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이 축복인 이유

정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년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전환점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정년은 사전장례식  = 누구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예외 없이 정년停年을 맞는다.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정든 일터에서 떠나야 한다. 그게 고용된 자의 운명이다. 하지만 아무데도 소속돼 있지 않다는 게 얼마나 허전한지를 현역 때는 실감하지 못한다. 조직에서 내던져진 자신이라는 존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고 낙담하기 쉽다.

직장인은 인생에서 3번의 정년을 맞는다. 제1의 정년은 타인이 정년을 결정하는 ‘고용정년’이고, 제2의 정년은 자신이 정하는 ‘일의 정년’이며, 제3의 정년은 하늘의 뜻에 따라 세상을 하직하는 ‘인생정년’이다. 수명이 짧은 시기에는 정년 이후 여생을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이제는 60세가 정년이라고 해도 30~40년 가까이 긴 인생이 남는다. 정년 이후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인생의 성패가 달렸다. 정년은 숨이 멎고 나서 치르는 진짜 장례식에 앞서 맞는 사전 장례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神이 선물한 새로운 길은 새로운 방식으로 걸어가야 한다.

■신이 준 정년 딜레마 = 먼저 은퇴와 일에 대한 딜레마다. 누군가는 퇴직은 하되 은퇴는 하지 말고 영원히 현역에 머물라고 하는데 말이 그렇지 쉽지 않은 일이다. 현직에 있으면서 은퇴준비를 하라고 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날 그날 살기도 빠듯하다. 두번째, 나이 딜레마다. 젊고 활기차게 살아야 하면서도 자신의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나이가 들면 너그러워지기는커녕 사소한 일에 화를 내고 서운해 하는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기도 한다. 「다 지나간다」의 저자인 중국의 지센린은 “전략상으로는 늙었음을 인정하지 않되, 전술상 늙었음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세번째, 머니(Money) 딜레마다. 죽을 때 장례비만 남기고 다 쓰라고 권하는 이도 있지만 늘그막에 빈털터리가 되는 노년무전老年無錢처럼 비참한 인생이 없다. 평생 의료비의 절반은 60대 중반 이후에 쓴다. 노후에도 생활비는 별로 줄지 않고, 얼마나 오래 살지 자신의 예상수명을 가늠할 수 없으니 더욱 불안하다.

60세를 전후해 찾아오는 정년퇴직은 절묘한 타이밍이다. 남은 날이 짧지도 길지도 않다는 사실은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해주는가. 일할 기회가 영원히 사라진 것도 아니며 인생의 끝은 더욱 아니다.

■정년은 되레 축복 = 정년이 축복인 이유는 마침내 자기주도적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거다. 월급쟁이의 인생카드는 타인이 쥐고 있다. 입사부터 전출 승진 퇴직까지 조직의 처분에 따라야 하고 상사 눈치를 봐야 한다. 그러나 정년 이후에는 생계 때문에 미뤄뒀던 취미활동이나 하고 싶은 일을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시작할 수 있다. 먼저 정년을 맞은 자신에게 그동안 고생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해줘야 한다. 높은 자존감은 후반 인생을 살아가는 최고의 에너지가 된다. 열심히 살아온 자신에게 금반지를 끼워주라고 권하고 싶다.

정년이 좋은 두번째 이유는 모두가 ‘일열횡대一列橫隊’가 된다는 점이다. “떨어진 벚꽃, 남아있는 벚꽃도 다 지는 벚꽃 신세가 된다”는 일본 격언처럼 정년 이후에는 출세한 사람이나 실패한 인생이나 별 차이가 없다. 오히려 성공한 사람이 정년 이후 연착륙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스스로를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 작가 우치다테 마키코는 「끝난 사람」이라는 소설에서 “과거의 영광과는 싸우는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정년 이후에는 성공의 기준이 달라진다. 출세와 돈이 아니라 인생을 즐기고 베풀고 보람을 느끼며 떠나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다.

나뭇잎이 겨울이 되어도 떨어지지 않고 계속 매달려 있다면 그 나무는 겨울에 고사될 운명을 피할 수 없다. 일본에는 ‘젖은 낙엽(누레 오치바)’이라는 말이 있다. 낙엽이 비에 적으면 빗자루질로도 제대로 치워지지 않는다. 이는 은퇴하고 집에 틀어박혀 아내 옆에 붙어있는 남자를 뜻했지만 요즘에는 퇴직하지 않고 악착같이 회사에 붙어있는 직장인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년퇴직자는 스스로 퇴비가 되어 떠나는 순교자이자 새로운 희망의 밀알이다.

정년은 세상의 끝이 아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잠시 전환점에 서 있을 뿐이다. 어차피 떠날 운명이라면 한숨 쉬지 말고, 제2의 인생을 위해 주도적으로 길 떠나는 용기를 내야 한다.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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