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망 안에서 내집 마련
인위적인 집값 잡기 안 통할 것

맑은 날은 우산장수 아들을, 비가 오는 날은 부채장수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한번쯤 들어봤을 거다.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국민의 태도도 이와 다르지 않다. 사회 전체의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는 집값을 내리는 게 정답이지만, 집을 한채라도 가진 사람 입장에선 불합리하다고 느낄 수밖에 없다. 인위적인 집값 잡기가 통할 거라 생각지도 않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부동산 시장을 바라보는 유주택자의 눈을 따라가봤다. 무주택자의 눈과 달라도 많이 달랐다. 

부동산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아파트 소유자들은 불만이 많다.[사진=연합뉴스]
부동산 규제에 따른 풍선효과가 나타나자 아파트 소유자들은 불만이 많다.[사진=연합뉴스]

[강남 주민 조현성씨]
강남에 집 산 게 죄는 아니잖아요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가 거침없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8월 20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 대비 0.37% 올랐다. 1월 마지막 주 0.38% 오른 이후 30주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동작구가 0,80%로 가장 많이 뛰었고, 강동(0.66%)ㆍ양천(0.56%)ㆍ강서구(0.53%)ㆍ영등포구(0.51%)ㆍ용산(0.45%) 등도 높은 상승폭을 유지했다. 강남과 송파도 각각 0.45%, 0.46% 뛰었다. 서울 집값 상승세는 강북(0.34%)을 비롯해 관악(0.21%)ㆍ중랑(0.15%)ㆍ도봉(0.15%) 등 상대적인 외곽지역까지 전방위로 확산하는 분위기다.” [ 8월 23일 연합뉴스] 

나는 대기업 12년차 직장인이다. 이름은 조현성(가명47). 남들보다 늦게 직장생활을 시작했지만 대학원 석사까지 마친 덕분에 초봉부터 꽤 괜찮은 대우를 받았다. 취직한 지 2년 만에 맞벌이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결혼도 했다. 8년여 열심히 모은 돈에 주택담보대출금을 얹어 강남 서초구에 있는 8억원짜리 아파트를 샀다. 물론 직접 거주하지 않고 전세로 내줬고, 그 전세금으로 대출금을 상환했다. 지금은 직장 인근 아파트에서 전세로 살고 있다. 

이렇게 복잡한 투자를 한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아이의 교육(위장전입) 때문이었다. 얼마 전 부부 연봉을 합쳐 1억원을 넘는 친구가 강남 사교육비에 시달리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니 가랑이가 찢어질 지경”이라는 말을 남기고 노원 쪽으로 이사를 갔다. 이게 비정상적이라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살아남으려면 기득권이 돼야 하고, 기득권이 되려면 아무리 생각해도 위장전입밖에 수가 없다. 내년에 초등학교를 들어가는 아이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강남을 벗어나지 않는 게 목표다. 

 

역시 아파트는 강남에 사야 한다. 2년 만에 약 1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하지만 그리 좋지만은 않다. 겉으로만 보면 가만히 앉아 2억원을 번 셈이지만, 그 아파트가 2억원 오를 때 인근의 다른 아파트는 3억5000만원이 올랐다. 내집이 과연 올랐는지 알 수 없다. 

정부는 연일 강남을 향해 규제책을 쏟아낸다. 나는 투기꾼도 아닌데, 이건 정말 불공평한 처사 아닌가. 물론 주변 사람들로부터 “집이 없던 시절에 집값이 너무 비싸다면서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느냐” “지금은 너무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을 가끔 듣는다.

하지만 내가 집을 사던 당시 가격도 만만한 게 아니었다. 내가 부동산 시장에 무임승차한 거라면 몰라도 시장의 룰을 지키면서 편입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가격을 잡겠다면서 나만 손해를 보고 있으라그 하면 그건 이해하기 힘들다. 

더구나 특정 지역을 규제로 묶어 놓으면 아파트값이 잡힐 거라고 생각하는 정부 사람들의 생각은 더 납득하기 어렵다. 서울, 더구나 강남은 아무리 공급을 늘려도 언제나 수요자가 넘친다. 결코 잡히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볼 때 분명 더 오를 거라고 예상한다. 안 그래도 강남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또다른 아파트에 투자해볼까 생각 중이다.

[성남시 다주택자 박미영씨]
10만원 떨어졌는데 급락이라고? 참…


“서울 아파트값이 1년 2개월여 만에 하락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1월 12일 조사 기준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주보다 0.01% 내렸다. 지난해 82부동산 대책 약발이 한달만에 사라지면서 이후 1년 2개월간 상승세를 이어갔다. 지난 4월 양도소득세 중과 시행 이후 오름폭이 주춤하는 듯했지만, 6월 하순 종합부동산세 개편안 발표와 서울시장의 용산여의도 통합개발 발언 이후 다시 가파르게 올랐다. 하지만 강남 재건축 단지의 약세, 비강남권 성장 정체로 61주 만에 하락을 기록했다.” [11월 15일 연합뉴스] 

 

내 이름은 박미영(가명46).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사는 결혼 15년차 전업주부다. 12년 전부터 월급쟁이 남편이 벌어온 돈으로 부동산 투자만 해서 집 4채에 상가 1채를 마련했다. 처음엔 남편도 반신반의했지만 난 확신이 있었다. 그동안의 역사가 ‘부동산 불패’를 입증해줬기 때문이다. 

일례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은 2%대에 불과하다. 그런데 내가 살고 있는 분당지역 집값 상승률은 7%대에 이른다. 막말로 정부가 내라는 세금을 제대로 다 내도 이렇게 남겨먹기 좋은 장사가 또 어디 있나. 물론 상가는 좀 다른 면이 있다. 몇 년 전 상가에 투자한 게 잘 안 돼서 애를 먹고 있다.

자영업 경기가 워낙 좋지 않으니 월세를 아무리 싸게 내놔도 들어온다는 사람이 없다. 팔려고 내놨는데 사는 사람도 없어 골치다. 실패한 상가 투자와는 달리 아파트 투자는 단 한번도 실패한 적이 없다. 부동산 중개업자들도 이제 전문가가 다 됐단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정책을 펴고 있지만, 유주택자들은 해당 정책이 통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정부가 부동산 규제정책을 펴고 있지만, 유주택자들은 해당 정책이 통할 거라 생각지 않는다.[사진=연합뉴스]

전문가가 되려면 뉴스에 밝아야 한다. 아마 전업주부치고 나처럼 기사를 많이 보는 사람도 없을 거다. 그러다 괴상한 뉴스를 봤다. 집값이 떨어졌다는 기사다. 부동산 정책이 먹혔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저 웃길 뿐이다. 어지간히 부동산 규제정책이 통하고 있다는 걸 홍보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그냥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예컨대 10억원짜리 아파트가 있다. 지난 8월 서울 전 지역 아파트값이 평균 0.4%대로 올랐다는 기사를 봤는가. 그럼 10억짜리 아파트는 10억400만원이 된다. 0.01% 하락이라는 건 고작 10만400원이 빠졌다는 거다. 결국 이 아파트는 10억389만9600원이 됐다. 과연 부동산 규제정책이 먹혔다고 할 수 있나. 

정부 규제정책이 가격하락에 별 영향을 못 미침에도 신경이 쓰이는 건 특정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묶어 둔 사이 다른 지역 아파트값이 껑충껑충 뛰어오른다는 점이다. 부동산 투자자 입장에선 배가 아프기 마련이다. 결국 이런 상황에선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해 릴레이처럼 다음 투자처를 찾아갈 뿐이다. 집값 하락? 그런 건 한국에 없다. 매물을 안 내놓으면 그만이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은 배신하지 않는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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