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조금 감사 사각지대 헌혈의 집 

혈액 사업은 핵심 공공사업이다. 헌혈의 집 대부분을 국고로 짓는 이유다. 그 안에 놓인 작은 전기포트도 국민의 세금으로 산다. 이렇게 13년간 헌혈의 집은 총 1300억원에 이르는 국고 지원을 받았다. 그럼에도 헌혈 실적이 하락세를 거듭하자 “헌혈의 집 설치 지원 사업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알고 보니 이 사업, 감사 한번 제대로 받아본 적 없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보조금 감사의 사각지대에 서있는 헌혈의 집의 문제점을 취재했다. 

헌혈의 집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졌다.하지만 사후감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헌혈의 집 대부분은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졌다.하지만 사후감독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00년대 초반 국민들의 혈액사업을 향한 불신과 불안감이 확산됐다. 오염된 부적격 혈액이 대량 유통된 사실이 드러난 데다  부적격 혈액 출고 및 에이즈ㆍ간염 등 수혈감염 사건이 연달아 터진 탓이었다. 부작용도 컸다. 헌혈을 꺼리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혈액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다. 2004년 9월, 범정부 차원의 혈액사업 마스터플랜인 ‘혈액안전관리개선 종합대책’이 발표된 건 이런 이유에서였다. 

종합대책의 목표는 대담했다. 2003년 기준 35%에 불과했던 개인헌혈자 비율을 2010년까지 70%로 끌어올리겠다는 거였다. 하지만 ‘선의善意의 헌혈 문화를 확산시키겠다’는 플랜은 쉽지 않은 목표였다. 강제성을 띨 수 있는 단체헌혈과 달리 개인헌혈은 자발적이기 때문이었다. 정부의 전략은 ‘접근성 높이기’였다. 헌혈의 집을 전국 곳곳에 신설하면 개인헌혈이 늘어날 거란 계산이었다. 이때부터 헌혈의집을 개선하거나 새로 짓는 사업자에게 국고보조금(국민건강증진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헌혈의 집 수와 헌혈 실적이 ‘정(+)의 관계’를 띨 수 있게끔 사업 계획을 꼼꼼하게 짰다. 무엇보다 지원 사업의 프로세스를 ‘사업대상 선정→국고보조금 신청 및 교부→사업시행 관리→사업성과 관리’ 등 중첩적으로 만들었다. 혈액원은 신청 단계에서 시설 접근성 및 이용성, 장비구매 활용계획의 타당성, 사업목표의 성공 가능성 등을 세세하게 작성해 보건복지부의 평가를 받도록 했다. 헌혈의 집을 짓고 나서는 실적을 제출해야 하는 규정도 뒀다. 채혈목표량의 70%를 충족하지 못하면 보건복지부에 다시 보조금을 반납할 수도 있다는 구속요건도 만들었다.

한편으론 혈액사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참여할 수 있는 대상을 넓혔다. 대한적십자사에만 위탁했던 헌혈사업 자격을 의료기관에도 줬다. 헌혈시장에도 경쟁과 효율의 논리를 도입해 실적을 극대화하겠다는 취지에서였다.
이런 방식과 절차를 통해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총 103개의 헌혈의 집이 새로 지어지거나 새 단장을 했다. 헌혈을 담당하는 사업자도 늘었다. 대한적십자사가 운영하는 헌혈의집, 대한산업보건협회 산하 한마음혈액원이 운영하는 헌혈카페, 중앙대학교병원 혈액원의 헌혈센터(이하 헌혈기관 명칭은 모두 헌혈의 집으로 통일) 등 세 곳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단독 입수한 ‘헌혈의 집 설치사업 국고보조금 교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 혈액원(1033억5700만원), 한마음혈액원(254억500만원), 중앙대병원 헌혈원(18억800만원)에는 임대차 비용 뿐만 아니라, 리모델링 비용, 채혈장비ㆍ노트북ㆍ컴퓨터ㆍTVㆍ냉장고ㆍ세탁기 구입비용 등 12년간 총 1305억원의 세금이 투입됐다. 

정부로선 막대한 혈세를 헌혈의 집을 늘리는 데 투입한 셈이다. 사실상 공공기관인 대한적십자사 뿐만 아니라 민간기관(한마음혈액원ㆍ중앙대병원)도 수혜를 입었다. 하지만 정부는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받아야 하는 대한적십자사를 뺀 민간기관엔 외부감사 규정을 두지 않았다. 그 때문에 혈세를 만든 국민들은 민간기관의 회계내역도 들여다볼 수 없는 데다 개별 헌혈 실적도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한마음혈액원의 헌혈사업의 회계 분리가 이뤄진 건 비교적 최근인 2012년의 일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 사업을 외부에서 감사하는 시스템은 따로 없지만 부서 자체적으로 사업계획서를 살펴보고 있고, 혈액관리법에 따라 헌혈의 집이 신설되면 실사를 나간다”고 해명했다. 사업을 진행하는 가운데 국고가 제대로 쓰이는지를 체크한다는 거다.

하지만 이런 감시 시스템은 대한적십자사도 밟는 절차다. 정부돈으로 운영하는 건 똑같지만 대한적십자사와 달리 민간기관은 외부감사의 사각지대에 서있다는 얘기다. 특히 대한적십자의 숱한 문제점이 국정감사와 감사원 감사를 통해 해마다 국정감사에서 방만경영 지적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민간혈액원을 감사해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한 보건복지위원회 의원실 관계자는 민간혈액원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한마음혈액원을 운영하는 대한보건산업협회의 담당 위원회는 환경노동위원회다. 중앙대 혈액센터를 운영하는 중앙대학교의 담당은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다. 이렇다보니 보건위 의원실 차원에서 내역을 들여다보기가 까다롭다. 각 민간혈액원에 필요한 자료를 요청할 순 있지만, 특별한 이슈가 없는 이상 대한적십자사를 더 깊게 들여다보기 마련이다.”

첫번째 혈액사업 마스터플랜

익명을 요구한 혈액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자. “헌혈은 환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혈액을 제공하는 순수 봉사행위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선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데, 13년 전 낡은 마스터플랜에 기대 예산만 배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감사도 없이 사업을 진행하다 보니 헌혈의 집의 위치, 장비 등을 고르는 것도 사업자인 혈액원들의 편의에 따라 제각각이다.”

TV, PC 등 헌혈의 집 내부에 있는 작은 장비도 모두 국고보조금으로 지출된다.[사진=뉴시스]
TV, PC 등 헌혈의 집 내부에 있는 작은 장비도 모두 국고보조금으로 지출된다.[사진=뉴시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사업이 진행되는 13년간 보조금 반납을 요구한 적이 없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3년 전과 비교하면 헌혈 실적의 양적 증가는 민간혈액원이 기여한 바가 크고, 혈액원 간의 경쟁의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국민의 돈으로 운영되는 혈액 사업의 성과는 어떨까. 2005년 227만명에 불과하던 헌혈 실적은 지난해 292만명으로 28.8% 증가했다. 얼핏 전체 실적이 늘어났기 때문에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세부 지표를 보면 상황이 심각하다.

2014년 처음으로 헌혈 실적 300만명을 달성한 뒤 2016년엔 286만명으로 곤두박질쳤다. 헌혈률 역시 2015년 6.09%로 정점을 찍고는 이듬해 5.64%로 하락했다. 헌혈가능인구(16~69세) 중에서 헌혈자 수 비중을 계산한 ‘실제 국민 헌혈률’은 통계를 작성한 지 처음으로 3%대로 내려앉았다. 종합대책이 막 실현되고 새 헌혈의 집이 지어지기 시작한 2005년(4.56%)보다 오히려 악화된 수치다.

감사 없는 보조금 사업

단체헌혈 등을 뺀 ‘헌혈의 집만의 실적’으로 좁혀도 신통치 않긴 마찬가지다. 2015년 208만건으로 최대치를 기록한 뒤 186만건(2016년), 192만건(2017년)으로 들쑥날쑥하다. 정책 목표였던 ‘개인헌혈 비율 70%’ 역시 달성하지 못했다. 2015년 69%에서 3년 연속 내리막을 걸으며 달성 시기를 미뤘다. 당초 2010년이 유효기간이던 ‘헌혈의 집 설치사업’도 함께 연장됐다.

특히 민간혈액원에서 운영하는 헌혈의 집의 실적이 좋지 않다. 지난해 전체 헌혈 비중에서 두 혈액원이 차지하는 비중은 7.0%(한마음혈액원), 0.2%(중앙대병원 혈액원)에 불과했다. 이를 두고 민간혈액원 측은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의 집이 138개소로 한마음혈액원(18개) 중앙대병원 혈액원(1개)과 크게 차이가 나기 때문에 실적의 간극은 당연하다”고 반박한다. 

하지만 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헌혈의 집 1개당 실적도 차이가 크다. 일 평균 47건을 상회하는 대한적십자사와 달리 한마음혈액원의 일 평균 헌혈 실적은 32건이다. 2012년 신설된 중앙대병원 혈액원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지난해 연간 헌혈 실적은 4423명, 하루 12명꼴로 헌혈을 받았다. 이마저도 교회 등 단체헌혈을 포함한 실적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난 10년간 헌혈 실적이 가장 크게 증가했던 시기는 2008년(12. 4%)과 2009년(9.5%)이었다. 2008년 처음으로 헌혈의 집을 개소한 한마음혈액원은 이 당시 헌혈 실적 통계를 내지 못했고, 2009년엔 5만7245건에 불과했다. 당시 대한적십자사의 헌혈의 집이 142만7648건(2008년), 156만1715건(2009년)의 실적을 냈다는 점을 감안하면 순수하게 민간혈액원 때문에 헌혈 실적이 증가한 건 사실로 보기 어렵다.

정부가 의도한 경쟁과 효율의 논리 역시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최근 대한적십자사는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으로부터 ‘매혈 기관’이란 비난을 받았다. ‘영화표 1+1 행사’에 170억원이라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했기 때문이다. 대한적십자사를 향한 질타로 마무리됐지만 이 사건의 배경엔 한마음혈액원이 있다. ‘영화표 1+1 행사’를 처음 시행한 게 한마음혈액원이기 때문이다. 한마음혈액원 관계자는 “시점은 정확히 파악할 순 없지만 대한적십자사보다 1+1 이벤트를 먼저 진행한 건 사실”이라고 밝혔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장기적인 대책보다는 단기적인 방법으로 경쟁하면서 사람을 살리는 헌혈이 ‘피 뽑고 영화 보기 위한 수단의 의미’가 됐다”면서 “이렇다보니 각 혈액원의 대대적인 이벤트가 끝나면 병원은 금세 혈액부족 사태를 겪는다”고 한탄했다. 혈액업계 관계자는 “인구가 점차 줄고 있는 10~20대 등의 비율이 높고 30대 이상 헌혈비율은 줄어드는데 관련 대책은 없다”면서 “헌혈의 집 설치 사업이 그저 관성처럼 진행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8년째 수정 없는 사업 방향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사업을 진행해가며 문제점은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실효성이 있을지는 미지수다. 실적이 곤두박질치던 2016년 헌혈의 집 설치 사업 안내문을 보자. 보건복지부는 사업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혈액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하고, 사업수행 능력이 인정되는 기관을 공모를 통하여 선정 및 사업비용 지원.” “유동인구가 많고 헌혈자원이 풍부한 지역에 새로운 헌혈 장소를 설치해 사업효과 극대화 추진.”

그리고 헌혈 실적이 한 단계 내려앉았던 지난해 사업 방향 역시 바뀌지 않았다. 37억원의 예산을 배정한 올해도 사업 방향은 그대로다. 흥미롭게도 설치 사업의 방향은 2010년부터 같다. 헌혈의 집을 혈세로 지어놓고도 사후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아 빚어진 촌극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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