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수의 Clean Car Talk] 실선 잘못 긋고 운전자 탓이라니!
[김필수의 Clean Car Talk] 실선 잘못 긋고 운전자 탓이라니!
  •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 호수 314
  • 승인 2018.11.22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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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선진국 가로막는 악법들

“이 선은 넘지 마!” 법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길 곳곳에 특별한 기준도 없이 선을 너무 많이 그어놓았다. 선을 넘는다고 처벌을 하는 경우도 없었다. 사람들은 선을 두고 자연스럽게 “조심스럽게 넘으면 되겠구나”고 여기기 시작했다. 그러다 갑자기 “이 선 넘으면, 검찰에 불려간다”고 법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 사회가 혼란에 빠질 게 뻔하다.

흰색 실선구간 차선변경 사고를 12대 중과실 사고에 포함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흰색 실선구간 차선변경 사고를 12대 중과실 사고에 포함하면 많은 부작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사진=뉴시스]

교통사고는 타인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점에서 예방부터 관리, 사후처리까지 엄격히 관리돼야 한다. 우리나라는 교통사고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눠 관리한다. ‘일반 과실 사고’ ‘중과실 사고’ ‘12대 중과실 사고’다. 어떤 사고냐에 따라 처벌 강도가 다르다. 일반 과실 사고와 중과실 사고는 피해자와의 합의가 이뤄지거나 종합 보험에 가입돼 있을 경우 처벌되지 않는다. 반면 12대 중과실 사고의 경우 이와 관계없이 법적 처벌 대상이다.

“교통사고의 사후처벌을 강화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2대 중과실 사고에 포함되는 사례가 넓어지는 추세다. 최근 정부는 흰색 실선을 침범해 사람이 다치는 사고를 낸 경우, 12대 중과실 사고 중 ‘지시 위반’으로 여겨 엄중하게 처리하기로 했다. 

필자는 이를 보며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란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교통문화에서 흰색 실선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물론 법적으론 실선은 어떤 색이라도 넘어가는 게 금지돼있다. 하지만 ‘절대 금기 영역’으로 여겨지는 황색 실선과 달리, 흰색 실선은 ‘점선보다 조금 강화된 규정’으로만 여기는 운전자가 많다. 

이유는 간단하다. 흰색 실선은 교량구간ㆍ터널 등 추월행위를 할 때 위험한 곳에서 그어져야 하지만, 특별한 기준 없이 아무 도로에나 흰색 실선을 그어놓은 곳이 많아서다. 심지어 한강다리 가운데 우측으로 빠지는 차로에 끼어들기를 못하도록 길게는 1㎞ 넘게 실선으로 그어놓았다. 교통 단속의 편리성을 고려해 실선을 그어놓은 구역도 즐비하다. 이중에선 실선이 지워져서 보이지 않는 곳도 많다. 교통흐름이나 동선 등을 고려해 안전하고 확실한 기준으로 흰색 실선을 배치해야 했음에도 지금껏 이를 소홀히 했다.

베테랑 운전자도 헷갈리는 데 초보 운전자들은 어떨까. 한국의 운전면허 시험은 물면허로 유명하다. 시험이 까다롭게 개정됐지만 응시자가 체감하는 난이도는 높지 않다.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데 2~4년이 걸리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의 의무교육시간은 13시간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흰색 실선구간 차로 변경 사고를 12대 중과실사고에 포함하면 여러 부작용이 발생할 공산이 크다. 피해자와 가해자를 구분하기 애매한 사고임에도 중과실 사고란 이유로 선의의 피해자가 속출할 수 있다.

필자가 가장 우려하는 부작용은 ‘보험사기’다. 주변에 널린 잘못된 흰색 실선에서 차선 변경하는 차량을 대상으로 충돌이나 추돌을 일으키면, 무조건 진입한 차량의 잘못이 된다. 이때 보험사기단 입장에선 가격을 흥정하는 게 유리해진다. 피해자는 중과실 사안으로 검찰에 송치되는 부담을 없애기 위해 이들이 부르는 합의금을 낼 수밖에 없어서다.

실제로 최근 억울한 사례가 발생하기도 했다. 제3경인고속도로에서 남동공단을 넘어 송도로 나가는 지로에는 차로변경표시 화살표가 연속으로 두번이나 표기돼있다. 차로변경을 유도하기 위해서다. 

이를 확인한 운전자는 자연스럽게 끝차선으로 진입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다중 추돌사고가 발생했다. 문제는 화살표로 차선 변경을 유도해놓고, 정작 차선은 차선변경이 금지된 흰색 실선으로 표기돼 있었다는 거다. 잘못 표시된 흰색 실선에 진입했다는 이유로 현재 이 운전자는 차량을 폐차하고 가해자 신분으로 검찰로 송치됐다.

운전을 둘러싼 법은 원칙이 확실해야 하고 공명정대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법은 그렇지 않다. 카시트 등 세부안을 마련하지 않고 전 좌석 안전띠 착용을 강제하거나, 경사로의 정의도 없으면서 고임목 설치를 의무화하고 범칙금을 부과하는 등 문제가 많다. 악법이 없어져야 사고가 줄어들고, 억울한 피해자가 발생하는 걸 막을 수 있다. 이걸 왜 모르나.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 autoculture@hanmail.net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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