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델마와 루이스 ❶

명장 리들리 스콧 감독의 1991년작 ‘델마와 루이스(Thelma & Louise)’를 굳이 장르로 분류하자면 ‘버디 무비(buddy movie)’이자 ‛로드 무비(road movie)’에 속할 듯하다. 담배 연기 자욱한 남성 전용 클럽하우스와도 같은 이 영역에 두 명의 여성 ‘버디’들이 뛰어든다. 이들은 권총을 차고 오픈카를 몰며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을 응징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미국 사회 페미니즘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델마와 루이스’는 미국 사회 페미니즘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리들리 스콧 감독은 달리 설명이 필요없는 명장이다. 그의 작품 ‘델마와 루이스’는 여러 관점에서 깨나 흥미롭기도 하고 의미 있는 영화인 듯하다. 이 영화의 장르를 분류하자면 ‘버디 무비’이자 ‘로드 무비’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장르는 사실상 남성들의 전유물이다. 당대 대표적인 두 미남 배우 로버트 레드퍼드와 폴 뉴먼이 주연한 ‘내일을 향해 쏴라’나 톰 크루즈와 더스틴 호프먼의 ‘레인맨(Rainman)’ 모두 두 남자가 거친 세상을 헤쳐나가면서 끈끈한 우정과 형제애를 느끼고 확인하는 과정을 그린다.

남자들의 멋들어진 우정과 형제애는 온갖 탐욕과 모략으로 찌들어버린 세상을 이겨내는 유일한 원동력이자 안식처다. 두 남자가 끈끈하게 뭉쳐서 혹은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헤쳐나가는 다양한 ‘거친 세상’을 보여주기 위해 ‘버디 무비’는 대개 ‘로드 무비’의 성격을 함께 채용한다. 이렇듯 남성 전용처럼 여겨졌던 ‘버디 무비’와 ‘로드 무비’ 영역에 감히 두명의 여성 ‘버디’들이 뛰어든다. 이들은 권총을 차고 오픈카를 몰고 광활하고 거친 미국 대륙을 질주하며 ‘너절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을 응징한다.

델마(지나 데이비스 분)의 남편은 ‘마초’ 기질로 무장했지만 한마디로 무능한 인간이다. 식당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루이스(수잔 서랜던 분)가 심드렁하게 별 수 없이 만나는 남자친구 또한 음악을 한답시고 떠도는 백수건달이다. 힘든 생활 속에 피곤에 찌든 두 주인공이 오랜만에 술집에서 술을 한잔한다. 델마는 여기서 만난 한 남자와 별생각 없이 춤을 한 곡 춘다. 그런데 이 사내가 대뜸 델마를 술집 밖 주차장으로 끌고 나가 자동차 보닛 위에 자빠트리고 들이댄다. 
우리나라에 ‘한남충’이 있다면 미국에는 ‘미남충’들이 득실거린다.

델마와 루이스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을 응징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델마와 루이스는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사내들을 응징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국적 불문하고 ‘남충’들은 여자와 눈만 마주치면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다고 단정하는 모양이다. 또한 이들의 특징은 터무니없이 힘차다. 이 사내는 저항하는 델마에게 힘차게 한주먹 날리고는 곧바로 거칠게 강간 모드로 들어간다. 이 꼴을 발견한 루이스가 자신감 넘치는 ‘미남충’에게 권총을 발사하는 대형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곤 두 여자의 예기치 않았던 ‘도주 버디-로드 무비’가 시작된다.

두 주인공을 지옥의 나락으로 몰아넣는 ‘미남충’의 창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주인공들을 발견하고는 열심히 음담을 날리는 거대한 탱크로리 기사를 만난다. 운전하기도 바쁠 텐데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남충’들은 여자만 보면 괜히 음담패설을 날리고 이상한 표정과 몸짓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분노한 델마는 이 한심한 ‘미남충’의 전재산인 탱크로리를 총격으로 시원하게 폭발시켜 버린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두 여자의 분노만큼이나 거대한 불기둥이 치솟는다.

‘델마와 루이스’는 그해 아카데미상 6개 부분에 노미네이트되고 영화의 각본을 쓴 칼리 코리(Callie Khouri)에게 최우수 각본상의 영광이 돌아갔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라고 할까, 그녀의 각본이 아카데미 최우수 각본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자마자 칼리 코리는 ‘남성 혐오’와 ‘남성 비하’의 주범으로 몰려 온갖 논쟁과 비난에 시달리게 된다. 졸지에 영화 속 ‘미남충’으로 도매금으로 넘어가게 된 미국 남성들이 억울하기 짝이 없었던 모양이다. 적어도 미국영화과학아카데미가 이런 각본에 최우수상을 안긴 것은 결국 미국 모든 남성들이 ‘남충’의 혐의가 다분하다고 공인한 꼴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었을 법하다.

‘미투 운동’이나 혜화동 ‘워마드’ 집회 목소리는 다소 거칠고 다소 극단적이다.[사진=뉴시스]
‘미투 운동’이나 혜화동 ‘워마드’ 집회 목소리는 다소 거칠고 다소 극단적이다.[사진=뉴시스]

각본을 쓴 칼리 코리뿐만 아니라 리들리 스콧 감독에게까지 남성들의 원망과 비난이 쏟아졌다. 거의 요즘 우리 사회의 일부 페미니스트들이나 소위 ‘미투 운동’이나 ‘워마드’를 둘러싼 논쟁의 미국판이라 생각해도 무방할 만한 사건이었다. 그러나 격렬했던 논란을 뒤로하고 ‘델마와 루이스’는 미국 사회 페미니즘의 이정표와 같은 역할을 했고, 마침내 2016년 미국의회도서관은 이 영화를 미국 필름보관소에 영구적으로 보관해야 할 영화의 하나로 선정했다.

‘미투 운동’이나 혜화동 ‘워마드’ 집회 목소리도 ‘델마와 루이스’만큼이나 다소 거칠고 다소 극단적이다. 어찌 보면 ‘방역防疫’의 논쟁이나 고민과도 같다. 농장에서 AI 감염 오리 한두마리, 구제역 돼지 한두마리가 발견되면 수백ㆍ수천마리의 멀쩡한 오리ㆍ돼지들까지 어리둥절한 채 살처분된다. 오리ㆍ돼지들로서는 대단히 억울하겠지만 방역 당국이 과도하거나 미쳤다고 탓할 수만도 없는 딱한 일이다.

어쩌면 오리ㆍ돼지들이 자발적으로 감염된 ‘동료들’을 색출해 방역 당국에 신고하는 것이 억울하게 도매금으로 살처분되지 않는 길일지도 모르겠다. 동료라고 감쌀 일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 사회의 페미니즘 논란도 우여곡절을 겪겠지만 시간이 흘러 지금을 돌아보았을 때 이 사회를 한단계 성숙시키는 하나의 중요한 ‘이정표’였던 것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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