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값 하락세라지만 …
집 없는 사람들과 무관한 이야기

지난 8월 서울 아파트가격이 급등하고 있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내집 마련을 꿈꾸던 무주택자들의 희망은 속절없이 무너졌다. 그로부터 3개월여. 집값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뉴스가 연일 보도됐다. 무주택자들은 다시 희망을 품었지만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는 건 착시현상에 불과했고, 그나마 관심을 가져볼 만한 지역은 되레 집값이 올랐다. 무주택자 김진욱(가명)씨와 곽미연(가명)씨의 사연을 들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김진욱씨와 곽미연씨의 심리 속에 펜을 짚어넣었다. 

서울 아파트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무주택자들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아파트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기사가 쏟아진다. 그럼에도 무주택자들에겐 여전히 그림의 떡이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무주택자 김진욱씨]
“서울 외곽이라도…” 그마저도 꿈인 세상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거침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20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37% 올랐다. 1월 마지막 주 0.38% 오른 이후 30주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동작구가 0.80%로 가장 많이 뛰었고, 강동(0.66%)ㆍ양천(0.56%)ㆍ강서구(0.53%)ㆍ영등포구(0.51%)ㆍ용산(0.45%) 등도 높은 상승폭을 유지했다. 강남과 송파도 각각 0.45%, 0.46% 뛰었다. 서울 집값 상승세는 강북(0.34%)을 비롯해 관악(0.21%)ㆍ중랑(0.15%)ㆍ도봉(0.15%) 등 상대적인 외곽지역까지 전방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 8월 23일 연합뉴스]

나는 무주택자다. 작은 무역회사에서 5년간 근무하고 있다. 지금은 부모님 집에 얹혀살면서 결혼과 내집 마련을 위해 착실히 돈을 모으고 있다. 하지만 오늘 출근길에 본 기사 때문인지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큰폭으로 올랐다는 점도 달갑지 않지만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대목은 따로 있다. 그동안 강남과 강북 일부 지역에 한정됐던 급등세가 양천구ㆍ강서구ㆍ영등포구 등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강남ㆍ용산 등 주요 도심지역은 꿈도 꾸지 않았다. 은행에 손을 빌리면 서울 외곽 지역에라도 신혼살림을 차릴 수 있을 거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요즘 같은 추세에선 일장춘몽에 그칠 것 같다. 적금으로 한푼두푼 모아선 도저히 집값 상승세를 감당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여서다. 집값 급등세를 불러온 박원순 서울시장의 신중하지 못한 말 한마디가 얄밉고,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무주택자들의 서울 진입도 막는 것 같아 원망스럽다.
 

차선책으로 눈여겨봤던 광명시도 지금 같아선 만만한 대안이 아니다. 곧 투기지역으로 지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집값은 오르고 대출 한도가 줄어들면 또 다른 선택지를 찾아나서야 한다. 걱정되는 건 서울 전역과 수도권이 규제를 받으면서 가격 상승세가 점차 외곽으로 확대되지는 않을까 하는 점이다. 더 멀리 벗어나기엔 출퇴근 부담이 너무 크다.  

일찍이 장가간 친구들은 결혼할 때 무리해서라도 집을 장만하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하지만 결혼 날짜가 당장 6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마당에 내집 마련은커녕 서울 안에서 전세 아파트라도 구하면 다행이다. 일부에선 욕심을 버리고 임대주택이나 빌라로 눈을 돌려보라고 말하지만, 남 일이라고 쉽게 하는 소리다. 집 있는 사람은 계속해서 자산이 불어나고, 없는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게 마련이다.

최근 부동산 시장의 기세를 보면 출산율이 저하하면서 수요가 줄어 집값이 떨어질 거라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간 반면, 부동산 불패신화는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게 증명된 셈이다. 이럴 때면 일찌감치 대출을 받아 경기도 지역의 분양 아파트를 구입한 친구가 부러울 따름이다. 요즘엔 “빚내서 집 사라”고 종용하던 누군가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농담 섞인 푸념이 나도 모르게 흘러나온다.

[무주택자 곽미연씨]
집값 찔끔 하락에 호들갑을 떨기는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자산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집값 상승세가 가팔라지면서 자산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서울 아파트값이 1년 2개월여 만에 하락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12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보다 0.01% 내렸다. 지난해 8ㆍ2부동산 대책 약발이 한달만에 사라지면서 이후 1년 2개월간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4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 이후 오름폭이 주춤하는 듯했지만, 6월 하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발표와 서울시장의 용산ㆍ여의도 통합개발 발언 이후 다시 가파르게 올랐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 단지의 약세, 비강남권 성장 정체로 61주 만에 하락을 기록했다.” [11월 15일 연합뉴스]

결혼 5년차에 이사만 두번 했다. 내년엔 세번째 이사를 해야 한다. 빌라를 전전하다 첫 아이가 태어나면서 큰맘 먹고 문정동 30평대 아파트를 3억원 중반대의 전세금을 내고 들어왔다. 하지만 2019년 4월 주인 아주머니가 들어온다고 해 집을 비워야 한다. 차라리 잘됐다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집 저집 돌아다니기도 지치고 매번 나가는 이사비용도 부담이 컸는데, 이 기회에 무주택자 꼬리표를 떼기로 했다.

다행히 집주인이 미리 알려준 덕에 6개월 전부터 집을 알아보러 다녔다. 아직 아이가 어리다 보니 험한 지역은 피하고 빌라보다는 주변 환경이 쾌적한 아파트 위주로 찾았다. 주변 지역인 송파나 잠실은 엄두도 내기 어려웠다. 서울을 벗어나 구리, 별내 부근에 괜찮은 아파트를 찾았다. 전세금에 돈을 조금만 더 얹으면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지금 집을 사면 바보다”는 말이 돌았다. 집값이 최고점을 찍었기 때문에 이제 곧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인의 말은 진짜였다. 서울 아파트 가격이 하락세로 돌아섰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집값 붕괴를 우려할 정도라는 말도 들렸다. 좀 더 좋은 조건의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거란 기대가 흘렀다. 다시 부동산을 찾았다. 말 그대로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그동안 1억원여가 오른 데 비해 떨어진 건 고작 3000만~4000만원가량이다.

 

서울은 떨어지기라도 했다지만 구리, 별내 쪽은 되레 집값이 올랐다. 6개월 전만 해도 살까 말까 망설였던 집이었는데, 지금은 수천만원이 올라 망설일 수도 없게 됐다. 결국 남은 선택지는 다시 전세를 살거나 더 먼 지역까지 범위를 넓히는 것 중 하나다. 

하지만 전세를 구하자니 해가 다르게 오르는 전세가격이 부담스럽고, 이젠 다가오는 만기 날짜도 두렵다. 그렇다고 너무 멀리 나가기도 꺼려진다. 한번 경기도 밖으로 나가면 다시 돌아오기 어렵다는 말이 현실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앞으로 대출 규제는 더 강화된다. 예상대로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자 부담도 커질 게 분명하다. 어째 집값은 떨어지고 있다는데 서울에서 비빌 곳은 갈수록 없어진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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