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 시대와 보통사람의 삶

물가상승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생활물가가 갈수록 치솟고 있어서다. 들어오는 돈이 뻔한 직장인에겐 물가상승은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지출이 늘어나는 만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얇은 서민의 지갑이 더 얇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물가상승이 대한민국 보통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들여다봤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서민을 괴롭히는 고물가의 난亂을 취재했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서민의 지갑이 더 얇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가파른 물가상승으로 서민의 지갑이 더 얇아지고 있다.[사진=뉴시스]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 건설기성·광공업 생산확산지수, 레이트 사이클(Late Cycle·경기확장 후반부), 고용보조지표 등 어려운 경제용어는 잊어버리자. 먹고살기도 힘든 서민에겐 피부에 와닿지 않는 지표일 뿐이다. 도시근로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직장인은 안정적인 직장에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고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여유자금을 모아 미래만 준비할 수 있으면 그만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연봉이다. 돈 나올 곳이 뻔한 직장인에게 소득이 증가할 수 있는 곳은 월급밖에 없어서다. 연봉이 증가해야 서민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2016년 3400만원에서 2017년 3475만원으로 2.2%(75만원) 올랐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좋아졌다고 말하는 근로자는 거의 없다. 왜 일까.


올해 결혼 4년 차인 박재형(37·가명)씨와 김희연(36·가명)씨 부부.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박씨의 월 소득은 290만원(지난해 4분기 도시근로자 2인 가구의 근로소득). 연봉으로 따지면 지난해 근로자 평균연봉인 3475만원과 비슷한 3480만원이다. 학원강사로 일하던 아내 김씨는 임신을 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ㅇ

대신 가계에 보탬이 되기 위해 과외를 하면서 월 83만원(지난해 4분기 도시근로자 2인 가구의 사업소득·재산소득·이전소득·비경상소득 등의 합)을 벌고 있다. 이렇게 부부는 도시근로자 2인 가구의 월 소득과 같은 373만원을 벌고 있다. 전셋집에 살고 있는 박씨 부부의 전세대출금은 5031만원이다. 이는 한국주택금융공사가 ‘2017 주택금융 및 보금자리론 실태조사’를 통해 발표한 서울시 평균 전세대출금과 같은 액수다.


이제 김씨의 가계부를 살펴보자. 부부는 지난해 소비성 지출로 월평균 260만원을 지출했다. 식료품(38만원), 의류·신발(16만원), 가정용품(15만원), 병원비·약값(17만원), 교통·유류비(39만원), 통신비(13만원), 문화생활비(21만원), 외식비(38만원), 관리비·각종세금(30만원), 부부용돈(33만원) 등이다.

식료품 물가 전년 대비 5.7% 상승

비소비성 지출로는 전세자금 대출이자 14만원(5031만원·연이율 3.23%), 연금(14만원), 보험료(14만원), 경조사비(28만원), 기부금(10만원), 기타(12만원) 등 92만원을 지출한다. 이 역시 지난해 기준 도시근로자 2인 가구의 소비성지출(260만원), 비소비성 지출(92만원)과 같은 금액이다. 부부는 매월 373만원을 벌어 352만원을 지출했다. 잉여자금은 21만원, 큰 금액은 아니지만 부부는 이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하지만 최근 부부의 한숨이 깊어지고 있다. 치솟는 물가를 보면서 지금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부부는 “곧 아이가 태어나면 소득은 줄고 돈 나갈 곳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며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생활물가 인상 소식에 걱정이 앞선다”고 말했다.

생활물가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통계청이 발표한 10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를 기록했다. 지난해 9월 이후 13개월 만에 2%대로 상승했다. 외식물가의 상승세는 더 가파르다. 올해 1~10월 외식물가지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2.7% 올랐다. 지난해 같은 기간 상승폭인 2.4%보다 0.3%포인트 높은 것으로 6년 만에 최대치다. 이를 반영하듯 각종 외식 가격이 줄줄이 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치킨 프랜차이즈 BBQ는 제품의 가격을 1000~2000원 올렸다. 커피 프랜차이즈 이디야커피도 12월부터 음료의 가격을 평균 10% 인상하기로 했다. 피자·스낵·아이스크림 등 식음료 업체가 앞다퉈 가격 인상에 나서고 있다.


그렇다면 물가상승은 박씨 부부의 가계에 어떤 변화를 일으켰을까. 통계청에 따르면 10월 서울시의 식료품·비주류음료의 물가는 전년 동월 대비 5.7% 상승했다. 박씨 부부의 식료품 지출도 38만원에서 2만2000원 늘어난 40만2000원으로 증가했다. 유류비 등 자동차관리비를 포함한 교통비는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해 박씨 부부의 지출도 39만원에서 40만3000원으로 1만3000원 증가했다. 이밖에도 가정용품(4.4%), 외식비(3.5%), 의류·신발(0.8 %), 문화생활비(0.3%), 비정기지출(0.3%) 등의 물가가 상승했다.

지출 목록 중 물가가 전년 동월 대비 하락한 것은 병원비·약값(-0.3%), 통신비(-1.8%)가 유이하다. 그 결과, 부부의 소비성지출은 식료품(2만2000원), 교통비(1만3000원), 가정용품(1만6000원), 외식비(1만4000원) 등 6만5000원 증가했다. 가격이 하락한 통신비 2000원을 빼도 소비성 지출이 6만3000원 늘어난 셈이다.

비소비성 지출도 증가했다. 시장금리가 상승세를 타면서 전세자금대출 이자율이 올랐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3.23%였던 보증대출금리(잔액기준)는 올해 10월 3.64%로 0.41%포인트 상승했다. 부부가 내야 하는 대출이자도 14만원에서 15만3000원으로 1만3000원 늘어났다. 물가와 금리상승로 부부의 소비성지출은 260만원에서 266만3000원으로 비소비성 지출은 92만원에서 93만3000원으로 증가하게 됐다.

물가상승에 줄어든 잉여자금

그 결과, 21만원이었던 잉여자금은 13만4000원으로 36%(7만6000원) 감소했다. 가뜩이나 살림이 넉넉지 않은데, 잉여자금까지 줄어들었다는 얘기다. 게다가 이는 통계청 발표를 바탕으로 계산한 결과다. 실제로 체감 물가상승률을 적용하면 잉여자금은 더 크게 줄어들 것이다. 출산 이후도 문제다. 아내가 하고 있는 일을 관두면 부부 소득의 25%에 달하는 83만원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13만원의 흑자를 기록했던 가계재정이 70만원의 적자로 돌아설 수밖에 없다. 

이처럼 물가상승이 서민에게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더 큰 문제는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수 있다는 점이다. 금리인상으로 대출 상환 부담까지 늘어나면 서민의 삶은 더 힘들어 게 불을 보듯 뻔해서다. 이래저래 얇은 서민의 지갑이 더 얇아질 일만 남았다는 얘기다.
강서구 더스쿠프 기자 ksg@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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