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델마와 루이스 ❸

‘델마와 루이스’는 너절한 미국 마초들에 대한 미국 여성들의 분노를 담아낸 페미니즘 영화다. 미국이란 사회가 ‘여권이 상당히 신장돼 남녀평등이 구현된 사회’라는 평면적 이미지나 인식은 분명 착시현상이다.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는 남녀평등이 이뤄지기엔 너무 뿌리가 깊다. 그래서 반작용으로 ‘전투적 페미니즘’이 가장 맹렬한 곳이 미국이다.

저항은 억압이 있어야 나타난다. 남성들의 억압이 없는데 여성들이 뜬금없이 저항할 리 없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저항은 억압이 있어야 나타난다. 남성들의 억압이 없는데 여성들이 뜬금없이 저항할 리 없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요즘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미투 운동’의 발원지도 미국이고 여성들이 모두 브래지어를 벗어 불태우는 퍼포먼스의 효시도 미국이다. 우리네 페미니스트들도 혜화동에 모여 가슴을 드러내는 시위를 했다. 저항은 억압이 있어야 나타난다. 남성들의 억압이 없는데 여성들이 뜬금없이 저항할 리 없다. 페미니즘의 저항의 대상은 흔히 ‘마초’라고 생각하지만 다소 오해가 있는 듯하다.

본래 마초란 긍정적인 의미다. 자신에게 부여받은 여성보다 우월한 근육으로 약한 여성과 아이, 가정 그리고 나아가 사회와 국가를 지키는 것이 마초다. 마초는 신의 소명召命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마치스모(machismo)’다. 마치스모는 변질되고 타락한 마초다. 스페인어 마초(macho)에 붙는 어미 ‘~ismo’는 영어로 ‘~ism(~주의)’이다. 자본주의는 ‘capitalismo’이고 공산주의는 ‘communismo’다. 결국 마초가 하나의 이념화된 형태다.

무엇이든 그것이 이념화가 되면 무오류성에 빠지고, 자신과 다르거나 대척점에 선 대상을 타자화하고 적대시하거나 모든 잘못을 상대에게 뒤집어씌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는 식이다. 자기의 부덕과 무능으로 집안을 말아먹고 엉뚱하게 여자 탓을 한다. 마초라는 말은 남성을 의미하지만 마치스모는 스페인어에서 ‘남존여비’ 혹은 ‘남성우월주의’를 의미한다. ‘자본(capital)’이나 ‘공동체(community)’라는 말에는 아무 문제 없지만 그것이 이념화돼 capitalism이 되고 communism이 되면 자신에 대한 반성은 사라지고 상대방을 폭력적으로 대한다.

도처에 널린 ‘수컷’들이 델마와 루이스를 궁지와 사지로 몰아 넣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도처에 널린 ‘수컷’들이 델마와 루이스를 궁지와 사지로 몰아 넣는다.[사진=더스쿠프 포토]

‘여성성(feminity)’ 역시 아무 문제 없지만 그것이 이념화돼 ‘페미니즘’이 되면 상황이 복잡해진다. ‘남성’이 이념화되면 ‘여성’도 이념화 될 수밖에 없겠다. 리들리 스콧 감독이 델마와 루이스에서 보여주는 ‘문제적 남성상’은 마초가 아닌 마치스모들이다. 술집에서 여행 중인 델마와 루이스를 만나 수작을 건네고 춤 한번 같이 추고는 곧바로 성관계를 원하던 대럴이라는 ‘남성’은 델마가 거부하자 바로 한주먹을 날리고 강간 모드로 들어선다.

루이스에게 발각돼 그녀가 겨누는 총구 앞에서 어쩔 수 없이 강간미수에 그치지만 여자에게 모욕당한 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루이스에게 쌍욕을 퍼붓고 ‘Fuck you’를 날린다. 루이스가 남자였다면 그러지 못했겠지만 여자에게는 그래야 한다. 그래야 마초인 것이다. 분노한 루이스의 총격에 대럴은 ‘Fuck you’를 날리던 손가락도 채 접지 못하고 비명횡사한다.

콧수염을 기른 델마의 남편은 여자가 남편을 두고 친구와 여행을 간다는 것을 이해도 용납도 못한다. 자신에게 ‘신고’도 하지 않고 감히 여행을 떠난 델마가 대형사고를 쳐 경찰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치자 그는 델마 편에 서서 명색이 아내인 그녀를 보호하려는 생각은 1도 없다. 오직 말썽을 저지른 아내에게 분노하고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한다. ‘사내’가 아니다. 누린내 날 듯한 유조차 운전자 마초는 고속도로에서 오픈카를 운전하는 ‘반반한’ 젊은 두 여자 델마와 루이스를 발견하고는 해괴한 수컷 본능이 발동한다. 델마와 루이스는 이 수컷의 전재산인 유조차를 불태워버린다.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는 남녀평등이 이뤄지기엔 너무 강고하다.[사진=뉴시스]
미국 사회의 ‘보수주의’는 남녀평등이 이뤄지기엔 너무 강고하다.[사진=뉴시스]

로드무비답게 거친 여정을 계속하던 델마와 루이스 앞에 J.D. 라는 그야말로 엄청나게 매력적인 뜨내기 수컷이 등장한다. 무려 브래드 피트다. 델마를 후려 하룻밤을 보낸 J.D.는 그녀들의 전 재산 6000불을 들고 튄다. 알고 보니 수컷 꽃뱀이었다. 수컷 꽃뱀에게 전재산을 털린 델마와 루이스는 권총을 들고 은행강도에 나선다. 모두 진정한 마초와는 거리가 먼 마치스모이거나 ‘젠더’로서의 남성이 아니라 그저 생물학적 수컷들이다. 도처에 널린 마치스모들과 수컷들이 무고한 보통여자 델마와 루이스를 분노하고 좌절하게 하고, 궁지와 사지로 몰아넣는다.

우리 사회의 일부 전투적인 페미니즘에 불만이 있는 남성이라면 자신이 진정한 마초인지, 아니면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힌 마치스모인지, 혹은 남성이 아닌 수컷에 불과한 건 아닌지 한번쯤 되돌아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BMW 몇대에 불 나면 BMW 전체를 ‘불자동차’라고 손가락질하고 옆에 오지도 못하게 해도 할 말 없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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