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꼬리만한 R&D 부끄럽지도 않소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막으려는 건설업계 반발이 거세다. “분양원가 공개가 집값 상승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억지(원가 공개하면 집값 상승? 누가 그래!ㆍ통권 308호 참조)에 이어 이제는 “분양원가 공개가 건설사의 연구ㆍ개발(R&D) 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타당한 주장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분양원가 공개와 건설사 R&D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10대 건설사의 평균 R&D 투자 비중은 매출 대비 0.51%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10대 건설사의 평균 R&D 투자 비중은 매출 대비 0.51%에 불과하다.[사진=연합뉴스]

“건설사는 연구ㆍ개발(R&D)을 통해 원가를 절감하고 영업이익률을 높인다. 그런데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R&D 활동이 위축된다. 소비자에게도 좋지 않다.” 경기도에 이어 최근 서울시까지 공공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나서자 건설업계가 내놓는 주장의 일부다.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설사들은 R&D에 신경 썼던 적이 거의 없다. 2018년 시공능력평가 기준 국내 10위권에 속하는 건설사들의 지난해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평균 0.51%에 불과하다.[※참고 : 삼성물산은 건설부문 매출로 한정.]

해당 건설사들의 2013년 평균 R&D 투자 비중이 0.73%였던 점을 감안하면 0.22%포인트 줄어든 수치(HDC현대산업개발 제외 9개사)다.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이 1%를 넘는 건설사는 현대건설(1.16%)이 유일하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에 따르면 2016년 기준 우리나라 기업의 매출 대비 R&D 투자 비중은 3.16%다. 제조업은 4.00%, 서비스업은 2.19%다. 건설업계 R&D 투자 비중이 서비스업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는 얘기다. 

돈벌이가 시원치 않아서 R&D 비용을 줄인 걸까. 아니다. 이들 건설사의 2013년 대비 2017년 매출은 평균 42.96% 증가했다. 매출이 늘수록 R&D 투자는 되레 줄어든 셈이다.[※참고 : 해외 건설사들은 R&D 투자액을 일괄 산출하지 않는다. 예컨대 프랑스 뱅시(Vinciㆍ2017년 글로벌 매출 4위)나 미국의 벡텔(Bechtelㆍ5위) 등은 기술혁신ㆍ안전ㆍ환경ㆍ노동 등 다양한 부분에 R&D 투자를 포함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와 단순하게 비교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

 

복수의 건설업계 관계자는 이런 반론을 폈다. “사실 R&D를 통해 새로운 공법을 개발하더라도 쓸모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건설사들이 공공사업을 많이 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의 타당성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입증한다고 해도 그걸 경쟁력으로 내세우면 특혜시비가 붙는다. 또한 국내 건설시장이 주택 중심이다 보니 새로운 기술이 필요치 않았던 측면도 있다. R&D 투자가 비용으로 처리돼 시장에서 잘 인정받지 못하는 면도 있다. R&D가 활성화될 수 없는 풍토가 있다.”

R&D 투자 확대는 선택 아닌 필수

언뜻 설득력이 있는 듯하지만 이 주장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건설업계가 국내 공공부문 수주에 기대 편안하게 배를 불려왔다는 얘기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건설업계 R&D 투자가 줄어드는 건 사실”이라면서 “국내 건설업계의 R&D 투자는 시공능력평가 등에 영향을 주기도 하기 때문에 재무제표 상의 R&D 투자 비중은 실제보다 과대 계상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R&D 투자를 늘리지 않으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기 힘들 것”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는 “분양원가를 공개하면 R&D 활동이 위축되고, 소비자도 피해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건설사들이 별 신경도 쓰지 않는 R&D 투자를 볼모로 소비자를 압박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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