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제2편 아산 제❶장 현충사 고택

이순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산은 어머니의 연고지였다.[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의 어린 시절을 보낸 아산은 어머니의 연고지였다.[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은 한양 건천동에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이순신과 그의 후손들이 살던 곳은 바로 이곳, 아산 현충사 내에 있는 이순신 고택古宅입니다. 이 집은 이순신의 외갓집이었다는 설도 있고, 처갓집이라는 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가 전통적으로 모계 사회였다는 주장을 저는 일리 있게 받아들입니다.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결혼 초기에 부인의 집에서 사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양반 가문도 마찬가지였지요. 율곡 이이가 태어난 곳도, 어머니 신사임당의 집이 있던 강원도 강릉이었습니다.

이순신이 어린 시절에 내려온 아산은 어머니인 초계 변씨의 연고지였습니다. 이순신의 부인인 상주 방씨도 훗날 온양 방씨로 합본될 정도로 이 지역에 연고가 있었습니다. 당시에 온양현과 아산현이 붙어 있었습니다. 지금은 아산시로 통합됐지요. 

이순신은 바로 이곳, 아산의 어머니 집에서 살았습니다. 이순신이 말을 달리고 활을 쏘던 곳도 이곳입니다. 이순신의 후손들도 대대손손 여기서 살아왔습니다. 지금은 중요한 제사만 지낸다고 합니다.

저는 이 집의 터가 무척 좋다고 생각합니다. 집에서 느껴지는 온화하고 포근한 느낌이 첫번째 이유고, 터가 높지 않은데도 시야가 좋은 것이 두번째 이유입니다. 이렇게 탁 트인 시야와 아늑한 느낌은 이순신이 잠든 묘소에서도 받을 수 있습니다.

 

이순신의 친가는 그렇게 부유하지 않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러나 어머니 초계 변씨는 지역 사회에서 상당한 재력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계 변씨는 이순신이 과거에 급제하자 무척 기뻐하면서 자녀들에게 토지와 노비를 나눠줬습니다. 위 사진은 그 내용이 담긴 문서입니다.

이 문서를 보면 이순신의 외가는 아산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에 노비와 토지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머니에게 땅이 있었다는 사실은 외가 초계 변씨 집안이 상당한 재력가였다는 점, 당시 여자에게도 집안의 재산이나 유산이 잘 나눠졌다는 점, 결혼하고 나서도 부인의 재산이 온전히 지켜진 점 등을 짐작하게 합니다. 아울러 과거의 다른 나라들처럼 우리나라에서도 노비가 물건처럼 취급됐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과 어머니의 관계는 아주 각별했습니다. 이순신의 효심도 극진하였습니다. 1583년 11월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7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 소식은 2개월 뒤인 1584년 1월에 이순신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순신은 즉시 낙향해 3년상을 치렀습니다. 그의 나이 39세 때였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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