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막사진관] 괜찮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천막사진관] 괜찮아! 괜찮아! 다 좋아질 거야
  • 이윤찬 기자
  • 호수 313
  • 승인 2018.11.13 06: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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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방암 수술 환우들의 모임
한국비너스회 유경희 회장 
상심이 클 수밖에 없는 유방암 환우에겐 가족이나 친구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유경희 회장이 ‘함께 하면 괜찮을 거야’는 단순한 진리를 철학으로 삼은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상심이 클 수밖에 없는 유방암 환우에겐 가족이나 친구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다. 유경희 회장이 ‘함께 하면 괜찮을 거야’는 단순한 진리를 철학으로 삼은 이유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빠는 대장암에 눈을 감았다. 수술 59일 만의 사망. 날벼락이었지만 끝이 아니었다. 병마는 대를 물고 딸을 찾아왔다. 이번엔 유방암이었다. 생명의 소중한 젖줄인 가슴을 자신들의 ‘숙주宿主’로 만든 셈이었다.  딸은 아빠와 달랐다. 암에 무릎을 꿇지 않았다. 몹쓸 병마를 애써 이겨냈고, 유방암 환우들을 위한 삶을 살고 있다. 벌써 10년째 헌신獻身이다.  이런 딸을 두고 사람들은 “웃음이 많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무거운 외로움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암을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둔 아빠 때문에 아직도 죄책감에 시달린다는 걸 눈치챈 이도 없다.  더스쿠프(The SCOOP)와 천막사진관이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 한국비너스회 유경희(61) 회장을 만났다. 13번째 주인공이다.  

# 1장. 뇌졸중과 병마  

먼저 아팠던 건 엄마였다. 풍성한 살집 탓인지 혈압이 높았던 엄마는 뇌졸중으로 두번(1992·1997년)이나 쓰러졌다. 몸도, 마음도 성치 않은 엄마 곁을 지킨 이는 아빠였다. 8살 어린 아내. 아빠에겐 곱디고운 여인이었다. “평생 아끼며 살겠다”고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었던 사이였다.    

유경희 회장은 “유방암 환우들은 더 세심하게 보살펴줘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경희 회장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하지만 그 경쾌한 웃음 뒤에 무거운 우울이 숨어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사진=오상민 작가]

티끌 하나도 못 넘기는 남자, 담배꽁초를 말려서 버려야 직성이 풀리는 남자, 몹시 마른 몸에 꼬장꼬장한 성격의 남자…. 예민한 아빠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엄마의 병은 견디기 힘든 형벌 같았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아빠는 단 한번도 체념하지 않았다. 뇌졸중 탓에 거동이 어려운 엄마가 불편하지 않도록 모든 걸 세심하게 챙겼다. 때론 심장에 멍이 들고, 가슴이 긁혔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빠를 찾아온 건 행복이 아니었다. 병마病魔였다.  

#2장. 아빠는 암에 졌다  

고통스러운 변비였다. 배에 가스가 차고, 잔변감殘便感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아빠는 “말하기도 창피한 병에 걸렸다”면서 혀를 끌끌 차곤 했지만 엄마에겐 알리지 않았다. 아빠에게 중요한 건 엄마의 뇌졸중이었지 자신의 잔병이 아니었다.  그러다 ‘심상치 않다’는 걸 느낀 건 변비가 생긴지 7년여 만인 2004년 가을이었다.

어느날 느닷없이 혈변을 쏟아낸 아빠는 교직생활을 하던 작은 딸에게 황급히 전화를 걸었다. “병원에 한번 가봐야겠다. 이상하구나.” 
나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대장암이었다. 엄마도, 자식들도 할 말을 잃었다.

체념이란 걸 몰랐던 아빠도 상심했다. 엄마를 잠시나마 보살펴주지 못한다는 자책 때문이었다. “미안하오. 정말 미안하오. 괜찮아질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하지만 이 다짐은 끝인사가 됐다. 수술 후 아빠는 눈을 뜨지 못했다. 장이 유착되면서 폐혈증이 찾아온 탓이었다. 병원에 입원한 지 59일 만이었다. 자식들은 소리 없이 통곡했다. 엄마의 가슴벽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빠는 암에 졌다.    

유경희 회장의 아버지는 7년 여만에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아챘고, 수술을 받은지 59일 만에 돌아가셨다. 암의 조기진단이 중요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다.[사진=오상민 작가]
유경희 회장의 아버지는 7년 여만에 대장암에 걸린 사실을 알아챘고, 수술을 받은지 59일 만에 돌아가셨다. 암의 조기진단이 중요하다는 걸 잘 보여주는 안타까운 사례다.[사진=오상민 작가]

# 3장. 딸은 암을 이겨냈다 

“드르륵~끽~드르륵.” 멀리서 탁한 음이 울렸다. 묵직한 바퀴들이 철로와 맞닿는 소리. 칠흑 같은 터널을 기차가 내달렸고,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딸은 눈을 떴다. 아무도 없는 방, 고요했다. 시침時針은 오후 3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술방에 들어간 지 5시간 만이었다. 딸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살았구나, 살았어!”

찬바람이 거친 본색을 드러내던 2008년 11월말. 딸은 냉랭한 수술대에 올랐다. 마른 몸매도, 꼬장꼬장한 성격도 아빠를 빼닮은 딸의 가슴에 암이 파고든 탓이었다.  딸에게 암은 단순한 병마가 아니었다. ‘트라우마’였다. 대장암에 걸린 아빠가 59일 만에 숨을 거두셨으니, 감정이 흔들릴 만도 했다. 더구나 암이 뿌리를 내린 곳은 하필 ‘가슴’이었다. 

두 아이의 ‘생명줄’이던 소중한 가슴이 암의 숙주宿主가 된 셈이었다. 딸은 주체할 수 없는 설움을 느꼈다. 야속한 운명이 찬바람을 일으키고 있었다. 

딸은 난생처음 죽음을 떠올렸다. ‘내가 죽은 뒤 내 주변’도 생각했다. 섬뜩한 추정이었지만 약해진 마음은 몸을 지배했다. 수술 날짜가 정해진 다음날부터 딸은 집안 곳곳을 청소했다. 문지방이든 마루든 옷장이든 내키는 대로였다. 

항암치료는 암 환자를 지치게 만든다. 유경희 회장은 1차 항암치료 후 집에 있는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 같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항암치료는 암 환자를 지치게 만든다. 유경희 회장은 1차 항암치료 후 집에 있는 거울을 모두 치워버렸다. 거울에 비친 자신 같지 않은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아빠처럼 수술대에서 눈을 뜨지 못하더라도 세상에 흉을 살 일은 만들고 싶지 않았다. 가슴의 종양이 딸의 ‘심리적 사선死線’까지 뒤흔든 셈이었다. 딸이 5시간에 걸친 수술 후 눈을 떴을 때 “살았구나”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건 이런 트라우마들 때문이었다. 그래, 딸은 무서운 암을 이겨내고 있었다. 

# 4장. 웃음 뒤 무거운 우울  

암은 ‘침묵의 살인자’다. 몸 안에 몰래 잠복해 나쁜 종양을 퍼뜨린다. 무릇 대代를 물고 발병하기 때문에 혹자는 ‘천형天刑’이라 부른다. 하늘의 벌을 운명처럼 똑같이 짊어진 아빠와 딸(유경희 한국비너스회 회장)이 그런 예였다.  

딸 유경희 회장은 톡톡 튀는 선생님(수학)이었다. 고정관념을 무척 싫어했다. 근의 공식, 피타고라스의 정리, 루트…. 이런 것들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 ‘틀에 박힌 법칙이 아니라 왜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게 교사의 몫이라 생각했다. 

유 회장의 삶을 바꿔놓은 건 교편을 놓은(2008년 8월) 직후 찾아온 ‘침묵의 살인자’였다. 아빠를 저 세상으로 보낸 암이 가슴에 발병하면서 그는 힘도, 열정도, 여성으로서의 주체성도 잃었다.  

유경희 회장은 칠흑 같은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마취에서 깼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의 밝은 햇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제야 ‘살았구나’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암은 그만큼 공포스러운 존재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경희 회장은 칠흑 같은 터널에서 빠져나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마취에서 깼다고 말했다. 그는 그날의 밝은 햇빛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그제야 ‘살았구나’라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암은 그만큼 공포스러운 존재다. [사진=오상민 작가]

그렇다고 암에 힘없이 무릎을 꿇은 건 아니었다. ‘왜 배워야 하는지’를 가르쳤던 유 회장은 ‘암을 공부해야 할 이유’를 어렵게 찾아냈고, ‘암의 무서움을 알려야 할 까닭’을 깨쳤다.

이렇게 시작된 ‘헌신獻身’은 갈수록 폭이 넓어졌다. 그는 2014년부터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 한국비너스회를 이끌고 있다. 총무(2009~2010년)·부회장(2011~2013년)까지 포함하면 햇수로 10년째 봉사다.  

유 회장이 완쾌되지도 않은 몸으로 헌신하는 이유는 하나다. 유방암 환우들과 희로애락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유방암 환우들은 생각보다 상처가 많아요. 여성의 상징에 문제가 생겼으니, 괜찮은 게 이상한 일이죠. 그들은 더 세심하게 보살펴줘야 해요. 가족이나 친구들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함께 하면 괜찮을 거야’… 제가 믿는 철학이에요.”  

[※ 참고: 혹자는 “완치율이 높은 유방암은 그렇게 위험한 병이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대부분 남자의 시선이다. 하지만 유방암은 환우들이 중증 스트레스를 받는 암 중 하나다. 한국유방암학회의 설문조사 결과(2014년·542명 대상)에 따르면 유방암 환우의 12.7%가 8점 이상(10점 만점)의 심각한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답했다.]  

유 회장을 아는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천성이 밝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라고 말한다. 예민한 환우들을 배려해야 하는 비너스회 임원을 10년째 맡고 있으니, 그런 평가를 들을 만하다. 언뜻 보면 웃음도 많다.  

하지만 그 웃음 뒤에 무거운 우울이 깔려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그가 암을 이기지 못하고 눈을 감은 아빠 때문에 ‘천형’을 짊어지고 산다는 걸 눈치챈 이도 없다.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 비너스회 회원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역설적이지만 아름다운 동변상련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방암 환우들의 모임’ 비너스회 회원들은 가족처럼 지낸다. 역설적이지만 아름다운 동변상련이다. [사진=오상민 작가]

유 회장은 아빠를 회상할 땐 눈을 지그시 감았다. 눈시울이 붉어지는 걸 감추기 위한 무의식적 행동 같았다. “아빠가 계셨다면 지금 유방암 환우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대화를 나눴을 거예요. 아빠도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전 기회가 없었어요.”  

딸은 또 눈을 감았다. 2009년 겨울, 가발을 쓴 누군가가 서울대병원 지하 1층 이발소 앞에 우두커니 서있는 모습이 보였다. 새카만 얼굴에 깡 마른 몸, 딸이었다.   

# 5장. 항암치료와 이발소 

1차‧2차‧3차‧4차. 9주 한 세트. 또 다시 5차‧6차‧7차‧8차. 9주 두 세트….  통상 3주에 한번씩 받아야 하는 항암치료는 암 환우에게 ‘인고忍苦의 시간’이다. 악성 종양을 잡기 위해 더 독한 약을 몸 속에 집어넣으니, 왜 고통스럽지 않겠는가. 

2009년 1월 항암치료를 시작한 딸도 그랬다. 식욕이 떨어지고, 기력이 빠졌다. 두통은 온종일 말초신경을 건드렸다. 손가락의 허물도 한꺼풀씩 벗겨졌다. 엄지‧검지‧중지…. 순서대로였다. 머리카락도 한 웅큼씩 빠졌고, 몰골은 점점 형편없어졌다.

더 괴로운 건 ‘외로움’이었다. 목욕탕도, 미용실도 갈 수 없었다. 흉한 얼굴과 쭈글쭈글해진 가슴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그럴수록 한탄만 쌓여갔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단 말인가. 왜 우리집에만 병마가 찾아온단 말인가.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만, 왜 나만….”  

항암치료를 받을 때 유경희 회장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서울대병원 구내이발소에서 머리를 박박 깎을 땐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는 그때 그 바리캉의 서늘한 감촉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사진=오상민 작가]
항암치료를 받을 때 유경희 회장은 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서울대병원 구내이발소에서 머리를 박박 깎을 땐 눈물을 감추기 위해 애썼다. 그는 그때 그 바리캉의 서늘한 감촉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사진=오상민 작가]

2009년 2월. 1차 항암치료를 마친 딸의 병원 진료가 예약된 날이었다. 여전히 냉기를 품은 바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 자연스럽게 몰골을 가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추위보다 무서운 건 사람들의 낯선 시선이었다.  

그날 11시께. 진료를 받은 딸은 병원 지하 1층으로 내려가 구내이발소 앞에 우뚝 섰다. 남자들만 가는 이발소. 미용실에 갈 수 없으니, 한번은 와야 할 곳이었다. 듬성듬성한 머리카락을 어떻게든 밀어야 했다.  

“삐익~.” 문을 열었다. 이발사가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얼마나 많은 여성 환우들을 본 것일까. 이발사는 아무 말도 건네지 않았다. 이발사 나름의 무뚝뚝한 배려였다. 

딸은 가발을 벗었다. “밀어주세요.” 바리캉이 움직였다. 적막함이 깨졌다. 항암치료 때문인지 새하얗게 질린 머리가 드러났다. 딸은 고개를 숙였다. 거울에 비친 박박머리가 미치도록 싫었다. 

# 6장. 낡은 노트와 못난 선생  

“댕댕댕~.” 울림은 슬펐고, 여음은 지루했다. 자명종 소리에 딸은 꿈에서 깼다. 그곳에서 딸은 암에 짓눌린 외톨이였다. ‘도와달라’고 애걸했지만 들어주는 이는 없었다.  지긋지긋한 악몽. 딸에게 암은 사라지지 않는 피멍 같았다. ‘항암치료가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딸은 악몽을 꿨고, 괴로움에 치를 떨었다. 중증이었다.  

암에 시름하던 유경희 회장은 삶의 변곡점을 스스로 찾아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이 우울감에 허우적대던 그를 변화시켰다. [사진=오상민 작가]
암에 시름하던 유경희 회장은 삶의 변곡점을 스스로 찾아냈다. 아이러니하게도 아이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이 우울감에 허우적대던 그를 변화시켰다. [사진=오상민 작가]

변곡점變曲點 : 수학용어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자리를 나타내는 곡선 위의 점.  

그렇게 한달여. 딸은 우연히 낡은 노트를 폈다.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알려주기 위해 끄적댔던 메모장이었다. “너희들은 지금 커다란 변곡점에 서있을지 몰라. 굴곡의 방향이 바뀌는 걸 즐기고 만끽해라. 삶은 늘 다양하게 변주變奏되는 법이란다.”  

딸은 피식 웃었다. “자기가 말한 것도 지키지 못하는 참 못난 선생이구나.” 그걸 몰랐던 게 아니었다. 암은 중요한 변곡점이었지만 딸은 ‘삶의 변주’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저 이전 같기를 바랐고, 이전 같지 않음을 저주했다. 억울함은 처절한 늪을 만들었고, 그 늪은 체념을 일으켰다. 먼지가 켜켜이 쌓인 낡은 노트는 딸에게 가르침을 주고 있었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더 이상은 ….”  

# 7장. 지루하지 않은 여행  

항암치료 1세트(1~4차)가 끝나자 봄이 왔다(2009년 3월). 딸은 암 관련 책을 읽기 시작했다. 왜 암에 걸렸는지 알아야 했다. 암의 징조와 예후豫後도 깨쳐야 했다. ‘유방암 환자들의 모임’인 한국비너스회(용산지회)의 문을 두드린 것도 더 많은 암 자료를 얻기 위해서였다.    

배움은 모든 걸 바꿔놨다. 고기와 단빵을 좋아했던 딸은 채식을 시작했다. 틈만 나면 산등성이를 타면서 자연과 호흡했다. 바람은 희망을 건넸고, 햇빛은 꿈을 선물했다.

항암치료 후 볼품 없어진 몸에도 변화가 생겼다. 새하얗던 두피를 뚫고 머리카락이 자랐다. 어둡게 물들었던 얼굴도 색조를 찾아갔다. 움푹 팼던 양쪽 볼에는 살이 살짝 올라왔다.

단빵 마니아였던 유경희 회장은 암 수술 후 식습관을 채식으로 바꿨다.[사진=오상민 작가]
단빵 마니아였던 유경희 회장은 암 수술 후 식습관을 채식으로 바꿨다.[사진=오상민 작가]
1차 항암치료를 받고 산등성이를 처음 탔을 때 유경희 회장은 “저 잎을 내년에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상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그 잎을 보고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1차 항암치료를 받고 산등성이를 처음 탔을 때 유경희 회장은 “저 잎을 내년에 다시 볼 수 있을까”라는 상념에 사로잡히곤 했다. 하지만 그는 오늘도 그 잎을 보고 있다.[사진=오상민 작가]

딸의 마음에도 그제야 봄꽃이 폈다. “아빠도 암 교육을 제대로 받았다면 암을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많은 사람들에게 암의 위험성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그건 헌신의 시작이었다. 

딸은 곧장 ‘한국유방암예방홍보강사회(한유예강)’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다. 1년에 한번씩 암 강사를 배출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다. 암의 예방수칙 등을 널리 알릴 생각에서였다. 교직의 경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작지만 단단한 포부도 있었다.  

암 자료를 찾기 위해 가입했던 비너스회의 일도 그 무렵 시작했다. 총무·부회장을 거쳐 지금은 5년째 회장을 맡고 있다. 무보수 봉사직이다. 딸은 “저와 비너스회 임원들은 사비私費를 털어야 할 때가 더 많아요”라면서 방긋 웃었다. “인생의 미래는 알 수 없지만 전 지금 지루하지 않은 여행을 하고 있어요. 변곡점을 만끽하고 있는 거죠.” 딸은 ‘천형’을 덜어내고 있었다.  

# 8장. “함께 해요, 괜찮아요”  

지난 10월 딸은 눈코 틀 새 없이 바빴다. ‘핑크리본의 달(유방암 의식 함양의 달)’을 맞아 핑크리본 마라톤대회(서울), 대국민건강강좌, 바자회, 합창단 핑크 캠페인 등 숱한 이벤트가 열렸기 때문이다. 딸의 정성이 구석구석 미치지 않은 이벤트가 없었다. 박춘숙 비너스회 공동회장도 헌신을 바쳤다.  

2018 핑크런 서울 마라톤에 참가한 유경희 회장과 비너스회 회원들. [사진=오상민 작가]
2018 핑크런 서울 마라톤에 참가한 유경희 회장과 비너스회 회원들. [사진=오상민 작가]
비너스 합창단이 지난 10월 제2롯데월드에서 열린 핑크리본 캠페인 행사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합창단은 매주 한번씩 모여 연습을 하고 암 환우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연을 갖는다.[사진=오상민 작가]
비너스 합창단이 지난 10월 제2롯데월드에서 열린 핑크리본 캠페인 행사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다. 합창단은 매주 한번씩 모여 연습을 하고 암 환우들을 위해 지속적으로 공연을 갖는다.[사진=오상민 작가]

1년 중 가장 바쁜 달을 보냈지만, 딸은 여전히 겨를이 없다. 산악팀·요가팀·합창단 등 비너스회 산하단체들과 호흡을 함께해야 한다. 전국 20여개 지회의 팀장들과도 소통해야 한다. 회장에겐 중요한 과제다. 환우들의 힐링과 맞닿아 있어서다.  

비너스회에 새로 가입한 환우들의 마음을 보듬는 것도 딸의 몫이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동요하기 쉬운 사람들이다. 딸이 그랬듯 참담함과 절망 속에서 갈피를 못 잡는 이들도 많다. 가족들에게 유방암 발병 사실을 알리지 못한 채 속앓이만 하는 환우들도 수두룩하다.  

“유방암 환우들은 연약한 존재예요. 환부가 여성의 상징이기 때문에 정신적 고통이 심하죠. 그래서 환우들에게 답답하면 시원하게 털어놓으라고 말해요. 아픈 가슴에 슬픔까지 묻어두기엔 너무 힘든 병이거든요.”  

#9장. 바람의 목소리  

바람이 말했다.  
지금 내게 괜찮다 … 괜찮아 …  
(신준모의 「어떤 하루」 중) 

얼마 전 늦은 밤이었다. 딸의 전화기가 울렸다. 1기 유방암이었지만 종양이 넓게 퍼져 한쪽 가슴을 떼내야 하는 중년의 환우였다. 그녀는 비애悲哀의 칼이 심장을 후벼 파는 것 같다면서 밤새 울었다. 삶을 치열하게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부모님이 물려주신 예쁜 몸만 망가졌다며 분을 끓였다. 묵언默言이 때론 위로라지만 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유경희 회장은 슬픔에 빠진 암 환우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그는 집 근처 서달산 산책로를 걷는다. 저 세상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이다.[사진=오상민 작가]
유경희 회장은 슬픔에 빠진 암 환우들에게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그럴 때면 그는 집 근처 서달산 산책로를 걷는다. 저 세상 아버지와의 대화 시간이다.[사진=오상민 작가]

다음날 딸은 일찌감치 집에서 나왔다. 새벽녘까지 한恨을 쏟아낸 중년의 환우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전날밤 위로 한마디 못 건넨 게 마음에 걸린 탓이었다. 이럴 때면 딸은 저 세상 아빠에게 여쭙고 싶은 게 있다. “아빠는 뇌졸중 탓에 힘겨워하신 엄마를 어떻게 위로하셨나요?” 

딸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바람이 머리 위로 쏟아졌다. 그 바람이 딸에게 말했다. “괜찮다, 괜찮아.” 아빠가 답했다. “딸아 괜찮아, 모두 괜찮아질 거야.”   

글=이윤찬 더스쿠프 기자  
chan4877@thescoop.co.kr 

사진=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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