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GI, 한진칼 지분 매입한 진짜 이유

한진그룹 지주사인 한진칼의 주식 9%를 ‘행동주의 펀드’ KCGI가 전격 매입했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다음으로 많은 지분량이다. 시장에선 KCGI가 한진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돌았다. 하지만 KCGI가 한진칼의 지분을 매입한 표면적인 이유는 경영활동의 감시와 견제다. 과연 KCGI는 오너리스크도 통제할 수 있을까. 아니면 달걀로 바위 치는 격일까. 더스쿠프(The SCOOP)가 행동주의 펀드의 의미 있는 발걸음을 취재했다. 

지난 4월 불거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사태가 최근까지 한진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참여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지난 4월 불거진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갑질 사태가 최근까지 한진그룹 전체에 영향을 미치면서 행동주의 펀드 KCGI가 한진칼 지분을 매입하고 경영참여에 나섰다.[사진=연합뉴스]

지난 15일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가 “장내 매수를 통해 한진칼(한진그룹 지주사) 지분 9%(532만2666주)를 보유 중”이라고 금융감독원에 신고했다. 그레이스홀딩스는 강성부 전 LK투자파트너스 대표가 설립한 사모펀드 KCGI(Korea Corporate Governance Improvement)의 자회사로, KCGI가 100% 지분을 갖고 있다. 

증권가는 술렁였다. 9%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17.84%) 다음으로 많은 지분이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법상 경영참여형 사모펀드가 공시 전에 매입할 수 있는 최대치이기도 했다. KCGI의 한진칼 경영권 위협 여부가 핫이슈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자 KCGI는 19일 입장문을 통해 “지분 취득을 경영권 장악 의도로 해석하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면서 “적대적 인수ㆍ합병(M&A)은 (추진할 계획이) 없고, 단기 차익실현도 하지 않겠다”고 못박았다. 대신 “한진칼 주요 주주로서 경영활동 감시와 견제 역할을 충실히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의문이 있다. KCGI는 왜 한진칼 지분을 매입해 경영 참여자로 나선 걸까. 먼저 투자자 입장에서 답을 찾아보자. 기본적으로 투자자는 저평가된 주식을 매입하고, 재평가를 통해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매도해 시세차익을 남긴다. KCGI는 ‘행동주의 펀드’로 알려져 있다.

‘행동주의 펀드’는 적극적인 경영참여를 통해 저평가된 주주가치를 끌어올려 투자효과를 극대화하는 투자자다. 이런 전략을 취하는 사모펀드들은 철저한 준비과정을 거친 후에 전략을 실행한다. 이런 맥락에서 KCGI는 저평가돼 있는 한진칼의 주가를 자신들이 경영참여로 능히 끌어올릴 수 있다는 판단으로 주식을 매입했다는 얘기다. 

당연히 두번째 질문이 생긴다. 한진칼 주가는 정말 저평가 돼있을까. KCGI의 판단대로 그럴 가능성이 높다. 기업의 주가는 실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한진칼의 실적을 살펴보자. 한진칼의 올해 1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은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 매출(영업수익)은 0.05%, 영업이익은 1.51% 줄었다. 그런데 2분기는 매출과 영업이익이 각각 11.32%, 20.08% 늘었다. 3분기에도 각각 13.68%, 12.49% 껑충 뛰었다. 1분기만 제외하면 지난해보다 훨씬 괜찮은 실적을 올렸다. 

하지만 주가는 실적을 쫓지 않았다. 1월 평균 2만111원이던 한진칼의 주가는 4월 4만3267원으로 오르는가 싶더니 다시 떨어져 7월엔 1만7075원을 기록했다. 이후 조금씩 회복해 9월 2만원대로 다시 올라섰지만 그게 끝이었다(11월 22일 기준 평균치 2만4434원). 매일 등락을 반복했지만, 결국 주가가 오르기는커녕 연초 주가를 회복하는 수준에 그쳤다는 얘기다.[※참고 : 물론 주력 계열사인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2~3분기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늘어난 반면, 영업이익이 많이 줄었다. 하지만 증권업계는 유가상승과 환율상승으로 인한 부담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그럼 주가가 급락한 4월과 7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컵을 던져 갑질을 했다는 사실이 보도된 게 4월 12일이다. 조 전 전무가 미국 시민권자로 6년간 진에어 등기임원에 불법 등재(면허취소 사유)돼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진 건 4월 16일이었다. 이후 대한항공 직원들의 단톡방에서 한진 오너 일가의 숱한 갑질 사건들이 고구마줄기 엮이듯 줄줄이 터져 나왔다. 

오너리스크는 단순히 ‘사건’에 머물지 않았다. 사건이 터진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와 관세청은 한진그룹의 일감몰아주기나 탈세 등을 집중적으로 조사했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감돌자 대한항공은 서울에서 미국 델타항공과의 조인트벤처(JV) 출범 관련 공동 기자간담회를 열기로 했다가 취소했다. 오너리스크가 기업의 정상적인 홍보 활동까지 막아버린 셈이었다. 

5월엔 한진 계열사에 입점한 커피전문점 주인이 오너 일가라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해당 커피전문점 프랜차이즈 본사는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이유로 가맹계약을 해지했다. 대한항공 직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오너 일가 퇴출을 외쳤고, 인하대 동문 교수들도 합세했다. 

 

일부 국민들은 대한항공 타지 않기 운동에 나섰다. 실제로 올 상반기 대한항공과 진에어의 국내선 승객 수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각각 11.8%, 6.1% 줄었다. 이 기간 아시아나항공과 에어부산, 이스타항공, 제주항공은 모두 국내선 승객 수가 늘었다. 

물컵으로 시작된 오너리스크는 주력 상장계열사 실적은 물론, 향후 성장성에도 전방위적인 악재로 작용했다. 금융감독원과 은행연합회는 빚 많은 기업집단 주채무계열의 재무구조 평가 시 사회적 평판을 고려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주식시장 큰손인 국민연금공단은 사상 처음으로 주주권을 행사해 공개서한을 보냈고, 결국 6월에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을 추진하는 계기가 됐다. 7월엔 진에어의 불법 등기이사 등재로 면허취소에 관한 청문절차를 진행했다. 진에어는 가까스로 면허취소는 면했지만, 대신 국토교통부가 8월에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고 이행할 때까지 신규노선 진출 등 사업 확장을 불허한다”는 대책을 발표했다.

올 상반기 달군 조현민 리스크 

물론 이런 사건들 때문에 주가가 내려갔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영향을 줬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정재규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선임연구위원은 “오너리스크는 기업의 주가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심지어 기업의 지속가능한 발전까지 가로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생각지도 못한 위험들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다. 한진그룹 오너리스크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런 맥락에서 KCGI의 행보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극적 경영참여로 주주가치를 높이는 과정에서 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하지 않은 채 브랜드를 훼손하고, 실적도 갉아먹는 오너리스크를 관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시장도 은근히 기대감을 보이는 눈치다. KCGI의 등장과 동시에 한진칼 주가가 급등락했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KCGI의 지분 매입이 공시된 지난 15일 2만4750원이던 한진칼 주가는 다음날 2만8400원(14.7%)으로 급등했다. 하지만 KCGI가 19일 입장문을 통해 자신들의 역할을 제한하자 다시 2만6500원(-6.7%)으로 급락했다. 한진칼 내부에선 주주가치 증대를 위한 방안 마련에 고심한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충분한 가능성이 확인된 셈이다. 일부 증권사들도 “경영 투명성이 개선되면 한진칼 주가에는 긍정적”이라는 분석을 내놨다. 시장의 눈과 귀가 쏠린 KCGI의 행보가 과연 시장 기대치와 부합할지 궁금하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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