본래 의미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역전을 의미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혁명의 본래 의미는 지배와 피지배 관계의 역전을 의미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모든 혁명의 전형典型으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대혁명의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난 루이 16세가 베르사유궁 밖에서 들려오는 민중의 함성에 놀라 당시 재무장관이자 최측근이었던 자크 네케르(Jacques Neker)를 황급히 불러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네케르가 침통한 목소리로 상황을 정리해 단 한마디로 아뢰었다.

“혁명(revolution)입니다. 폐하.” 네케르는 정치사회적 대변혁에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인 첫번째 인물로 기록된다. ‘revolu tion’이라는 말은 ‘처음 상태로 돌아간다’는 의미다. 아마도 명민했던 네케르는 그것이 단순한 민중의 소요 사태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기존의 모든 질서를 뒤집어버릴 거대한 폭발이라는 것을 직감했던 모양이다. 어쩌면 이제 원래의 주인이었던 민중에게 잠시 차지하고 있던 집을 돌려줘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예상했는지도 모르겠다.

흔히 세계 역사의 4대 혁명으로 불리는 프랑스 혁명(1789~1793년), 러시아 혁명(1917년), 중국 혁명(1911~1949년), 미국 혁명(1775~1783년) 모두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역전된 사건이기도 하고, 본래의 주인이 집을 되찾은 사건이기도 하다. 리비아의 무크타르 투쟁 역시 ‘리비아 혁명’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친일 청산’이란 외침은 독립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친일 청산’이란 외침은 독립 7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사진=뉴시스]

피지배 계층이던 리비아인이 이탈리아 지배 계층을 몰아냈고, 원래의 주인이 자기 집을 되찾았다. 많은 신생 독립국들이 식민 지배 세력을 몰아내고 리비아처럼 자신들이 투쟁으로 일궈낸 독립을 ‘혁명’이라고 부른다. 이 또한 혁명의 진정한 의미에 부합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1945년 독립을 과연 리비아나 중국ㆍ미국처럼 ‘한국 독립 혁명’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는 여전히 석연치 않다. 남북분단을 비롯한 미국의 신탁통치 등 현실적 ‘사정들’이 있었겠지만 일본의 지배 계급을 완전히 몰아내고 피지배 계급이던 우리가 온전한 지배 계급이 되었는지 꺼림칙하다. ‘친일 청산’이라는 외침이 독립 7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1948년 8월 15일 우리가 정부를 ‘수립’했는지 ‘건국’했는지의 문제가 엉뚱하게 이념투쟁이 되는 것도 이 문제에서 비롯되는 모양이다.


우리는 과연 우리의 집을 온전히 되찾아 새로 도배하고 새 가구 들여놓고 살고 있는 것일까. 아직도 ‘내 집’에서 전세를 살고 있거나, 전 주인이 아직 집을 비우지 않아 하는 수 없이 집수리도 내 맘대로 못한 채 같이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이런 어색하거나 엽기적인 주거 방식은 남북통일이 되거나 최소한 남과 북이 평화로운 관계가 될 때까지 지속될는지 모르겠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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