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찬의 프리즘] 가계빚 1500조 돌파 속 벌어진 소득격차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피해는 저소득층이 가장 크게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정책 수정이 필요한 때다.[사진=연합뉴스]
소득주도 성장정책의 피해는 저소득층이 가장 크게 보고 있다. 문재인 정부 정책 목표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정책 수정이 필요한 때다.[사진=연합뉴스]

아직 11월인데 급격히 추워졌다. 없는 이들에게는 겨울나기가 여간 버겁지 않다. 바깥에서 몸을 움직여 돈을 벌 수 있는 일자리가 사라져 소득이 줄어드는 판에 난로나 보일러 가동에 필요한 난방비도 마련해야 한다. 겨울추위를 녹여줘야 할 경제는 날씨보다 더 춥다. 이미 곳곳이 얼음골이다. 성장률이 0%대를 맴돌면서 실업자가 양산되고 있다. 기업의 투자와 생산, 가계 소비가 모두 부진한 결과다. 이런 판에 달갑잖은 가계빚은 1500조원을 돌파했다. 

상황이 이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20일 국무회의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말처럼 기회를 살리자”고 했다. 경기 하강세가 가속화하고 주력 제조업의 침체가 뚜렷한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사람들이 어리둥절해 했다. 대통령은 자동차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조선도 세계 1위를 탈환했다고 했다. 그러나 이는 일시적 반사효과다. 산업계는 주력 제조업에서 “물이 빠지고 있다”고 걱정한다.

정부 정책이 제때 제대로 추진돼 성과를 내려면 경제현실에 대한 인식부터 정확해야 한다. 집권세력에 유리한 지표만 쳐다보며 현실을 왜곡하면 정책도 실패한다. 가계빚이 1500조원을 넘어섰는데도, 미국이 금리를 올려 한국보다 높아진 금리역전이 현실화했는데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망설인 것도 그런 경우다.

한은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4년 당시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빚내 집 사라”며 부동산 규제를 풀고 경기부양에 나서는 데 보조를 맞춰 금리를 인하했다. 그러나 이후 경기 흐름과 금융 불균형(가계부채 증가)에 대비한 선제적인 금리인상 시기를 놓쳤다. 

한은은 지난해 11월, 6년 5개월 만에 기준금리를 인상(1.25%→1.5%)하면서 ‘점진적 완화 정도의 조정’ 의사를 내비쳤다. 하지만 올 10월까지 7차례 금융통화위원회 회의 때마다 현상 유지를 선택했다. 이 시기에 서울 집값이 폭등하자 ‘한은 책임론’이 불거졌다. 가계부채 증가 속도가 소득증가율을 웃돌았다. 9~10월 증시에서 외국인 자금이 대거 이탈하며 주가가 급락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늦었지만, 30일 올 마지막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인상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새 상황이 악화됐다. 투자ㆍ생산ㆍ소비ㆍ고용 등 대부분 지표가 곤두박질하며 경기침체의 골이 깊어졌다. 미중 무역전쟁에 따른 대외 불확실성까지 큰 상황에서 금리인상이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금리조정 등 통화정책은 중앙은행 몫이다. 정부의 정책도 경제상황 악화를 부채질했다. 마땅히 취해야 할 금리조정 등 검증된 정책은 한은이 자신 없어 하며 주저했다. 반면 주류 경제학계에서 반대하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등 검증되지 않은 소득주도 성장정책은 정부가 시장의 거부 반응과 후유증을 무시한 채 무리하게 밀어붙였다.

그 결과, 실물경제도, 금융시장도 함께 망가지고 있다. 그에 따른 피해는 사회적 약자인 저소득층이 더 크게 보고 있다. 일자리의 경우 숙박ㆍ음식점, 도소매, 사업시설관리업 등 영세 자영업자나 임시ㆍ일용직 근로자 등 취약계층이 몰린 곳에서 감소폭이 두드러졌다. 저소득층 소득이 3분기 연속 감소한 가운데 고소득층 소득은 증가했다.

그 결과, 상위 20% 소득이 하위 20%의 5.5배로 3분기 기준 빈부격차가 11년 만에 가장 크게 벌어졌다. 취약계층의 소득을 끌어올려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정책 목표와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청와대 표현대로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이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연결됐다. 지난 대선 때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20대와 영남, 자영업자의 지지율 하락이 두드러지자 “이영자가 돌아섰다”란 말이 나돈다. 

해답은 명약관화하다. 더 늦기 전에 소득주도 성장 등 핵심 경제정책에 대한 수정 보완이 절실하다.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저임금 과속 인상을 콕 집어 속도조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도 노동 유연성을 높여야 비정규직이 줄어든다고 조언했다. 

한국경제가 이대로 가다간 더 혹독한 한파에 직면할 것이란 점은 일자리를 빼앗긴 취약 근로계층도, 나라밖 국제기구까지 다 안다. 청와대와 홍남기 경제부총리 지명자 등 2기 경제팀만 이를 애써 외면하며 정책 기조에 변화가 없다고 한다. 1997년 말 국가부도 위기 상황을 그린 영화가 곧 개봉된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경제지표가 온통 빨간불인데도 “펀더멘털은 문제없다”고 했다. 참모들이 대통령에게 실상을 제대로 보고하고 대응했더라면 외환위기는 피했을 것이다. 청와대와 내각, 여당은 엄중한 경제현실부터 직시해야 한다. 
양재찬 더스쿠프 대기자 jayan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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