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 화재와 소상공인 피해보상 문제

11월 24일 KT 아현지사 화재로 인근지역 소상공인들은 주말 장사를 다 망쳤다. KT는 복구 후 적절한 보상을 하겠다고 밝혔다. 발빠른 조치였지만 소상공인들은 불안하다. 보상은 KT의 재량사항이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보호망은 허약하기 짝이 없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KT 화재와 피해자 구제문제를 냉정하게 짚어봤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사진=연합뉴스]

KT를 망網으로 사용하는 모든 것이 멈췄다. 전화도, 결제도 안 됐다. 그건 마비였다. 11월 24일 KT 아현지사 건물 지하의 통신구(케이블 부설용 지하도) 연결통로에서 발생한 화재 때문이었다. “화재 대응 매뉴얼이 없었다” “통신구에 스프링클러가 없어 화재진압이 빨리 이뤄지지 못했다” “안전 관리 인력을 외주화하는 바람에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백업 체계 등을 갖추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등 숱한 비판이 쏟아졌다. 

당장 시급한 건 피해자 보상문제다. 화재가 발생한 다음날(11월 25일) 황창규 KT 회장은 “피해를 입은 유무선 가입고객의 경우 1개월(최근 3개월 요금의 평균) 요금을 감면하기로 했다”면서 “감면대상 고객은 앞으로 확정해 개별고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발빠른 사과’와 ‘보상책 마련’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는 평가도 나왔지만 “유무형의 재산피해를 입은 이들이 얼마나 많은데, 고작 1개월 (요금) 감면이냐”는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단순 통신장애만 며칠간 계속된 KT 가입자는 그나마 나은 수준이었다. 가뜩이나 내수부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 공인들은 이번 화재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결제시스템 마비 탓이었다. 배달업체들은 주말장사를 아예 접었다. 

KT는 소상공인의 피해를 조사해 합당한 수준의 보상을 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KT 관계자는 “소상공인을 비롯해 KT 망을 사용하는 알뜰폰 사업자들에게도 보상을 하겠다는 큰 틀을 발표한 만큼 일단은 복구를 먼저 하고, 추후 상세한 내용을 밝힐 예정”이라고 말했다. 

 

임왕섭 브랜드 컨설턴트는 “기업이 상식적인 수준으로만 대응하면 문제될 게 전혀 없다”면서 사전적 보상책은 적절했다고 평가했다. “적극적인 대처는 리스크 관리의 핵심이다. 그런 면에서 KT는 비교적 발빠르게 잘 대응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피해자 규모는 약 17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보상책 마련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올 것이다. KT가 소비자들이 납득할 만큼 과감한 보상안을 내놓는다면 KT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위기가 기회라는 건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럼에도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다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이슈도 잦아들 거고, 그러면 보상도 흐지부지하고 끝나지 않겠는가” “KT가 진정성이 있다면 복구와 동시에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소상공인들과 머리를 맞대야 할 것 아닌가” 등이다. 


이런 우려가 나오는 덴 나름의 이유가 있다. KT의 약관에는 서비스를 제대로 받지 못해 영업에 피해를 입었다고 해도 이를 별도로 보상해주는 기준이 없다. 그러니 영업 피해보상은 오로지 KT의 의지에 달려 있는데, KT가 굳이 손해 볼 일을 하겠느냐는 거다. 소상공인연합회가 11월 27일 “소상공인들이 적절한 피해보상을 받을 수 있도록 공동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는 성명서를 낸 것도 이 때문이다. 
 

황창규 KT회장은 화재 직후 발빠르게 대응했지만, 소상공인 피해보상책은 아직 내놓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황창규 KT회장은 화재 직후 발빠르게 대응했지만, 소상공인 피해보상책은 아직 내놓지 못했다.[사진=연합뉴스]

실제로 KT가 소상공인들을 외면할 경우, 법적 대응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스쿠프(The SCOOP)가 다수의 변호사들에게 소상공인들이 법적인 손해배상을 요구할 경우 승산이 얼마나 되는지 묻자, 대부분 “쉽지 않을 것이고, 승산도 낮아 보인다”고 설명했다. 

먹히지 않는 KT의 약속

A변호사는 “화재와 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하는 게 관건인데 쉽지 않을 듯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예를 들어 오후에 문 여는 가게가 통신장애를 이유로 장사를 안했다고 치자. 그냥 쉬려고 문 닫은 가게와 어떻게 구분할 수 있겠는가.”

B변호사도 “소상공인들은 주로 통신장애를 겪은 1차 피해보다 배달을 못하는 등 2차 피해가 더 컸다고 주장한다”면서 “이는 특별한 사유로 인해 발생하는 확대손해인 ‘특별손해’에 해당하는데, 인과관계가 너무 포괄적이기 때문에 특정하기가 매우 힘들다”고 꼬집었다. 

C변호사는 “상당수의 점포들이 카드결제 대신 현금을 받았는데, 마음만 먹으면 죄다 피해액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면서 “변수가 많으면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어렵기 때문에 보상을 받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소송을 통해 보상을 인정받는다고 해도 문제다. D변호사는 “KT에서 적극적으로 보상해주지 않는다면 소송을 할 수밖에 없다”면서 “하지만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개별 소상공인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보상액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경우 소송의 실효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종합하면 KT가 소상공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보상안을 제시한다고 가정할 때, 소상공인들은 할 수 있는 게 별로 많지 않을 거란 얘기다. 일부에서 기업에 입증책임을 물리는 집단소송제도를 이참에 입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집단소송제도는 피해를 입은 소비자 한사람 또는 일부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해서 이기면 다른 피해자들은 별도의 소송절차를 밟지 않아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제도다. 입증책임까지 기업에 지우면 더욱 강력한 소비자 피해구제가 가능하다. 따라서 기업은 그냥 보상을 해줄지 아니면 소송으로 대응할지 신중히 고민할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굳이 법적 소송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다. 

집단소송 입법화 왜 못했나

정택수 경실련 경제정책팀 간사는 “입증책임을 기업에 지우는 소비자 집단소송이 가능해지면 많은 대기업들이 소비자를 함부로 외면하지 못한다”면서 “집단소송제도가 입법화돼 있었다면 이번 KT 아현지사 화재 관련 소상공인 피해구제 대응 방식도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큰 이슈가 터질 때마다 집단소송제도를 골자로 하는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국회에서 낮잠만 자거나 폐기됐다는 점이다. 이번 20대 국회에도 다양한 집단소송 관련 법안이 상정돼 있지만, 처리가 될지는 미지수다. 정택수 간사는 “20여년 전부터 법안의 필요성이 거론됐지만, 입법부의 의지가 약해 발의만 될 뿐 대부분 임기만료로 폐기됐다”면서 “이번에도 기대를 걸고는 있지만, 기업들의 반발이 거세 낙관하기는 힘든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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