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화살통 논쟁
[이순신 여행] 화살통 논쟁
  •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 호수 312
  • 승인 2018.11.08 0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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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편 서울 제3장 근무지❷
이순신의 대쪽 같은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는 숱하다. 사진은 영화 명량의 한 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의 대쪽 같은 성품을 엿볼 수 있는 일화는 숱하다. 사진은 영화 명량의 한 장면.[사진=더스쿠프 포토]

이순신은 1579년 2월 종8품 훈련원 봉사가 됐습니다. 훈련원 봉사로 재직하던 시절, 이순신의 상관 중에 서익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서익은 이조정랑이었습니다. 이조정랑은 정5품에 불과하지만 인사권에 관여하기 때문에 매우 영향력이 있는 자리였습니다. 서익은 그의 측근을 특진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감히 종8품 봉사에 불과한 이순신이 반대하고 나서는 게 아닙니까? 이 일로 이순신은 서익의 눈밖에 났고, 얼마 못 가서 지방으로 좌천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순신의 성품이 얼마나 대쪽 같았는지 엿볼 수 있는 일화는 또 있습니다. 말씀드렸듯 조선 최고 명궁 중 한명이었던 장인 방진은 사위 이순신에게 자신이 만든 화살통을 선물했습니다. 멋진 화살통을 차고 다니던 어느날, 이순신은 길에서 우연히 병조판서를 만났습니다. 군사를 관할하는 병조판서는 이순신의 최고 직속상관이었습니다. 그 이름은 유전이었죠. 이순신의 인사를 받던 유전은 명품 화살통을 발견했습니다. 그 화살통에 마음을 빼앗긴 유전은 이순신에게 “그 화살통을 선물로 줄 수 없겠는가”라고 물었습니다.

이순신의 답은 어땠을까요? 다음과 같습니다. “판서 어른께 이깟 화살통 하나 드리는 건 조금도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보잘것없는 화살통 하나 때문에 어르신이 부하의 화살통이나 받는 사람이라는 비난을 듣게 되고, 저는 화살통이나 바쳐서 출세하려는 치사한 부하라는 오해를 받는 것이 두려울 뿐입니다.” 이 말을 들은 병조판서는 더 이상 화살통을 달라고 하지 못했습니다.

어쨌거나 지방으로 좌천된 이순신은 약 10개월 충청도 절도사의 군관으로 지냈습니다. 그런데 몇달 후 그는 파격적 승진을 경험합니다. 1580년 선조 13년, 그의 나이 서른다섯에 발포(지금의 전남 고흥군)의 만호가 된 것입니다. 만호는 종4품입니다. 종8품 군관에서 무려 여덟계단이나 승진한 셈이었습니다. 

그러나 만호 생활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도 서익 그 양반 때문이었습니다. 만호로 재직 중이던 어느날, 이순신이 책임자로 근무하던 발포진에 군기경차관(각 군의 진영에서 병기를 잘 관리하는지 등을 점검하는 관직)이 병기 검열을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 군기경차관이 하필 서익이었습니다. 이조정랑이던 그가 병조정랑으로 부서 이동을 했던 겁니다.

서익은 “이순신의 병기 관리가 엉망이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조정에 올렸습니다. 이 때문에 이순신은 이듬해 다시 종8품 훈련원 봉사로 강등되고 말았습니다. 이순신의 첫 직장이었던 훈련원에는 이처럼 영웅의 희로애락이 담겨 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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