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6개월 만의 경제라인 투톱 동반 퇴진

KDI와 대한상의가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에 쓴소리를 냈다. 2기 경제팀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사진은 신임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사진 왼쪽)과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연합뉴스]
KDI와 대한상의가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에 쓴소리를 냈다. 2기 경제팀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사진은 신임 경제부총리로 내정된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사진 왼쪽)과 김수현 신임 청와대 정책실장.[사진=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와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이 9일 동반 경질됐다. 부총리 후임에는 경제관료 출신인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이 내정됐고, 정책실장에는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이 임명됐다. 이로써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은 출범 1년 6개월 만에 좋지 않은 경제성적표와 함께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돌이켜보면 물러나는 경제라인 투톱은 정책 혼선과 갈등을 초래했다. 출범 초기 부총리를 중심으로 일하겠다고 약속한 것과 달리 누가 실세냐를 놓고 ‘김앤장’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핵심 정책에 대한 의견차를 노출함으로써 정책 신뢰를 떨어뜨렸다.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3대축으로 삼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 J노믹스는 어느 것 하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바람에 문재인 대통령이 최고의 국정목표로 내세운 일자리 창출은 참담한 성적표를 받고 말았다. 실업률은 외환위기 이래 최고치로 치솟았다. 계층간 소득격차도 더 벌어졌다. 다른 나라들이 뛰어들어 신산업을 일으키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승차공유 등 공유경제도 한국에선 공회전을 거듭했다. 기업투자도, 민간 소비도 부진해 주요 국가들이 대부분 높은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는 데도 한국만 비실거렸다.

급기야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과 가장 오랜 역사에 회원기업도 많은 경제단체인 대한상공회의소가 정부 정책과 리더십의 위기를 거론하고 나섰다. KDI는 내년 경제가 올해보다 나쁠 것으로 내다봤다.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성과를 내년이면 국민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인식과 달리 경기가 이미 정점을 지나 하강 국면에 진입한 것으로 진단했다.

따라서 기준금리 조정 등 거시정책은 현 수준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라고 했다. 경제 활력과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해선 구조개혁을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선 사회안전망 확충과 인적자원 재교육 등 보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정책적 리더십을 발휘하라”고 이례적인 표현을 썼다. 정책 혼선이 얼마나 심했으면 이런 말까지 했을까.

KDI는 특히 “소득주도 성장의 근본 취지는 공감하지만 단기적 측면에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완곡어법이긴 해도 경제 정책이나 전망에서 정부와 보조를 맞춰온 국책연구기관이 투자부진과 고용절벽의 배경으로 소득주도 성장을 지목한 점은 의미심장하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로제도 시행에 따른 부작용을 보완하고 추진 속도를 조절하는 것이 긴요하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지지부진한 규제개혁 속도와 소득주도 성장을 비판했다. 그는 전국 상의회장단 회의에서 “취임 후 39차례나 규제완화를 촉구했지만 효과가 없었다”며 “기업인이나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규제 정도가 기본권 침해에 이른 느낌”이라고 꼬집었다. 

박 회장은 소득주도 성장의 변화도 촉구했다. 분배 문제는 민간의 비용 부담을 늘리기보다 사회안전망 확충 등 직접적인 분배 정책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그러면서 “중요한 건 내리막길에 있는 경제의 큰 물꼬를 바꾸는 노력”이라고 덧붙였다. 

대한상의는 과거 정권에서 정치자금 조달을 중개하는 등 정경유착 시비를 불렀던 대기업 단체가 아니다. 대기업은 물론 중견ㆍ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회원사로 가입한다. KDI는 정부가 출연해 설립한 국책연구기관이다. 개발연대 시절부터 주요 경제정책의 산실이었다.

이처럼 상징성이 큰 두 기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문재인 정부 1기 경제팀의 정책 방향과 성과를 놓고 쓴소리를 쏟아냈다.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이것이 산업현장을 뛰는 기업인들의 민심이고, 더 나은 경제정책을 연구하는 전문가집단의 의견이다. 2기 경제팀이 명심해야 할 대목이다. 

새 경제팀은 떠나는 김 부총리가 국정감사장에서 토로한 말도 곱씹어야 할 것이다. 그는 “경제가 지금 위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고 말했다. 혹자는 이를 듣고 청와대를 떠올렸지만, 본인은 정치권을 겨냥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진의야 어쨌든 그의 말은 KDI 경제전망 보고서 표현과 오버랩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에서 “함께 잘 살자”며 소득주도 성장 등 기존 정책을 밀고 갈 뜻을 밝혔다. 일각에선 새 부총리와 정책실장 체제에선 운동장이 청와대로 더 기울어 ‘경제정책에 대한 정치적 결정’ 현상이 더 심해질 것으로 본다. 경제성과에 부총리가 책임져야 하지만, 대통령과 청와대가 책임에서 자유로운 것은 아니다. 무턱대고 과거 정책을 고집할 게 아니라 산업현장과 각계 의견을 수렴해 불합리한 정책의 궤도 수정 및 보완에 나설 때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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