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 5人의 봄ㆍ여름ㆍ가을ㆍ겨울 | 우희현 다누리맘 대표의 가을

뻔한 일을 하기 싫어 창업의 문을 노크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하고, 그럴듯해 보이는 아이템은 통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패기를 잃는 창업자들이 부지기수다. 식문화콘텐트기획업체 다누리맘 우희현(28) 대표는 달랐다. 넘치는 에너지로 여름을 보낸 그는 한층 더 성숙해 있었다. 가을, 그를 다시 만났다. 

바쁜 여름을 보낸 우희현 다누리맘 대표는 “함께 일하는 베트남ㆍ일본 요리 선생님들과 더 많은 얘기를 해야할 시간”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바쁜 여름을 보낸 우희현 다누리맘 대표는 “함께 일하는 베트남ㆍ일본 요리 선생님들과 더 많은 얘기를 해야할 시간”이라고 말했다.[사진=천막사진관]

스타트업 ‘다누리맘’의 애초 사업 아이템은 ‘다문화가정을 위한 맞춤형 산후조리’였다. 명분도, 취지도 더할 나위 없었지만 시장에서 살아남기엔 한계가 있었다. 우희현 다누리맘 대표는 좌절하지 않았다. 빠르게 아이템을 전환했고, 성장의 기틀을 마련했다. 그 효자 아이템이 바로 ‘현지 요리연구가와 함께하는 세계요리강좌’였다. 주요 콘텐트는 요리강좌였지만, 활용범위는 더 다양해졌고 일감도 늘었다. “다누리맘을 자체 수익을 내는 회사로 키우겠다”는 우 대표의 꿈이 조금씩 현실화하고 있는 듯했다. 

그럼에도 우 대표는 봄에 만난 ‘창업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경험과 노하우를 배우겠다며 시작한 맥줏집 알바는 계속하고 있었다. 새로운 아이템을 찾기 위해 분주한 것도 똑같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거친 창업시장에서 '여유'를 찾는 법을 배웠다는 점이었다. 그는 “빠르게 가는 것보다 다누리맘이 설립 목적에 맞게 나아가고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전엔 가락몰에 있었잖아요. 정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나요?
“아뇨. 사무실은 여전히 가락몰에 있어요. 서울시 식생활종합지원센터와 손잡고 식문화 공간 ‘서울시민 음식학교’를 운영하면서 이곳에 넉달가량 머물게 됐어요. 1층은 저희가 계속해온 베트남ㆍ일본 요리강좌 등 다양한 요리프로그램을 운영하고, 2층은 전시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요.” 당시는 10월 초로 우 대표가 돈의문박물관마을에 있을 때다.

✚ 요리강좌와 전시는 잘 연결되지 않네요. 
“‘알아두면 좋은 허브 10종과 향신료 20종’을 전시했는데, 반응이 좋았죠. 덕분에 요리강좌뿐만 아니라 식문화 콘텐트를 활용해 더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 식문화 콘텐트를 활용한 사업은 뭔가요?
“전시를 준비하면서 페스토(pestoㆍ이탈리아식 소스)를 직접 만드는 행사를 함께 열었어요. 허브티를 이해하고 시음하는 행사도 했죠. 요리강좌에 오는 평균 참가자보다 2배가량 많은 참가자가 모이더라고요. 충분한 공간이 있으면 사업 확장도 가능하다는 걸 확인한 셈이죠.”

✚ 다른 기관과의 협업도 계속하고 있죠?
“네. 서울시 농수산식품공사와 진행하는 세계요리클래스도 상ㆍ하반기에 걸쳐 계속 진행 중이고, 서울시 다문화사업의 일환으로 다문화가정 여성들에게 모국어로 요리강좌를 해주는 일도 하고 있어요. 반응이 좋아서 이젠 백화점 등 기업에서도 요리강좌 개설 문의가 오고 있어요.”

 

✚ 이젠 단골 참가자도 있을 듯하네요. 
“당연히 있죠. 지난 5~7월 ‘베트남 누들로드’라고 베트남 쌀국수 특집강좌를 마련했는데, 쌀국수집 창업을 한 분들이 오기도 했어요. 그 덕분에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강좌를 세분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나요?
“퇴직하고 전국의 요리 명인들을 찾아다니는 분이 계세요. 요리와 식문화의 조예가 남다른 분이어서 배울 게 많았습니다. 한번은 그분에게 비싸고 좋은 강좌를 많이 다니시는데 저희 강좌를 굳이 듣기 위해 오시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어요. 대충대충 하지 않고, 현지에서나 배울 수 있는 내용들을 담고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 최고의 칭찬인데요? 
“제 입으로 말하긴 쑥스럽지만, 계속 찾아오신 걸로 봐선 마냥 듣기 좋으라고 한 말만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저희 요리강좌를 고급강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죠. 저희는 현지인들의 식문화를 접한다는 콘셉트여서 범주가 전혀 다르니까요. 다만 그 범주 안에서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습니다. 선생님들이 노력해주신 덕분이죠. 실제로 이번 여름엔 선생님들의 지위도 많이 올라갔어요.”

✚ 어떤 계기가 있나요?
“지난 8월 한식진흥원과 협업해서 ‘3도3군 귀염둥이 농산물 음식 박람회’라는 행사를 개최했어요. 못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외면 받는 B급 채소들을 가지고 요리에 쓰고, 한쪽에선 지역생산자들이 직거래 장터도 여는 행사였어요. 그때 베트남ㆍ일본 선생님들이 한국의 유명 셰프들과 함께 요리강좌를 진행했거든요. 그걸 지켜보는데 가슴이 찡했어요. 선생님들이 묵묵히 노력해주셔서 가능했던 일이에요.”

✚ 꽤 큰 행사를 진행했네요? 
“더 큰 행사도 있었어요. 지난 11월 17일엔 한식진흥원과 약 1500명이 참여한 ‘서울 글로벌 식문화 축제’를 열었어요. 다문화가정과 서울시민, 지역생산자가 모두 모여 채소를 주제로 ‘지속가능한 먹거리’를 모색하는 행사였는데 국가별 요리강좌는 물론 다양한 채소 전시와 청년 농부 직거래 장터까지 동시에 열렸어요. 영양 지식과 요리 기초, 각종 요리 레시피 등을 담은 ‘건강먹거리가이드’ 교재 2000부를 제작하기도 했죠. 책은 서울시 내 다문화가정에 무료로 전달될 예정이에요.”

우희현 대표와 홍티검로안(맨 왼쪽)ㆍ보띠미띵ㆍ쩐티홍느안(맨 오른쪽) 베트남 요리 선생님들.[사진=천막사진관]
우희현 대표와 홍티검로안(맨 왼쪽)ㆍ보띠미띵ㆍ쩐티홍느안(맨 오른쪽) 베트남 요리 선생님들.[사진=천막사진관]

✚ 참 수제 맥줏집 아르바이트도 계속하고 있나요?
“네. 일주일에 두번씩 계속해요.”

✚ 힘들지 않나요?
“힘든 것보다는 배우는 게 더 많아요.”

✚ 또 어떤 걸 배웠나요?
“거기선 제가 아르바이트생이고, 다누리맘에선 대표잖아요. 양 측면을 경험하다 보니 소통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습니다. 문득 다누리맘은 다문화가정 여성들을 돕는다는 취지로 설립됐는데, 과연 함께 일하는 베트남ㆍ일본 선생님들이 만족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법인 대표가 바뀐 이후 일도 바쁘고, 모든 선생님들 시간에 맞춰 모이기도 힘들다는 이유로 그분들의 생각을 들어보질 못한 거죠. 선생님들의 가치를 더 끌어올리려면 노력과 시간도 더 필요한데 그런 비전을 서로 충분히 공감하고 있는지 궁금하고요. 다누리맘은 단순히 돈만 벌겠다고 설립된 기업이 아닌 만큼 선생님들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어떻게 소통할 계획인가요?
“이 사업도 계절을 타기 때문에 겨울에는 조금 한가해요. 이번 겨울을 계기로 서로가 다누리맘에서 꿈꾸는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떻게 우리가 나아갈지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가을에 만난 우 대표는 희망을 노래했고, 또 다른 내일을 기약했다. 뜨거웠던 여름에 그가 어떤 노력을 했는지가 떠올라 심쿵했다. 우리는 해를 건너 봄에 다시 만나기로 했다. 그의 봄은 더 찬란할까. 
글=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사진= 오상민 천막사진관 작가 studioten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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