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느냐 마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폴더블폰은 정체된 휴대전화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게임 체인저로 꼽힌다. 혁신의 핵심은 디스플레이 기술력이다. 삼성전자가 지난 7일 폴더블폰을 선보일 수 있었던 것도 최고의 디스플레이 업체 삼성디스플레이 덕이다. 그런데 기술력이라면 밀리지 않는 LG디스플레이가 웬일로 잠잠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과 달리 TV용 패널에 강점이 있는 LG는 롤러블을 밀고 있어서다. 접는 것보다 마는 걸 택했다는 얘기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폴더블폰에 숨은 삼성과 LG의 이야기를 취재했다. 

지난 11월 7일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삼성전자가 폴더블폰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1월 7일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삼성전자가 폴더블폰 프로토타입을 공개했다.[사진=연합뉴스]

지난 7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모스콘 센터에서 열린 삼성 개발자 콘퍼런스. 연단에 선 저스틴 데니슨 삼성전자 미국법인 상무는 차세대 스마트폰 관련 기조연설을 하던 중 재킷 안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4.6인치(약 11.7㎝) 남짓한 크기의 스마트폰. “기존 모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푸념이 나올 찰나. 데니슨 상무는 이내 책을 펼치듯 열어젖혔고, 활짝 펼쳐진 스마트폰은 7.3인치(약 18.5㎝) 크기의 대형 화면으로 뒤바뀌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개발 중인 ‘폴더블(foldableㆍ접을 수 있는)폰’의 프로토타입이다. 폴더블폰은 말 그대로 화면이 접히는 휴대전화다. 접었다가 펴도 화면에 이상이 없고, 사용하는 데도 지장이 없다. 오히려 접은 상태에서는 일반 스마트폰처럼 사용하고, 편 상태에서는 태블릿PC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삼성전자의 폴더블폰 공개가 화제를 모은 건 이런 장점 때문만은 아니다. 폴더블폰은 차세대 스마트폰의 한 형태로, 정체된 휴대전화 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게임 체인저’가 될 것으로 주목을 받아왔다. 실제로 2007년 애플의 아이폰이 스마트폰 시장을 열어젖힌 이후 줄곧 변화가 없던 바(bar) 형태가 10년여 만에 바뀌는 것이다. 삼성전자 외에도 많은 휴대전화 제조사들이 폴더블폰 출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 디스플레이 업체 로욜은 삼성전자보다 한발 앞선 10월 31일 폴더블폰 ‘플렉시파이’를 최초로 공개했고, 오는 12월 안에 출시할 계획이다. 화웨이도 2019년 초에는 폴더블폰을 내놓을 것이라는 계획을 밝혔고, 애플도 시장 상황을 살피고 있는 중이다. 

삼성전자가 ‘폴더블폰’을 밀어붙일 수 있는 까닭은 ‘디스플레이 기술력’에 있다. 삼성디스플레이의 수준 높은 플렉시블(flexible) OLED 기술력이 폴더블폰의 생산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얘기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글로벌 선두업체다.[※참고 : 플라스틱 소재를 기반으로 만든 플렉시블 OLED는 얇고 유연한 게 장점이다. 유리기판을 쓰는 리지드(rigid) OLED가 딱딱하고 평평하다는 점과 다르다. 플렉시블 OLED가 폴더블, 롤러블(rollableㆍ말 수 있는), 스트레처블(stretchableㆍ신축성 있는) 등 다양한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이유다.]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점은 디스플레이 업계의 양축 중 한곳인 LG의 행보다. LG는 기술력만은 최고라는 평을 받는 LG디스플레이가 있음에도 ‘폴더블폰’을 밀어붙이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서로 다른 OLED 시장에서 강점을 갖고 있어서다.

먼저 삼성부터 보자. 삼성디스플레이는 중소형 OLED의 강자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올 1분기 중소형 OLED 시장에서 95.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다. 그래서인지 중소형 OLED에 적합한 폴더블 기술에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반면, LG디스플레이는 대형 OLED에 강점이 있기 때문에 ‘롤러블 기술’에 집중하고 있다. 대형 OLED 패널엔 폴더블보다는 롤러블이 좀 더 적합하기 때문이다. LG디스플레이가 지난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국제가전박람회(CES) 2018’에서 롤러블 TV를 선보인 건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물론 삼성디스플레이에 롤러블 디스플레이 개발 기술이 없거나, LG디스플레이가 폴더블을 못 만든다는 얘기는 아니다. 삼성은 과거 롤러블 디스플레이를 시연한 바 있다. LG디스플레이는 폴더블 관련 특허를 94개(2017년 기준)나 보유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80개)보다 되레 많다. 다만, 현 시점에서 어느 기술에 중점을 두고 있느냐의 차이다.

 

실제로 폴더블과 롤러블은 비슷한 듯 보이지만 기술의 핵심 포인트가 다르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폴더블은 접히는 부분의 곡률(곡선의 휘는 정도)이 거의 제로가 될 정도로 빈틈없이 딱 붙게 만드는 게 관건이고, 롤러블은 접히는 부분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 자연스럽게 말리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폴더블폰의 의미는 휴대전화 시장 못지않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도 중요하다. 차세대 OLED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기술력을 겨루는 장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폴더블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한발 앞서나갔다. 하지만 차세대 디스플레이의 형태는 접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LG디스플레이가 롤러블이라는 또다른 무기를 언제 꺼내들지 모른다. 접느냐 마느냐, 그것이 경쟁력인 시대가 왔다. 

[플렉시블 OLED 통할까]

굳이 접을 필요가…


디스플레이 기술력의 진화는 리지드(Rigid) OLED 위주의 시장을 플렉시블(Flexible) OLED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2007년 중소형 OLED를 양산하면서 OLED 시장이 열린 이후 일부 고가 모델을 제외하고는 리지드 OLED를 탑재하고 있다. LG디스플레이가 2013년 양산을 시작했지만 지난해가 돼서야 시장성을 갖추기 시작한 대형 OLED 시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유수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폴더블폰 출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선 왜 폴더블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를 비롯한 유수의 스마트폰 제조사들이 폴더블폰 출시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선 왜 폴더블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야 한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폴더블폰 출시를 기점으로 플렉시블 OLED의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시장조사업체 유비산업리서치는 오는 2019년 리지드 OLED와 플렉시블 OLED의 시장 비중이 각각 46.0%, 54.0%로 역전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감소세를 그리고 있는 플렉시블 OLED 투자 규모도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금융투자 리서치는 올해 9만9000여장(월 생산량) 규모로 줄어든 투자 규모가 2019년엔 15만여장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한가지 의문점은 폴더블ㆍ롤러블ㆍ스트레처블 등 진화한 디스플레이 형태를 휴대전화ㆍTV 등 제조사들이 얼마나 활용할 수 있을 것이냐는 점이다. 기술 혁신과 쓰임새가 보폭을 맞출 수 없다면 폴더블폰ㆍ롤러블TV 등은 일부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거나, 가격을 띄우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다양한 형태의 디스플레이를 만드는 데 기반이 되는 플렉시블 OLED의 가격은 스마트폰 1대당 90~100달러로 리지드 OLED 가격(30달러)보다 3배 이상 비싸다. 

김현수 하나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아직까지는 폴더블폰을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라면서 “기대가 큰 사람도 있는 반면, 굳이 접는 게 감정적 호소 포인트가 될까 하는 의견도 있는데, 이 제품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만들면 시장은 분명 커질 것이다”고 설명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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