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은 낮추되 자존감을 높여야

영화배우 신성일씨는 노년이 돼서도 자기주도적으로 살았다. 가정적으로야 아쉬움이 있었지만 배울 점도 있다.[사진=뉴시스]
영화배우 신성일씨는 노년이 돼서도 자기주도적으로 살았다. 가정적으로야 아쉬움이 있었지만 배울 점도 있다.[사진=뉴시스]

영화배우 신성일씨가 세상을 떠난 날 인터넷에 뜬 댓글을 보고 눈을 의심했다. 그를 기리는 추모의 글에 똬리를 틀고 있는 비난조의 댓글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허물이 많아도 고인이 되면 접어주는데 의외다 싶었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배우였던 아내 엄앵란과 10여년을 함께 살았지만 사실상 따로 살았다. 졸혼卒婚(호적상 부부관계는 유지하되 사실상 따로 생활하는 것) 상태였던 그는 2011년 발간한 자서전 「청춘은 맨발이다」로 세상의 공분을 샀다. 서른세살 때 아나운서 출신 미국 유학생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뉴욕으로 가는 비행기 일등석에서 사랑을 나눴다는 그의 고백은 큰 파장을 일으켰다.

‘맨발의 청춘’ ‘초우’ ‘겨울여자’ 등 1960~1970년대 아이콘이었던 그는 ‘나는 신성일’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3수 끝에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지만 금품수수 혐의로 수감생활을 했던 그는 “배우는 언제나 배우여야”라는 신념으로 감옥에서도 운동으로 근육질 몸매를 유지했던 사람이었다. 배우 신성일은 자서전에 비난받을 내용을 공개해놓고도 당당했다. “난 그녀에게 일생을 빚진 자다. 어떤 비난이 쏟아질지라도 두렵지 않다.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들려 드리는 것이 내 의무다.” 

그는 마지막까지 신작 영화 제작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세상 떠나기 불과 보름 전 언론 인터뷰에서 그는 내년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작품에 대해 이야기꽃을 피웠다. 영화 ‘소확행(가제)’ 시나리오와 배역은 물론 촬영장소까지 물색해 놓았다. 80대 폐암말기 환자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집념이었다. 

그의 자기주도적인 삶의 자세는 100세 시대를 맞는 우리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대학 졸업 후 20~30년간 일하고, 은퇴 후 연금으로 소소하게 노년을 보내며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앞으로 은퇴 혹은 정년이라는 개념은 없어질 것이다. 마라톤 인생을 사는 동안 최소 2~3개 이상의 직업을 경험하며 이전 세대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100세 인생이라는 드라마에서 주인공의 행복과 불행은 결국 총감독인 자기 자신에게 달렸다. 주체적으로 제2ㆍ제3의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 인생이라는 여행길에서 이제 공짜점심은 없다. 나이가 들면 회사에서 밀려나고 가정에서도 소외되면 자신을 잃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게 잃었던 꿈을 불러내는 용기다. 신성일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자유인으로, 로맨티시스트로 살아가고 있다. 젊은 시절 숱한 유혹이나 강압에도 권력자에게 무릎 꿇지 않았던 나다. 난 젊은이들에게 ‘정면돌파하라’고 외치고 싶다.”

사업파트너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감옥을 다녀오고 파산으로 아내에게 용돈을 타쓰는 신세로 전락했음에도 그는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자존감은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는 태도인 반면, 자존심은 다른 사람이 나를 인정해주기를 바란다. 자존심은 최대한 낮추되 자존감을 높여야 한다.


그는 내키지 않는 길을 가지 않았다. ‘나는 신성일’이라는 자존심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었다. 그는 지난 10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식에선 150만원짜리 돌체앤가바나 청바지를 입고 레드 카펫을 뚜벅뚜벅 걸었다. 그의 꿈은 꺾이지 않는 노년의 상징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는 넉넉한 아내를 둔 행운의 남자다. 1964년 세기의 결혼식을 올린 신성일-엄앵란 부부는 사랑과 원망, 애증과 연민으로 55년의 세월을 함께 했다. 평생을 집밖에서 돈 그에게 어찌 원망이 없을까. 그러나 엄씨는 “우리 남편은 저승에 가서도 못살게 구는 여자 만나지 말고 그저 순두부 같은 여자 만나서 재밌게 손잡고, 그렇게 슬슬 놀러 다니라고 말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부부라기보다 함께 험난한 세파와 싸워온 전우戰友라는 생각이 들었다.

‘대문 밖의 남자’였던 그의 마지막은 대문 안에서 가족과 함께 했다. 가정적으로 보면 아쉬움이 많은 그의 인생이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살았다는 점에서 그의 인생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영화가 인생이었고, 인생이 영화였다가 ‘하늘의 별’이 된 고故 신성일의 명복을 빈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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