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여행] 충무공의 묘와 명장
[이순신 여행] 충무공의 묘와 명장
  •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 호수 315
  • 승인 2018.11.30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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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편 아산 제1장 현충사❷
이순신의 묘지가 이장된 것을 두고 여러 설이 떠돈다.[사진=연합뉴스]
이순신의 묘지가 이장된 것을 두고 여러 설이 떠돈다.[사진=연합뉴스]

1583년 11월, 이순신의 아버지 이정이 73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소식은 2개월 뒤인 1584년 1월 이순신에게 전해졌습니다. 이순신은 즉시 낙향해 3년상을 치렀습니다. 그의 나이 39세 때의 일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15년 뒤 이순신의 어머니 초계 변씨는 1597년 4월 11일에 83세의 나이로 돌아가셨습니다. 이순신은 이 사실을 이틀 뒤인 4월 13일에 알게 됩니다. 전쟁 중이다 보니 3년상은 언감생심이었습니다. 일주일이 채 되기 전인 4월 19일에 이순신은 백의종군 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의 나이 쉰셋이었습니다.

이순신의 큰형 희신과 둘째형 요신은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래서 이순신이 형수와 조카들까지 거둬 보살핀 것 같습니다. 큰형 희신의 셋째 아들 이분李芬(1566~1619년)과 넷째 아들 이완李莞(1579〜1627년)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의 휘하에서 활약했습니다. 이분은 1566년생이고 이완은 1579년생입니다. 이를 통해 이순신의 큰형 희신은 1566년 이전에 결혼했고, 최소한 1578년까지는 생존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순신은 셋째 아들입니다. 그러나 두형이 일찍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장남 노릇을 도맡아 해야 했습니다. 어머니도 당연히 그가 모셨던 것 같습니다. 이순신이 전라좌수사로 발령 받자 어머니는 전라좌수영 근처에 있는 고음천으로 이사하셨습니다. 고음천은 전라좌수영이 있던 여수에 있습니다.

아산이 본가인 어머니께서 아들의 근무지 근처에 거처를 마련하신 것을 두곤 두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머니를 극진히 생각하던 이순신이 어머니를 모셔왔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다른 하나는 이순신의 어머니가 아들의 곁에 있고 싶어 근무지 근처로 와서 사셨다는 겁니다. 어느 쪽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두 분이 유달리 각별하셨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순신이 잠든 곳 : 이충무공 묘소

현충사에는 이순신의 셋째 아들 이면의 묘를 비롯해 이순신 일가 후손들의 묘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순신의 묘는 현충사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디에 있을까요? 이순신 장군은 노량해전이 벌어진 남해 관음포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시신은 관음포 뒷산에 모셨다가 아산으로 옮겨졌습니다. 

아산에서 최초로 모셔진 묘소는 두사충이라는 명나라 장수가 터를 잡았다고 합니다. 그는 이순신 장군과 매우 친했던 것 같습니다. 풍수지리에 뛰어난 실력을 가진 두사충은 전쟁 후에 명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조선으로 귀화했습니다. 이순신의 첫번째 묘소는 음봉면 금성산에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6년 뒤에 지금의 어라산으로 이장됐습니다. 왜 옮겨졌을까요? 조선시대부터 여러가지 설이 있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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