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덜 불평등해진 이유를 아는가

1980년, 미국의 상위 1% 부자 소득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였다. 당시엔 서유럽도 그랬다. 고소득자 소득 비중이 10%에 불과했다. 하지만 36년 뒤인 2016년, 미국은 20%로 치솟았고 서유럽은 12%에 그쳤다. 두 국가의 불평등 그래프가 다른 곡선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이 전하는 무거운 함의를 취재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고소득층의 지갑은 두꺼워졌고 서민들의 소득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경기침체에도 고소득층의 지갑은 두꺼워졌고 서민들의 소득 수준은 나아지지 않았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부유한 사람은 점점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점점 더 가난해진다.” 불변의 명제처럼 여겨지는 이 현상을 숫자로 분석한 보고서가 나왔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가 지난해 12월 여러 학자들과 공동으로 펴낸 ‘2018 세계불평등보고서’다.

사실 불평등을 분석하려는 시도는 많다. 예컨대, 한국 통계청은 매년 지니계수를 발표한다. 하지만 이 숫자는 현실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는 약점을 갖고 있다. 0에 가까울수록 평등을, 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한 것을 의미하는 이 지표가 0.304(2016년 기준)에 불과한 걸 보면서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이런 점에서 이 보고서는 남다르다. 그간의 불평등 연구는 주로 가계 설문조사를 근거로 삼았다. 문제는 이런 조사로는 최상위 부자들의 자산 현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당연한 일이다. 높고 두꺼운 대문을 노크하는 통계청 조사원에게 기꺼이 자신의 모든 자산과 소득을 내주는 최고 수준의 부자는 상상하기 어렵다.

2018 세계불평등보고서의 근거 자료는 글로벌 경제학자 100여명이 모여 만든 ‘세계 부와 소득 데이터베이스’다. 가계소득 자료뿐만 아니라 국가 전체 소득과 부의 통계, 소득세 관련 자료, 상속 관련 데이터, 역외자산 추정치 자료 등 각 국가에서 활용 가능한 모든 자료를 분석했다.

결과는 놀랍지 않다. 1980년엔 상위 1%의 소득이 하위 50% 소득보다 27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글로벌 부 최상층에 자리한 억만장자들의 자산 규모는 천문학적이다. 블룸버그의 세계 500대 억만장자 순위를 보면 세계 최고 갑부는 제프 베조스 아마존 CEO를 비롯해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워런 버핏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아만시오 오르테가 인디텍스그룹 회장,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등이다. 이들의 재산을 모두 합하면 4255억 달러쯤 된다. 우리나라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약 1조6932억 달러의 20%에 이른다. 태국(4837억3900만 달러)의 경제 규모와는 맞먹을 만한 부다.

자산불평등은 더 심각하다. 보고서는 세계의 자산 상위 10% 계층이 글로벌 자산 70%를 차지(2017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원인은 간단하다. 대부분의 서민은 일을 해서 돈을 번다. 반면 소득 상위 1%는 근로소득보다는 자산을 굴려 버는 돈이 많다. 「21세기 자본」에서 “돈이 돈을 버는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보다 빠르기 때문에 자본주의 아래에서 부자는 더 부유해지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질 수밖에 없다”고 꼬집은 피케티 교수의 주장과 같은 맥락이다.

미국과 유럽의 불평등 현주소

결국 과제는 부의 불균형을 어떻게 바로잡느냐는 것이다. 보고서는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심화된 건 맞지만, 국가별 속도와 정도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체 국민소득 중 상위 10% 소득자에게 돌아가는 몫은 ‘유럽(37%)’ ‘중국(41%)’ ‘러시아(46%)’ ‘미국과 캐나다(47%)’ ‘인도(55%)’ ‘중동(61%)’ 등으로 제각각이었다.

추세로 보면 서유럽과 미국이 극단적으로 갈렸다. 1980년에는 두 지역 모두 상위 1%의 소득이 전체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 안팎이었다. 2016년에는 서유럽이 12%로 소폭 늘어난 반면 미국에선 20%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미국의 하위 50% 계층의 소득은 20%에서 13%로 떨어졌다.

보고서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폭이 커진 건 조세의 누진성이 약화된 데다 교육 분야의 불평등이 더욱 악화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한다. 실제로 1960년 24개 구간으로 나누고 최고세율이 91%에 달했던 미국의 조세 체계는 올해 7개 구간으로 축소되고 최고세율도 37%로 쪼그라들었다.

반면 유럽은 조세 누진성이 덜 약화됐고 교육과 임금 책정이 저소득층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정책이 이어지면서 불평등이 감소했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정책이 불평등에 직결된다는 것을 방증한 셈이다.

아무런 변화 없이 글로벌 사회가 2050년을 맞았을 때의 가정은 암담하다. 세계 상위 1%의 자산 집중도는 2016년 33%에서 2050년 약 39%로 높아지고, 같은 기간 소득 집중도 역시 20%에서 24%로 늘어날 것이라고 보고서는 내다봤다. 

보고서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건 ‘유럽의 길’이다. 고율의 누진 소득세로 조세정책을 전환하고, 평등한 교육정책을 펼쳐야 한다는 거다. 아울러 전국가적으로 글로벌 금융자산의 소유권을 기록하는 ‘금융등록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하면 2050년 세계 상위 1%의 소득 집중도가 18%로 외려 낮아질 것이라 강조했다.

물론 쉽지 않은 길이다. 이건민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의 설명을 들어보자. “불평등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각국 정부의 역량이 갈수록 후퇴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진국과 신흥국을 막론하고 발견된 공통 현상이 있다. 바로 국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공공자산이 민간부문으로 대거 이전됐다는 거다.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수많은 국가에서 공공자산을 민영 기업에 넘긴 탓이다. 이럴수록 정부의 불평등 해소 정책의 효과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러시아ㆍ미국보다 높은 소득불평등

물론 이 보고서는 불평등 이슈를 해결할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여기에도 무미건조한 숫자가 나열돼 있다. 다만 정확한 통계를 근거로 토론이 진행된다면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는 관문이 열릴 수 있다. 보고서의 연구진들이 목표를 삼은 것도 이 지점이다. 불평등이라는 잔인한 악순환을 공론화하자는 거다. 연구원들이 인터넷을 통해 모든 원자료를 공개한 건 그 때문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우리나라에선 경제적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게 큰 뉴스가 되지도 못한다. 이 보고서엔 한국 사례도 없다. 우리 정부 역시 소득과 부를 둘러싼 많은 원자료를 비밀에 부치고 있다. 물론 추정은 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국세통계연보를 토대로 노동ㆍ사업ㆍ금융소득 합계를 분석해 발표한 자료를 보자. 전체 국민 소득 중 상위 10% 집단에 돌아가는 몫은 2015년 기준 48.5%였다. 1980년대 33~35%를 유지하던 게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인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가파르게 높아졌다.

세계불평등보고서 2018이 분석한 러시아(46%), 미국(47%)보다 높은 수치다. ‘불평등은 너무 당연한 일’이라며 코웃음만 치고 있을 때가 아니란 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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