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시대의 부작용

건강하고 균형잡힌 영양을 유지하는 것, 그리스어로 ‘디아이타’라고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건강하고 균형잡힌 영양을 유지하는 것, 그리스어로 ‘디아이타’라고 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과거 수렵시대엔 숲속을 4시간 이상 뛰어다녀야 작은 새 한마리를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에 비해 지금은 자동차에 편히 앉아 기름진 치킨 한 마리를 30분이면 먹어 치울 수 있다. 전통적으로 집 밖에 있던 화장실은 어떤가. 지저분하고 다분히 두렵던 그곳이 집 안으로 들어온 것 역시 비만의 가속을 부추긴 계기가 됐다. 미국의 대형 할인매장엔 비만인이 편히 앉아 운전하며 물건을 집어 담을 수 있는 전동카트도 등장했다.

250만년 인류 역사는 굶주림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구한 세월을 굶주려 오며 본능적으로 획득한 탁월한 식성 탓에 인간은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잘 먹는다. 물론 음식을 얻기 위한 인류의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유사 이래 주려왔던 고통과는 양상이 다르다.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은 급속도로 늘어났고, 음식의 종류 역시 다양해졌다.

고작해야 집이나 식당에서 음식을 먹을 뿐이던 우리는 이제 서점ㆍPC방ㆍ대형할인매장, 심지어 극장에서도 반쯤 누운 자세로 음식을 주문하거나 먹는다. 한강 둔치에서도 전화 한통이면 치킨이나 피자가 득달같이 달려온다. 인간이 먹거리를 찾아 헤매던 시대에서 밤낮 구분 없이 음식이 찾아오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먹을 것 없이 굶주리던 결핍의 시대가 넘쳐 흐르는 과잉과 풍요의 시대로 바뀌는 데 걸린 기간은 불과 50년 남짓이다. 그렇다고 모든 지구인이 풍요를 누리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절반이 제 몸에 붙은 살을 빼느라 다이어트를 할 때 남은 절반은 굶주림에 고통받는다. 전자는 욕구를 해소하거나 채우기 위해 음식을 찾고, 나머지 절반은 생존을 위해 음식을 갈망한다. 넘치든 부족하든 우리가 먹을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다소 엉뚱한 생각이지만 인간에게 먹히는 음식도 우리에게 관심이 있을까. 우리가 즐겨 먹는 사과와 소 또는 돼지를 예로 들어보자. 사과가 달콤한 과육을 우리에게 내주긴 하지만 그것은 자신의 살을 탐하는 자를 위함이 아니다. 인간이 사과의 살을 훔치고 그 씨를 대지에 뱉었다면 사과는 자신의 소임을 다한 셈이다. 자신의 몸을 준 대신 땅 위에 자신의 후손을 남길 기회를 얻은 것이기 때문이다. 소나 돼지 역시 자신들을 인간의 음식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되레 남아있는 자신의 새끼들을 잘 돌봐달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건네고 자신의 몸을 바칠 가능성이 높다.

우리가 사과 한 조각, 고기 한 점을 먹더라도 동식물의 숭고한 뜻을 잘 기려야 하는 이유다. 자! 이제 필자가 이상한 이유를 늘어놓는 이유를 밝히려 한다. 숭고한 마음으로 음식을 접해 건강하고 균형잡힌 영양을 유지하는 것, 또는 그런 것을 지향하는 삶을 그리스어로 ‘디아이타(Diaita)’라 한다. 이것이 현재에 이르러 우리가 그토록 갈망하는 다이어트가 됐다.

박창희 다이어트 프로그래머 hankookjoa@hanmail.net | 더스쿠프

저작권자 © 더스쿠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