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사태의 애먼 피해자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의 실체가 드러났다. 갑론을박은 여전하지만 삼바의 분식회계는 벌써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이슈건으로 튀었다. 문제는 돈도, 시간도, 배경도 없는 소액주주들이다. 삼바든 삼성물산이든 애먼 소액주주만 회오리에 말려들게 생겼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소액주주들의 눈물을 취재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삼바와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들의 움직임만 바빠졌다.[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문제가 불거지면서 삼바와 삼성물산의 소액주주들의 움직임만 바빠졌다.[사진=연합뉴스]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는 삼성바이오에피스(에피스) 투자주식을 취득원가로 인식하면서 콜옵션 부채만을 공정가치(시장가치)로 인식할 경우 회사의 재무제표상 자본잠식이 될 것을 우려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배력 변경을 포함한 다소 비정상적인 대안(분식회계)들을 적극적으로 모색했다. 삼바는 2015년 지배력 변경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회계원칙에 맞지 않게 회계처리기준을 자의적으로 해석ㆍ적용하면서 이를 ‘고의’로 위반했다.” 

지난 14일 증권선물위원회 의결 내용 일부다. 어렵게 쓰여진 이 내용을 쉽게 풀어보면 다음과 같다. 2015년 삼바는 회계기준을 변경해 자회사 에피스를 관계사로 바꿨다. 이유는 합작사인 바이오젠(투자비율 15.0ㆍ삼바 85.0%)이 콜옵션을 행사함에 따라 지배력을 상실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7일 공개한 삼바 내부문건(2015년 6~11월 작성)에 따르면 바이오젠은 콜옵션 행사를 연기했다. 에피스를 관계사로 변경해야 할 원인이 없었다는 거다. 당연히 회계기준을 변경하면 삼바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금액(1조8000억원)을 부채로 인식해야 했다. 자본금이 6000억원에 불과했던 삼바는 자연스럽게 완전잠식 상태가 됐고, 상장조건(상장은 2016년 11월) 역시 충족하지 못했다.

그러자 삼바는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가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회계기준을 변경해 에피스를 관계사로 바꿨다. 대신 에피스의 시장가치를 4조5000억원으로 부풀렸다. 참고로 이 시장가치는 당시 증권사들이 내린 가치평가액의 평균값을 토대로 매겼는데, 이런 식의 평가방식은 전례가 없다. 삼바는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손실로 처리하고도 2조7000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이게 약간의 살을 보탠 증선위 의결 내용의 핵심이다.[※참고 : 증선위는 애초 삼바가 에피스를 관계사로 보고 바이오젠의 콜옵션을 손실로 처리했어야 하지만, 그러지 않음으로써 훗날 ‘다소 비정상적인’ 무리수를 뒀다고 해석했다.]

 

삼바는 증선위 판단을 정면 반박했다. 삼바 측은 “2016년 한국공인회계사회 위탁감리뿐만 아니라 금감원이 참석한 질의회신, 연석회의 등으로부터 공식적으로 문제없다는 판단을 받았고, 다수의 회계전문가들로부터 회계처리가 적법하다는 의견도 받았다”면서 “행정소송을 통해 회계처리 적법성을 입증하려 노력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후폭풍 큰 삼바 분식회계 

중요한 건 삼바의 ‘고의적 분식회계’가 삼바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삼바의 분식회계는 2015년 9월 진행된 제일모직(삼바 지분율 46.0%)과 삼성물산의 합병 비율(1대 0.35) 산정에 영향을 미쳤고, 이 합병비율은 다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삼바뿐만 아니라 합병 비율에서 피해를 봤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삼성물산의 주주들도 후폭풍에 말려들 수 있다는 얘기다. 

문제는 소액주주들이다. 먼저 삼바는 분식회계 이슈만으로 최근 두달 새 주가가 반토막 났다. 현재는 거래가 정지된 상태다. 소액주주들로선 답답하기 짝이 없다. 더구나 증선위 결론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삼바는 분식회계를 통해 상장 요건을 갖췄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도 상장폐지감이다. 다만 삼바가 나름의 심사를 거쳐 투명하게 공개된 기업이라 믿고 투자한 선의의 소액투자자들이 있어 무조건 상장폐지를 쉽게 결정하기가 어려울 뿐이다.

삼성물산 소액주주도 문제다. 이들 중 일부는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를 결성해 지난해 6월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 1심에서 삼성물산 합병에 개입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자, 이를 계기로 정부를 상대로 집단손배소송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삼바의 분식회계 논란과 상장폐지는 자신들의 이해관계와 직결될 수밖에 없다. 합병의 불합리함을 뒷받침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원하는 결론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돈도, 시간도, 배경도 없는 소액주주들이 기관투자자들도 입증하기 어려운 오너리스크를 법적으로 따져 묻는 건 쉽지 않다. 긴 시간과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올해 7월 우리 정부에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시작한 엘리엇이나 지난해 11월 1심에 패소하고도 합병 무효소송을 이어가고 있는 일성신약처럼 대응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 얘기다. 

더구나 소액주주들은 구심점이 없으면 빠르게 흩어지기 일쑤다. 경영컨설팅업체 리앤제이마커드아시아의 이태훈 대표는 “기업들은 소송에서 지면 그걸로 끝이지만 소액투자자들 가운데는 ‘없어지면 안 될 돈’을 잃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소액투자자들의 손해가 더 크다”면서 “하지만 소액주주들의 소송은 어떤 식으로든 추가적인 시간과 돈의 압박을 받기 때문에 장기간 이어나가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이럴 땐 구심점 역할을 해줄 곳이 필요한데 엘리엇이나 일성신약 측도 각각 소송을 진행 중이어서 쉽게 삼성물산 소액주주들과 연대할 상황도 아닌 것 같다”면서 “결국 돈과 시간이 있는 투자자들은 최대한 이익을 챙기고, 그렇지 않은 투자자는 소외받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삼바 분식회계로 애먼 소액주주만 또 벼랑에 몰렸다. ‘불법과 편법에 손해를 입는 건 결국 힘 없는 자들’이라는 속설만 더 강해지게 생겼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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