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선 냉정한 현주소 

최근 한국 조선업의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하지만 부활을 논하기엔 산적한 리스크가 너무 많다. 대형사와 중형사 간 양극화는 심해지고, 미중 무역전쟁은 회복세를 보이는 선박 발주량에 제동을 걸 우려가 크다. 무엇보다 움츠러든 세계시장이 회복하기엔 때가 이르다. 조선업이 과거와 같은 호황을 누리려면 2040년은 돼야 한다는 전망도 나온다. 한국 조선이 옛 영광을 되찾으려면 20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조선의 냉정한 현주소를 살펴봤다. 

한국 조선의 부활이 다가왔다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회복을 가로막는 리스크가 숱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한국 조선의 부활이 다가왔다는 희망적인 전망이 나온다. 하지만 아직은 회복을 가로막는 리스크가 숱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2016년 최악의 수주가뭄이 한국 조선을 휩쓸고 간 지 2년여. 여전히 곳곳에서 곡소리가 새어나오고 있지만 한국 조선은 차근차근 회복세를 걷고 있다. 특히 최근엔 중국에 빼앗겼던 세계 1위 자리(연간 시장점유율 기준)를 탈환할 기회도 잡았다. 시장 안팎에서 한국 조선의 부활찬가가 울려퍼지는 이유다. 

하지만 샴페인을 터뜨리기엔 산적한 리스크가 숱하다. 무엇보다 장기 불황의 터널을 지나면서 한국 조선의 몸집이 크게 줄어든 탓에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기가 어려워졌다. 불황의 늪에서 대형 조선사들은 혹독한 다이어트 감행했고, 적지 않은 중소형 조선사들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일례로, 조선3사(현대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ㆍ삼성중공업)의 노동자 수는 2014년 5만4227명에서 지난 6월 3만6183명으로 줄었다. 도크(선박 건조ㆍ수리 시설)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각각 3개, 2개씩 폐쇄했다. 중형 조선소 중에는 수주잔량 기준으로 세계 16위까지 올랐던 신아SB가 지난 2015년 파산했다. 

더구나 대다수 조선사들은 여전히 구조조정을 진행 중이거나 법정관리 절차를 밟고 있다. 특히 조선3사는 노동자 수를 더 줄여야 한다. 현대중공업은 올해 해양플랜트 일감이 끊기면서 2000여명의 유휴인력이 발생해 처리문제를 두고 노사간 갈등을 빚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은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안을 이행하려면 올해 각각 1000여명, 2000여명의 인원을 감축해야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대표 중형 조선사인 성동조선해양은 지난 4월 법정관리에 들어갔고, STX조선해양은 법정관리를 밟을 뻔한 위기에서 간신히 벗어났지만 여전히 경영난과 구조조정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그만큼 과거 국내 경제의 한 축을 지탱하던 때처럼 수익과 가치를 창출해내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거다.

 

몸집이 줄어든 건 한국 조선만이 아니다. 글로벌 조선 시장의 규모도 대폭 줄었다. 2007년 호황기에는 연간 920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ㆍ선박 무게 단위 GT에 선박의 부가가치와 작업 난이도 등을 적용한 단위)의 발주가 쏟아졌지만, 올해 1~10월 누적 발주량은 2305만 CGT에 불과하다. 문제는 당장 조선업의 호황을 이끌 만한 유인책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신조新造 선박 발주가 증가하려면 두가지 요인이 있어야 한다. 

첫째는 세계 경기 활황으로 물동량이 증가해야 하고, 둘째는 노후 선박의 교체주기가 돌아와야 한다. 실제로 조선이 호황이었던 2006~2008년엔 이 두가지 요인이 맞물렸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통상 선박 발주는 완만하게 늘기보다는 세계 경기 상황에 따라 한번에 몰리는 경우가 많다”면서 “2006~2008년엔 중국의 개발 수요와 베이징 올림픽 효과, 노후 선박의 교체주기가 맞물리면서 호황을 이뤘다”고 설명했다.

한 대형 조선사 관계자도 같은 맥락에서 조선업이 예전과 같은 규모를 회복하긴 좀처럼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급성장하면서 조선업도 호황을 이뤘는데 최근 중국의 성장세가 둔화하고 있다. 또다시 호황을 이루려면 중국만큼 성장할 수 있는 신흥국이 나와야 하는데 지금으로선 어려워 보인다. 앞으로의 조선 시장은 선박의 교체 수요를 처리하는 정도에 그칠 가능성도 높다.”

대형사와 중형사 간 수주실적이 양극화하고 있다는 점도 한국 조선이 안고 있는 리스크다. 한국 조선이 올해 1~9월 수주한 물량은 1004만 CGT로, 전년 동기 수주량인 547만 CGT보다 83.5%가량 늘었다.

 

하지만 수출입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같은 기간 중형 조선사들이 기록한 수주실적은 44만 CGT로 전년 동기 대비 되레 26.2%가량 줄었다. 더구나 중형 조선사가 수주한 선종은 대부분이 탱크선이다. 탱크선은 후판 비중이 가장 높은 선종이어서 후판 가격이 크게 인상된 요즘 시기엔 수주의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선사들의 발주가 주로 LNG선과 대형 컨테이너선에 몰리고 있어 중형 조선사들의 먹거리는 갈수록 줄고 있고, 벌크선이나 탱크선도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 조선사에 밀릴 수 있다”면서 “중형 조선사들은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받기 어렵다는 점도 수주를 저해하는 요인이다”고 설명했다.

미중 무역전쟁 우려가 회복세를 걷고 있는 조선업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로 미중 무역전쟁으로 물동량이 9%가량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물동량이 2016년 수준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클락슨 리서치에 따르면 2016년 1억8200만 TEU(1TEU는 20피트 컨테이너 1개)였던 컨테이너 물동량은 2018년 2억 TEU로, 9.9% 증가했다. 문제는 해상 물동량이 감소하면 그만큼 선박 발주량도 줄어들 공산이 크다 점이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중국의 경제 성장이 주춤하면서 컨테이너선 발주가 줄어들 우려가 큰데, 무역전쟁은 이를 가중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 16위까지 올랐던 중형 조선사 신아SB는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다.[사진=연합뉴스]
세계 16위까지 올랐던 중형 조선사 신아SB는 불황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했다.[사진=연합뉴스]

물론 리스크만 있는 건 아니다. 한국 조선이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LNG선의 발주가 증가 추세에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이다. 국제해사기구(IMO)의 규제가 다가오면서 선박의 교체주기가 앞당겨진 결과다. 다만, 눈앞의 결과물에 급급하기보다는 장기적으로 내다봐야 한다.

홍성인 연구위원은 “통상 선박 발주는 한번에 몰리는데, 가까운 미래는 아니다”면서 “지금은 느리게 증가하는 구간이며, 로이드리스트(조선ㆍ해운 전문지)에 따르면 2040년에는 선박 교체주기와 세계 경기 활황에 따른 물동량 증가가 맞물려 다시 고점을 찍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국 조선은 더디지만 차근차근 회복세를 걷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이르다. 지금 해야 할 일은 기초체력을 기르면서 수주실적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이라는 얘기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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