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법인분할 진짜 문제

지난 7월 생산법인과 연구ㆍ개발법인을 분할하겠다는 한국GM의 계획이 들려온 지 4개월여. 눈앞으로 다가온 법인분할에 제동이 걸렸다. 재판부가 산업은행과 한국GM의 본안소송 결과가 나올 때까지 법인분할을 중지시켰기 때문이다. 급한 불은 껐지만 GM이 새 R&D법인 출범을 밀어붙이는 이유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때다. 매각을 위한 사전작업이 아니라 한국GM 자체를 껍데기로 만들려는 술책일 수 있어서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GM 법인분할의 진짜 문제를 짚어봤다. 

한국GM에서 분할된 R&D법인은 GM으로 편입된다. 한국GM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의 사용권도 잃을 수 있다.[사진=뉴시스]
한국GM에서 분할된 R&D법인은 GM으로 편입된다. 한국GM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기술의 사용권도 잃을 수 있다.[사진=뉴시스]

재판부가 이번에는 산업은행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11월 28일 서울고등법원 민사40부는 “한국GM의 법인분할을 승인한 주주총회 결의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산은의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다. 생산법인(구법인)과 연구ㆍ개발법인(신설법인ㆍGM테크니컬센터코리아)을 분할하겠다는 한국GM의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는 얘기다.

앞선 10월 17일 인천지방법원 민사21부가 산은이 제기한 ‘한국GM 주총 개최 금지 가처분신청’을 기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다. 한국GM이 법인을 분할하면 산은이 손해를 입을 수 있거나, 주총 결의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 셈이다.

그렇다고 한국GM의 법인분할 계획이 완전히 수포로 돌아간 건 아니다. 주총 결의의 효력이 정지된 건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 결과일 뿐이다. 산은이 한국GM을 상대로 제기한 본안소송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 정지된다는 얘기다. 재판부가 본안소송에서 “GM은 계약을 위반하지 않았고, 법인분할이 산은의 주주가치를 훼손하지 않는다”고 판결하면 언제든 한국GM의 법인분할은 재추진될 수 있다. 

한국GM도 법인분할에 사활을 걸 가능성이 높다. 한국GM은 이사회(10월 4일)와 임시주총(10월 19일)에서 법인분할 안건이 결의된 이후 막바지 작업에 속도를 냈고, 최종 절차인 분할 등기만 남겨놓은 상황이다. 지난 11월 21일엔 로베르토 렘펠 GM 수석 엔지니어를 비롯해 마이클 심코 GM 글로벌 디자인 부사장, 샘 바질 GM 글로벌 포트폴리오 플래닝 부사장, 짐 헨첼 GM 글로벌 차량 인테그리티 부사장 등 6인의 GM 인사를 새 R&D법인의 임원으로 선임했다. 법원의 판결이 없었으면 한국GM은 예정대로 오는 12월 3일 등기 신청을 마치고 두개의 법인으로 분할됐을 공산이 크다.

 

산은이 지적하고 있는 점이 바로 이 대목이다. 속도전을 방불케 한 한국GM 법인분할 과정을 자신들과 얼마나 공유했는지를 쟁점으로 들고 나왔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지난 10월 22일 열린 국감에서 “한국GM의 법인분할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며, 산은이 판단할 수 있는 계획을 제출해 달라는 요구를 한국GM이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진행한 점이 문제”라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국GM은 법적 공방을 불사하면서까지 일방적으로 법인분할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GM 관계자는 “법인분할은 R&D 역량을 강화하고 한국GM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런 이유라면 산은과의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없다. 수익성이 높은 사업과 그렇지 못한 사업을 나누기 위한 사전작업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GM 측은 ‘대응할 가치도 없는 소리’라면서 목청을 높이지만 GM의 사업포트폴리오를 보면 억측만은 아니다.

GM 법인분할 몰아붙이는 이유

실제로 전기차ㆍ자율주행차 등 GM의 R&D 분야는 수익성과 잠재력이 높다. 반면 인건비가 높은 한국시장은 잠재력이 낮은 편에 속한다. 쉽게 말해, R&D는 투자를 집중할 필요가 있지만 한국시장엔 투자를 유지할 이유가 부족하다. GM이 신차개발과 시설투자를 위해 베팅하기로 했던 28억 달러(약 3조원)가 R&D법인에 몰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지는 건 그 때문이다.

반대로 리스크는 생산법인에 몰릴 게 분명해 보인다. 한국GM의 경영난을 불러온 이유 중 하나인 판매실적 부진은 생산법인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로열티(기술사용료) 부담도 커질 수 있다. 그동안 한국GM이 자체ㆍ공동 개발한 기술은 로열티를 내지 않았다. 로열티 수익도 한국GM이 가져갔다. 하지만 R&D법인이 GM에 편입되면 생산법인은 R&D법인이 개발한 신차 및 기술의 로열티를 지불해야 할 공산이 크다. 

 

당장 경영정상화 목적으로 배정받은 신차 2종과 차세대 모델인 콤팩트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의 로열티부터 한국GM이 내야 할 수 있다. 한국GM이 개발한 기술의 사용권리가 어느 법인에 귀속될지도 관건이다. 지난해 한국GM이 로열티로 벌어들인 수익은 519억원, GM에 낸 로열티는 1000억원가량이다. 경우에 따라서 로열티 수익은 제로가 되거나 GM에 내야 할 로열티는 더 증가할 것이다. 

한국GM의 법인분할 이슈를 단순히 ‘분할과정에서 공유가 없었다’는 문제로 몰아가선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GM의 법인분할 추이를 보면 한국GM이나 산업은행이 R&D 부문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는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이는 심각한 문제다. R&D는 한국GM의 탄생배경이자 성장의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시계추를 한국GM(당시 GM대우) 철수설의 불씨가 피어오르던 2010년으로 돌려보자. 당시 산은은 한국GM의 독자생존을 장담하면서 R&D기술 사용권의 확보를 언급했다. R&D기술을 기반으로 투자ㆍ생산ㆍ수출을 확보하면 독자생존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었고, 이 전략은 시장에 먹혀들었다. 뒤집어 말하면, R&D기술을 확보하지 못하면 생존 가능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지난 5월 산은은 GM과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절차적 견제장치만 확보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사진=연합뉴스]
지난 5월 산은은 GM과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하지만 절차적 견제장치만 확보한 건 아쉬움으로 남는다.[사진=연합뉴스]

한국GM 노조를 비롯한 일부에선 법인분할이 철수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고 지적한다. 단기적으로 봤을 땐 가능성이 낮다. 한국GM 자산의 20% 이상을 매각할 때는 산은의 동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는 산은이 비토권을 행사할 수 있는 특별결의사항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GM의 생존력이 낮아져 스스로 무너진다면 철수나 다름없는 결과를 받아들여야 할 수도 있다. 한국GM의 새 R&D법인을 예사롭게 봐선 안 되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산은의 견제장치는 또 다시 아쉬움을 남긴다. 지난 5월 산은은 GM과의 합의를 통해 ‘GM의 지분 매각 제한’ ‘비토권 확보’ 등 견제장치를 얻어냈다. 하지만 이는 절차적 견제에만 해당할 뿐 한국GM의 독자생존권과는 연관성이 낮다. R&D법인분할 사태가 그 결과물이다. 한국GM의 위기는 지금부터다. 가처분 소송과 본안소송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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