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배송지연 문제

친구 생일선물로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주문했다. 그런데 책은 택배회사 사정으로 예정일보다 5일이나 늦게 도착했다. 결국 서점에서 책을 사서 줬다. 피해 금액이 크다면 모르지만, 이런 경우 참 난감하다. 배송지연으로 피해를 배상해 달라고 요구하면 택배회사가 들어줄지도 의문이다. 외국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택배 배송지연에 따른 피해구제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사진=연합뉴스]
택배 배송지연에 따른 피해구제 제도 마련이 시급해 보인다.[사진=연합뉴스]

최근 한 택배회사 물류센터에서 노동자 사망사고가 잇따라 발생하자 고용노동부는 해당 물류센터에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그 피해가 택배 이용객들에게 돌아갔다. 택배들이 여기저기 다른 택배회사 물류센터로 흩어졌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택배가 분실되거나 늦게 배송됐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 택배 이용자는 과연 어떤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을까. 예컨대 인터넷 쇼핑몰에서 냉동식품을 판매하는 A씨가 있다고 치자. 냉동식품은 배송지연으로 상품가치를, A씨는 고객 불만을 처리하느라 기회요인을 잃었을 것이다. 판매신뢰도도 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A씨는 이런 사실들을 모두 취합해 피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고, 택배회사가 배상하길 인정하지 않는다면 소송을 할 수 있고, 실효성도 있다. 

그럼 단순 배송지연 피해는 어떨까. 이 역시 원칙적으로는 피해배상을 받을 수 있다. 상법 제135조에 따르면 피해자가 배상을 요구할 때 택배회사가 운송물의 수령, 인도, 보관 및 운송에 관한 주의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지 못하면 택배회사는 운송물의 분실, 훼손 또는 연착으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배상액도 정해져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택배표준약관 제20조(손해배상)는 ‘인도예정일을 초과한 일수에 사업자가 운송장에 기재한 운임액의 50%를 곱한 금액’을 보상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도는 운송장기재 운임액의 200%다. 운임액 3000원짜리 물품이 도착예정일보다 2일 늦게 도착했다면 보상금액은 ‘2×1500=3000원’이고, 최대보상 금액은 6000원이다. 

문제는 택배회사가 피해배상을 못하겠다고 버틸 때다. 택배표준약관은 강제성이 없는 권고사항이기 때문이다. 소액이라 소송의 실효성도 없다. 피해배상이 전적으로 택배회사 의지에 좌우되는 셈이다. 이럴 때 문제를 해결할 가장 현실적이고 빠른 방법은 택배회사들이 피해배상 규정을 잘 만들어 놓는 거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택배회사들 가운데 배송지연 피해를 적극적으로 배상하는  곳은 거의 없다. 

해외는 어떨까. 해외의 대형 물류 운송업체들은 국내 업체들보다는 비교적 상세하고 체계적인 ‘지연 및 환불에 관한 규정’을 갖고 있다. 또한 미국 법원은 배송지연으로 인한 불편함을 간접피해로 인정하기도 한다. 소비자가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한 시간이나 전화비용 등까지 배상에 넣기도 한다. 판매자든 구매자든 크게 구분하지도 않는다. 

흥미로운 점은 택배산업의 경우, 미국이나 유럽보다 ‘속도’를 강조하는 한국이 더 발달해 있다는 점이다. 시장 규모가 총매출 기준 5조원(2017년 기준)에 이를 정도다. 그렇다면 택배산업 관련 제도들도 뒤따라 와야 하는 것 아닐까. 2001년 제정되고, 2007년 딱 한차례 개정된 후 바뀌지 않은 구식 택배표준약관으로 현재의 택배산업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툴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인공지능(AI) 택배산업까지 거론되는 시점에서 제도개선이 시급해 보인다. 
남준규 IBS법률사무소 변호사 global@ibslaw.co.kr|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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