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안석의 Branding | 레트로 전성시대

몇년 전부터 레트로 열풍이 거세다. 패션뿐만 아니라 전자기기, 인테리어 소품 등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단순히 과거 유행하던 걸 재현하면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게 할 수 있는 걸까. 아니다. 현대적인 기술과 트렌디한 감각을 덧입혀 젊은 세대의 공감까지 끌어내야 한다. 브랜드 업계의 다양한 레트로 전략을 살펴봤다.

과거 유행하던 것을 새롭게 재현해내는 레트로가 유행이다.[사진=뉴시스]
과거 유행하던 것을 새롭게 재현해내는 레트로가 유행이다.[사진=뉴시스]

필자는 최근 스티븐 스틸버그의 SF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서 뭉클한 감정을 느꼈다. 주인공을 돕는 가상세계 캐릭터로 일본 애니메이션의 전설적인 로봇인 ‘건담 마크2’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출연 시간은 짧았지만 추억을 되살리기엔 충분했다. 그 추억은 20여년 전 건담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뿌듯해하던 기억이었다. 

지금 세대의 건담 마니아들에게 인기를 끄는 화려한 디테일을 갖춘 뉴 버전의 건담과 비교하면 볼품없지만, 필자는 강렬하게 빛나던 건담 마크2를 잊을 수 없다. 모델명만 들어도 가슴이 아련해진다.

“로고는 클수록 좋다”

이처럼 과거의 영광을 뒤로한 채 잠든 거인들을 마주치는 건 사람들을 즐겁게 한다. 최근 브랜드 업계에선 이런 현상이 유행이다. 바로 레트로 트렌드(Retro Trend)다. 레트로의 사전적 의미는 ‘뒤로 돌아간다’다. 과거 유행했던 디자인ㆍ패션ㆍ음악ㆍ문화ㆍ정치 등을 차용해서 새롭게 내놓는 거다.

그래서 10~20년 전의 트렌드가 현재에 재현되는 경우가 많다. 요새 크게 히트를 쳤던 드라마인 ‘응답하라 시리즈’가 좋은 사례다. HOTㆍ젝스키스 등의 옛 아이돌이 다시 인기를 끄는 것도 일맥상통한다. ‘패션테러리스트의 상징’으로 여겨져 자취를 감췄던 ‘청청 패션’도 부활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유행을 10~20대가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옛 트렌드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 레트로는 참신한 표현으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단순히 흘러가버린 옛 유행을 끌어온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아무리 복고라도 사람들의 관심을 얻기 위해선 몇가지 필요한 공식들이 있다. 사례를 통해 살펴보자. 

먼저 레트로엔 현실을 풍자하는 해학이 필요하다. 명품 업계에서 ‘빅로고’ 열풍이 불고 있는 건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빅로고는 1990년대 중저가 의류 브랜드가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당시엔 가슴팍에 나이키와 아디다스 로고가 대문짝만하게 새겨진 후드티를 갖고 있지 않던 20대는 없었다. “헤드라인은 반드시 굵게 강조해야 한다”고 역설한 광고계의 거장 데이비드 오길비의 주장처럼 빅로고 전략은 브랜드 홍보를 위해선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이때만 해도 명품 업계는 개성 있는 디자인으로 브랜드 정체성을 드러냈다. 로고는 되도록 가렸다. ‘아는 사람만 알아보라’는 고고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대놓고 드러내는 게 ‘품위 없어 보인다’는 계산도 있었을 거다. 하지만 최근엔 로고를 전면에 부각하는 전략으로 돌아섰다. 이왕이면 더 크게, 더 돋보이게 로고를 드러내고 있다. 명품 빅로고를 즐기는 청년들은 단순히 ‘나 명품 입는 사람이야’라고 과시하고 싶은 심리만 있는 게 아니다. 과장을 한껏 담은 명품 빅로고는 자기애愛의 효과적인 표현이다. 정치ㆍ경제적으로 고단한 시대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청년들에겐 꼭 필요한 요소다. 

레트로 트렌드로 이목을 끌기 위한 둘째 공식은 현대적인 기술과 디테일한 감각을 덧입히는 것이다. 최근 젊은 주부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는 이탈리아 에스프레소 머신 브랜드 드롱기의 ‘아이코나’ 반자동 커피머신을 보자. 이탈리아 시골 마을의 오래된 카페에 볼 수 있을 것 같은 빈티지한 디자인이 이 제품의 특징이다. 꼭 수동으로 작동할 것 같고 오래된 부품을 썼을 것 같다는 착각도 든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자동 커피머신이며, 현대의 기술과 부품으로 만들어졌다. 옛 시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킴과 동시에 높은 실용성까지 갖춘 셈이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브랜드 구찌의 레트로 전략도 흥미롭다. 지난해 구찌는 봄ㆍ여름 남성복에 도널드덕이 새겨진 니트ㆍ재킷 등을 선보였다. 언뜻 보기엔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매우 정교하고 섬세한 자수로 옛 캐릭터들을 되살려내며 단번에 ‘구찌’임을 파악할 수 있는 감성을 담았다.

과거와 현재의 흥미로운 다리

마지막으로 필요한 건 세대를 막론한 공감이다. 현대의 감성으로도 충분히 흥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완성도 있는 콘텐트여야 한다. 40~50대가 그 시절을 낭만적으로 회상할 수 있어야 하고, 젊은 세대도 파고들어야 한다. 격랑의 시대였던 1990년대는 요즘 젊은이들의 상황과도 맞닿아 있다. 이런 점을 고려하지 않은 일반적인 옛날 얘기로는 촌스럽게 느껴질 뿐이다. 레트로 중심의 소비 트렌드는 앞으로도 전 산업에서 가속화될 전망이다. 레트로 자체가 과거와 현재를 잇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이를 어떤 전략으로 다룰지 고민해야 할 시점이기도 하다. 
정안석 인그라프 대표 joel@ingraff.com | 더스쿠프 브랜드 전문기자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