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킴 논란과 한국경제의 불편한 초상화
팀 킴 논란과 한국경제의 불편한 초상화
  • 김다린 기자
  • 호수 315
  • 승인 2018.11.26 10: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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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팀 킴의 눈물에서 무엇을 봤는가  

컬링 여자대표팀 ‘팀 킴’이 논란의 중심에 섰다. 가족으로 구성된 팀 킴의 지도부가 선수들에게 갑질을 일삼고 컬링 업계를 좌지우지했다는 거다.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 사건에서 기시감旣視感을 느낄 수 있다. 가족 경영으로 지배력을 강화하고 성장의 과실을 빼먹는 건 한국 재계에선 일상화된 일이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팀 킴 논란과 쏙 빼닮은 한국경제의 민낯을 들여다봤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신화를 썼던 팀 킴은 지도부의 부당한 대우를 폭로했다. 그 내용은 한국경제의 폐해와 묘하게 오버랩됐다.[사진=연합뉴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은메달 신화를 썼던 팀 킴은 지도부의 부당한 대우를 폭로했다. 그 내용은 한국경제의 폐해와 묘하게 오버랩됐다.[사진=연합뉴스]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의 최고 스타는 ‘팀 킴(경북체육회 여자 컬링팀)’이었다.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 김초희 등으로 구성된 팀 킴은 세계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춘 외국팀과 명승부를 펼치며 드라마를 써냈다. 결과도 빛났다. 결승전에 올라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컬링 종목에선 아시아 최초다. ‘영미~’ ‘안경 선배’ 등 각종 유행어가 번졌고, 낯선 종목이었던 컬링은 한순간에 국민 스포츠로 등극했다.


8개월이 흐른 지금 팀 킴의 모습엔 이런 영광이 온데간데없다. 지난 6일 선수들은 대한체육회ㆍ경북체육회ㆍ의성군 등에 “지도부로부터 부당대우를 받았다”는 내용의 호소문을 보냈다. 15일엔 기자회견을 열고 지도부 전횡을 상세히 털어놓았다. 팀 킴이 언급한 지도부는 김경두 전 대한컬링경기연맹 부회장과 그 가족들이다. 김 전 부회장 측이 팀 킴의 주장을 반박한 가운데, 19일 문화체육관광부ㆍ경상북도ㆍ대한체육회의 합동감사가 시작됐다. 

진실은 감사 결과를 통해서 밝혀지겠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비슷한 사례가 있다. 팀 킴 논란은 한국경제의 갖가지 병폐를 고스란히 닮아있다. 

■족벌경영의 늪  = 팀 킴 논란과 한국경제의 가장 닮은꼴은 ‘족벌경영’이다. 사실 팀 킴은 김경두 전 부회장과 접점이 많지 않다. 대한컬링경기연맹에서 부회장을 맡고 있던 그는 회장 선거 규정을 어겼다는 이유로 지난해 자격정지 징계를 받고 물러났다. 얼마 전엔 컬링훈련원장에서도 자리를 내줬다. 마땅한 직함이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팀 킴은 여전히 김 전 부회장의 지배 아래 있었다.

팀 킴의 소속 경북체육회 컬링팀에 김 전 부회장의 가족들이 포진됐기 때문이다. 팀 킴의 김민정 감독은 김 전 부회장의 장녀다. 남자컬링팀의 장반석 감독은 김 전 부회장의 사위고, 남자팀 김민찬 선수는 김 전 부회장의 아들이다. 이밖에도 대한컬링경기연맹에 따르면 김 전 부회장의 친ㆍ인척 등 관계자 19명이 연맹이나 지역 컬링협회에서 요직을 맡고 있다. 

김 전 부회장이 이런 영향력을 바탕으로 팀을 사유화하려 했다는 게 팀 킴의 주장이다. 팀 킴은 “가족이라 칭하는 틀 안에서 억압, 부당함, 부조리에 불안해했고 무력감과 좌절감 속에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고 폭로했다. 선수들과 협의 없이 지도부의 의지대로 행사 및 광고가 진행된 게 대표적이다. 경기 출전의 길도 막혔다. 팀 킴은 4월 ‘2018 KB금융 한국컬링선수권대회’에 준우승한 후 모습을 감췄다. ‘2018~2019 시즌 월드 컬링 투어 대회’는 물론이고 랭킹에 따라 출전할 수 있는 그랜드슬램까지도 모조리 불참했다.

팀 킴은 멋진 경기력으로 은메달을 따냈지만 성과는 김경두 전 부회장에게 돌아가기 일쑤였다.[사진=뉴시스]
팀 킴은 멋진 경기력으로 은메달을 따냈지만 성과는 김경두 전 부회장에게 돌아가기 일쑤였다.[사진=뉴시스]

지도부가 “김 전 부회장이 대한컬링경기연맹으로 받은 징계 때문에 법정소송 중인 데다 다른 지역 관계자들이 안 좋게 볼 수 있으니 올해는 쉬자”는 판단 때문이었다. 이는 폭로의 도화선이 됐다. 선수들이 김 전 부회장의 정치 싸움에 휘말리면 선수 생활을 이어가기 힘들 거란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가족들을 통해 무소불위 권력을 얻는 건 우리나라 기업과 다를 게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오너가 있는 52개 대기업 집단의 내부 지분율은 평균 57.9%였다. 내부 지분율은 대기업 집단의 총 발행 주식 중 총수 일가 및 계열사 등 내부 관계자가 보유한 주식 비중을 뜻한다. 

이중에서 오너 일가(오너+오너 2세+기타 친족)의 주식 비중은 4%에 불과했다. 나머지 지분(53.9%)은 계열사가 갖고 있었다. 오너 일가가 적은 지분으로도 계열사 출자를 통해 그룹을 지배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상위 10대 그룹 내부지분율은 55.2%였지만, 오너의 지분율은 0.8%가 고작이었다. 기업의 의사결정이 오너 일가에 몰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이런 과도한 경제력 집중이 한국 경제의 미래를 위협하는 리스크라고 경고했다. ‘OECD 2018 한국경제보고서’는 “오너 일가가 낮은 지분으로 계열사 전체를 지배하면서 소유 구조의 왜곡을 초래해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고 있다”면서 “재벌에 대한 과도한 경제력집중이 기업가 정신과 창업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불공정거래 관행을 초래해 경쟁과 효율성을 저해하는 것도 문제”라고 꼬집었다.

■불투명한 회계의 늪 = 팀 킴은 “2015년에만 국제대회에서 6000만원 이상의 상금을 획득했고,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상금을 획득했으나 지금까지 선수들에게 한 번도 상금이 배분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무소불위 권력에 마땅한 견제장치도 없었으니 회계가 불투명하게 운영됐다는 주장이다.

우리나라 재계에도 오너 일가에 의한 배임과 횡령은 만연해 있다. 현재진행형인 것들만 꼽아봐도 여러 건이 된다. 최근 불거진 삼성바이오로직스의 ‘고의 분식회계 논란’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 작업 중 하나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과 관련이 깊다. 이중근 부영그룹 회장은 회삿돈으로 비자금을 조성하는 등 4300억원대 배임ㆍ횡령을 저지른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역시 270억원대 횡령ㆍ배임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후계자의 고속승진 = “김민정 감독은 ‘헤드코치’로 대우받길 원했지만 컬링 전문성은 선수들보다 훨씬 부족했다. 다행히도 김민정 감독은 기껏해야 연습시간의 10%만 링크장에 나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필요한 훈련들을 할 수 있었다.” 팀 킴의 은메달에 힘을 보탰던 피터 갤런트(캐나다) 코치의 설명이다. 

김 감독과 비슷한 시기에 선수로 활동했던 익명의 전직 국가대표 컬링 선수는 라디오 방송에서 “당시 여자 선수들 사이에서는 ‘김민정이 출전하면 그 경기는 우리가 반드시 이긴다’고 우스갯소리를 많이 했었다”며 “그 정도면 실력에 관해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꼬집었다. 

족벌경영 폐해 드러내다

이런 점에서 팀 킴의 “지난해 국가대표 선발전 당시 김초희 선수를 김민정 감독으로 교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폭로는 황당하게 들린다. 김 전 부회장의 사위 장반석 감독도 마찬가지다. 2010년 김 감독과 결혼하기 전엔 컬링 선수로서 이력이 거의 없다. 결혼 전엔 영어학원 원장이었다. 결혼 후 경북컬링협회 행정을 담당했으며, 5년 만에 믹스더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성장했다.

한국 재계도 상황이 비슷하다. 재벌 오너 2ㆍ3세의 초고속 승진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총수가 있는 100대 그룹 가운데 오너 일가가 임원으로 근무 중인 77개 그룹, 185명의 승진 현황을 분석한 결과를 보자. 이들이 입사 후 임원에 오르는 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4.2년이었다. 평균 29.7세에 입사해 33.7세에 임원 직함을 달았다. 

이는 30대 그룹 일반 직원의 임원 승진 평균 나이인 51.4세와 견줘 무려 17.5년이나 빠른 것이다. 올해 7월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의 딸 박세진씨가 금호리조트 상무로 입사했다. 입사 전까지 경영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단박에 임원이 됐다.

물론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들의 승진, 더 나아가 경영권 승계가 적절한 검증 과정을 거쳐 이뤄지고 있는지를 두고는 논란이 많다. 최근 2~3년 사이에 한진, 대림, 한화, 현대가 등 주요그룹 오너 2ㆍ3세들의 폭언ㆍ폭행 등 갑질이 국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특히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진에어를 면허 취소 위기까지 내몰았다. 

초고속 승진, 일감 몰아주기…

오너일가 자녀들에게 계열사 일감을 몰아주는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이익을 제공하는 일은 더 큰 문제다. 공정거래법상 자산 5조원 이상 기업은 오너일가의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 금지 규정을 적용받고 있다. 조건이 있는데, 오너 일가가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할 경우 계열사와 내부거래 금액이 200억원 이상이거나 매출의 12% 이상이어야 한다. 하지만 이들은 사각지대에서 잔치를 벌였다. 오너 일가 지분율이 29~30%인 상장사의 경우, 내부거래 금액이 2014년 평균 5000억원, 내부거래 비중은 20.5%였지만, 지난해의 경우 각각 8000억원, 21.5%로 높아졌다.

■오너 지상주의 = 미디어는 김 전 부회장의 영향력을 강화하는 도구 중 하나였다. 팀 킴이 은메달을 따고 신화를 써내자, 김경두 전 부회장은 1990년대 초반 컬링을 접한 뒤 우리나라 컬링 보급에 앞장선 ‘한국 컬링의 개척자’로 소개됐다. 컬링 불모지인 이 땅에 토대를 닦기 위해 온 가족을 동원했다는 것도 감동적인 스토리로 포장됐다.  

이에 반해 선수들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다. 팀 킴은 “김은정 선수가 올림픽 이후 언론에 노출되는 것을 지도부에서 꺼렸다”고 주장했다. 갤런트 코치 역시 “미디어 요청을 받을 때마다 김 감독은 김경두 전 부회장과 그의 컬링 교육 프로그램을 강조하라 했다”고 전했다. 선수들도 “가장 큰 문제는 우리가 원하는 말을 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꼭 김 전 부회장 얘기보다는 어떻게 힘든 과정을 겪었고, 도움을 주신 다른 분들에 대해 언급하고 싶었는데 이를 꺼려했다”고 말했다. 올림픽 메달의 공을 선수들보다는 김 전 부회장 앞으로 돌리려 했던 셈이다.

이 역시 한국 재계와 비슷하다. 대기업 오너의 성과는 강력한 리더십과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포장된다. 반면 부정적인 이슈, 이를테면 오너 리스크가 발생할 땐 침묵한다. 이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지난해 자신의 집무실 앞 문門 형태의 금속탐지기를 설치하고 옆에는 ‘휴대전화 보관함’을 뒀다. 몇 년 새 오너 일가의 갑질 폭로가 이뤄진 경로가 스마트폰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금속탐지기를 설치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팀 킴의 용기 박수 받아야 

팀 킴의 폭로가 아니었다면 지도부의 전횡은 ‘개척 신화’로 계속 포장됐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선수들은 용기를 냈고, “운동을 계속할 수만 있도록 해달라”고 호소했다. 만일 감사에서 부적절한 횡령, 포상금 착복, 강요, 폭언 등의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면 김 전 부회장은 컬링계에 발을 붙이기 어렵다. 

우리나라 재계는 어떤가. 기업에 오너 리스크가 발생하면 폐해는 많다.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의 근무의욕을 저하시키고 기업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 때문에 직원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오너 일가 경영 일선 퇴진’을 외쳤지만, 실제로 이뤄진 경우는 많지 않다. 어쩌면 컬링의 미래보다 한국경제의 미래가 더 어두운지도 모른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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