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소비시장 더 연다지만…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시장으로 변신하고 있는 중국이 소비시장의 문을 크게 열었다. 중국 정부가 “앞으로 15년간 40조 달러어치의 상품과 서비스를 수입할 것”이라고 선언하자 알리바바 등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들도 대규모 수입계획을 줄줄이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의 주가도 별 반응이 없다. 왜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시진핑 주석과 알리바바의 통큰 선언에도 두 기업의 주가가 시큰둥한 이유를 분석했다. 

중국이 해외제품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중국이 해외제품 수입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사진=연합뉴스]

지난 5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열린 제1회 중국국제수입박람회(CIIE) 개막식에 참석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개막 연설을 위해 마이크를 잡은 그는 작심한 듯 공격적인 내용의 말을 내뱉었다. “해외기업들에 적극적으로 시장을 개방하겠다.” 톤은 강했고, 내용은 좌중을 놀라게 만들었다. “앞으로 15년간 40조 달러어치(약 4경5000조원)를 수입할 것이다.”

이는 지난해 6월 ‘중국과 WTO’ 백서에서 “향후 15년간 24조 달러의 상품을 수입할 예정”이라고 밝힌 것보다 더 확대된 규모다. 40조 달러 중 30조 달러는 상품, 10조 달러는 서비스 수입에 사용할 것이라는 게 시진핑의 구상이다. 시진핑 주석이 강한 톤으로 ‘수입 규모’를 언급한 건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물러서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중국 정부는 수입 관세를 낮추고 해외 기업들의 시장 접근을 확대해 미국의 보호무역에 맞서겠다고 밝혔다. 지난 7월부턴 소비재의 평균 관세율도 15.7%에서 6.9%로 크게 인하했다.

시진핑의 발언을 받은 건 흥미롭게도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알리바바’다. CIIE 둘째날인 6일 장융 알라바바 CEO는 “향후 5년간 120여개 국가와 지역에서 2000억 달러(약 225조원)에 달하는 제품을 수입하겠다”고 밝혔다. 수입한 제품들은 알리바바 산하의 티몰, 티몰인터내셔널, 허마셴셩, 인타이 백화점 등을 통해 유통하겠다는 계획도 덧붙였다. “소비시장을 더 확대하겠다”는 발언에 이번엔 기업이 반색했다. 어마어마한 대륙의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겠다는 의미였기 때문이다. 

 

중국 소비시장의 규모는 지난해 기준 4조7000억 달러에 이른다. 전세계 소비시장의 10.5%를 차지하는 규모다. 미국(29.5%)에 이어 글로벌 2위다. 특히 전자상거래를 통한 수입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중국의 전자상거래 수입 시장은 연평균 30% 넘게 성장해왔다. 지난해 수입액 규모는 1조7600억 위안(287조원)으로 전년 대비 46.7% 증가했다.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수입상품 소비가 커지면서 전자상거래 수입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소비시장을 이끄는 주력 소비계층은 40대와 20대, 1인 가구다. 40대는 문화오락ㆍ사치품을 주로 소비하고, 20대와 1인 가구는 문화ㆍ여행ㆍ서비스 등의 소비활동에 적극적이다. 하지만 품질을 꼼꼼하게 따지는 품목들은 여전히 수입품의 비중이 높다. 이는 지난해 타오바오ㆍ티몰 등 알리바바 플랫폼에서 판매된 제품 점유율만 봐도 알 수 있다. 신선식품ㆍ생필품 등 기초 소비재는 중국산 점유율이 71%를 차지했지만 화장품이나 디지털가전, 스포츠용품의 중국산 점유율은 60%를 밑돌았다.


중국 수입사업이 성장한 덴 알리바바가 견인차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알리바바 쇼핑몰인 티몰인터내셔널은 지난 4년 동안 전 세계 75개국의 1만9000개 브랜드 제품을 수입했다. 올해에만 6000만명이 티몰인터내셔널을 통해 수입품을 구매했다. 그런 알리바바가 해외제품 수입을 늘리겠다고 하니 기업들이 관심을 기울일 만도 하다. 
 

CIIE에서 알리바바가 공개한 ‘수입계획’ 주요 협력업체의 명단은 다음과 같다. 뉴질랜드의 폰테라(유제품), 프랑스의 다논(식품), 일본의 카시오(시계ㆍ계산기), 태국의 미스팅(화장품), 영국의 부츠(스킨케어), 미국의 존슨앤존슨(헬스케어) 등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 업체로는 아모레퍼시픽(화장품ㆍ생활용품)과 LG(가전ㆍ생활용품)가 포함됐다.

이들 기업은 과연 알리바바의 수혜를 받을 수 있을까. 특히 명단에 이름을 올린 우리나라 업체 중엔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최근 끝을 모르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이 관심의 대상이다. 주가도, 실적도 모두 내리막을 걷고 있기 때문에 과연 아모레퍼시픽이 중국의 수혜를 받아 다시 과거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느냐다.

시장 열리면 그만큼 경쟁도 치열

현재로선 기대와 우려가 모두 공존한다. 아모레퍼시픽은 “중국 정부의 의지가 시장의 바로미터가 되기 때문에 ‘수입을 늘리겠다’는 계획은 좋은 시그널임에 분명하다”고 말하면서도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중국 소비시장엔 이미 글로벌 브랜드들이 많이 진출해 있다. 로컬 브랜드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과거 중국시장에서 한국산 화장품이 누렸던 드라마틱한 성장을 이젠 기대하기 어렵다. 시장이 확대되면 그만큼 경쟁이 더 치열해질 뿐이다.”

 

이런 분위기는 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지난 22일 아모레퍼시픽의 주가는 15만750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1년 전(30만8500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다. 중국 정부와 알리바바가 대규모 수입계획을 밝혔음에도 주가는 요동치지 않았다. 아마도 신통치 않은 실적 탓으로 보인다. 올 3분기 아모레퍼시픽의 영업이익은 795억원에 그쳤다. 2016년(1675억원)ㆍ2017년(1011억원) 3분기와 비교하면 52.3%, 39.6% 감소한 성적이다. 

박현진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중국 현지에서 로컬 브랜드와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볼륨 성장세도 빠르게 둔화되고 있다”면서 “브랜드 경쟁력을 높일 방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LG생활건강의 주가도 신통치 않다. 실적은 나름 선방하고 있지만 주가가 최근 5개월간 줄곧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이슈 초기에 비해선 시장 환경이 좋아질 거 같긴 하지만 시간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섣부른 기대를 경계했다. 중국 소비시장의 문은 더 넓어졌지만 소비자의 마음까지 넉넉해진 건 아니라는 얘기다. 기회를 잡는 건 기업이라는 건 시장의 불문율이다. 
김미란 더스쿠프 기자  lamer@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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