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B하나은행의 조치는 선제적 리스크 관리일까

KEB하나은행이 최근 국내에 거주하는 이란 국적자들에게 “(KEB하나은행) 계좌를 해지하지 않으면 거래를 정지하겠다”는 통보를 보냈다. KEB하나은행은 “미국의 경제제재 리스크를 대비해 선제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미국 은행들도 하지 않은 조치를 국내 시중은행이 앞장서서 취한 게 적절한지를 놓고 비판이 끊이질 않는다.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가 아니라 알아서 긴 게 아니냐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EB하나은행의 이란 국적자 계좌 해지 통보 논란을 심층 취재했다. 

KEB하나은행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국내 ‘이란 국적자’의 계좌 해지를 통보한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KEB하나은행이 제대로 된 절차를 밟지 않고 국내 ‘이란 국적자’의 계좌 해지를 통보한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사진=연합뉴스]

KEB하나은행이 최근 미국 법무법인에 의뢰해서 받은 답변을 근거로 국내에 있는 이란 국적자들에게 은행계좌를 해지하라고 통보했다. 통보를 받은 이들 중에는 한국의 국비를 지원받는 이란 장학생이나 대학교수 등도 포함돼 있다. 이런 사실은 라디오 프로그램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한 박현도 명지대 중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에 의해 알려졌다. 

박 교수는 더스쿠프(The SCOOP)와의 인터뷰에서 “이란 국적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계좌를 해지하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조치”라면서 “향후 이란과의 관계에 굉장한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교수가 한 시중은행의 조치를 이처럼 강한 어조로 비판하는 이유가 뭘까. 

전후 사정부터 보자. 미국은 지난 5월 이란 핵합의(JCPOA)에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이후 미국은 8월 7일 대對이란 경제제재(secondary boycottㆍ제재국가와 거래하는 제3자 제재)를 재개했고, 11월 5일엔 이란산 석유제품 거래를 금지했다. 물론 미국은 한국을 비롯한 8개국에 한시적인 예외를 허용했다. 

그런데, 8월 미국의 대이란 경제제재 재개 이후 KEB하나은행은 미국이 한국과 이란 간 금융거래를 문제 삼아 은행에 제재조치를 할 수도 있다고 판단해 자체적인 법률 검토를 거쳐 국내 이란 국적자들이 계좌를 해지할 것을 통보했다. 또한 이들이 직접 해지를 하지 않으면 거래를 제한하기로 했다.

KEB하나은행에 따르면 법률 검토를 마치고 해지 통보 결정을 내린 게 지난 9월 초, 이란 국적자들에게 공문을 보낸 게 10월이다. 8월의 조치가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재빠르게 이런 결정들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공문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미국이 이란 핵협정 탈퇴 후 유예됐던 경제제재를 다시 시행할 것을 예고하고,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2차에 걸친 유예기간 내에 정리할 것을 요구한다. 이란 국적자와의 원화ㆍ외화 예금 거래도 ‘2차 제재(Secondary Sanction)’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미국 법무법인의 의견을 수렴해 유예기간 내에 이란 국적자와의 예금거래를 해지해야 한다. 해지 요청이 없을 시엔 거래 정지 등 후속조치가 진행될 것이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이란과의 금융거래 정리’를 요구했고, 이에 따라 ‘이란 국적자와의 거래를 해지한다’는 거다.

KEB하나은행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선 미국이 이란과의 금융거래를 이유로 제재를 가하면 외환업무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한 것”이라면서 “일부에서 말하는 것처럼 ‘계좌 동결’이 아니라 신규계좌를 막거나 거래를 제한한 것이고, 해지를 하고 나면 한화로 돈을 모두 인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KEB의 이상하면서도 예외적인 조치 

그럴듯한 답변 같지만 문제는 시중은행의 이런 결정이 상당히 이례적이고, 비상식적이라는 점이다. 너무 앞서나간 조치이고, 조치의 범위가 너무 광범위하며, 절차적으로도 하자가 있기 때문이다. 

 

국책은행에서 오래 근무한 A씨는 “KEB하나은행이 정말 이상한 일을 한 것”이라면서 이렇게 설명했다. “유엔에서 제재를 할 때도 기업이든 개인이든 다 지정을 한다. 특정 국가에 속하는 기업이나 개인이라고 해서 다 제재하지 않는다. ‘이란 국적자’라는 식으로 제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지정을 할 때에도 제재 대상 국가에 뭔가 이득을 주고 있다거나 하는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소명부터 받아야 한다. 이란으로 계좌송금을 한 것도 아닌데, 그런 절차도 없이 국내에서 소비하기 위한 카드결제를 막는다는 건 미국에서도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중은행 근무 유경험자인 B씨 역시 “특정 국적을 가졌다는 이유로 전부 제재하는 것은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 이상한 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란이 우리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것도 아니고, 나중을 생각하면 은행 입장에서 결코 이로울 것도 없다”면서 “경험에 비춰볼 때 은행 자체적으로 이런 결정을 했다기보다는 누군가의 눈치 때문에 경영진이 움직인 게 아닐까 싶다”고 분석했다. 

그들의 말처럼 KEB하나은행의 행위는 ‘미국에서도 하지 않는 이상한 행위’일까. 한 미국 변호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미국의 수정헌법 14조엔 ‘평등보호 조항(Equal protection clause of the 14th amendment)’이 있다. 인종이나 성, 국적 등을 이유로 모든 차별을 하지 말라는 거다. ‘공립학교 교사는 미국 시민권자만 할 수 있다’는 것처럼 특별한 사안을 제외하고는 모든 차별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KEB하나은행의 공문 내용을 보면 ‘이란 국적자’라는 이유로 계좌 해지를 통보하고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만약 미국 시중은행이 KEB하나은행처럼 한다면 법적 소송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논란의 여지가 분명해서다. 게다가 현재 미국 내 시중은행들은 특정 이란 국적자들에게 계좌 해지나 거래 제한을 요청하지도 않은 것으로 보이는데, 국내 시중은행이 먼저 조치를 취한다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도 않는다.”

전문가들은 “미국 시중은행들도 이란 국적자라는 이유만으로 계좌 해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미국 시중은행들도 이란 국적자라는 이유만으로 계좌 해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사진=연합뉴스]

대이란 제재를 강요하고 있는 미국의 시중은행들조차 하기 쉽지 않은 일을 국내 시중은행이 앞장서서 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KEB하나은행의 조치는 향후 한국과 이란 간 관계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 

이란 버리면 한국 손해

박현도 교수는 “KEB하나은행의 행태가 이미 이란 현지에서는 굉장히 큰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면서 “물론 이란도 이해관계의 득실을 따져 행동하긴 하겠지만, 국내 건설사들과 가전업체들이 현지에서 오랜 기간 공을 들여 쌓아올린 신뢰가 희석되지 않겠는가”라고 꼬집었다. 

2017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이란에 약 40억 달러(약 4조5000억원)의 제품을 수출하고, 약 80억 달러의 원유를 들여왔다. 원유 수입량으로 보면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 다음으로 많고, 그 비중은 13.2%다. 특히 석유제품은 우리나라 수출품의 5위(2017년 기준)를 차지한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이란과의 무역에서 잃을 것보다 얻을 게 더 많다는 얘기다. 박 교수의 지적을 흘려들을 수 없는 이유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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