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델마와 루이스 ❺

영어에서 흔히 배우자를 ‘베터 하프(better half)’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의미인 듯하다. 그것이 규범적 의미든 현실적인 의미든 꽤 그럴듯한 인식이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자기 배우자 혹은 연인이 자신의 ‘베터 하프’인지, 왜 ‘베터 하프’가 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이 각박해지다 보니 더욱 편안한 휴식과 안식을 갈망하게 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세상이 각박해지다 보니 더욱 편안한 휴식과 안식을 갈망하게 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델마는 대단히 속물적이고 남성우월주의자인 남자 대럴과 꾸역꾸역 결혼생활을 한다. 속물 남편 덕분에 경제적으로는 어려움이 없다. 하지만 일상은 따분하기 짝이 없고 자존감도 내려놓아야 하며 정신적으로도 피폐하다. 그럼에도 눌러사는 것은 아마도 절친 루이스가 혼자 사는 ‘꼴’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남자에게 절대 기죽지 않고 할말 다 하고 사는 ‘똑순이’ 루이스는 허름한 레스토랑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누구에게도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몸도 마음도 고달프다. 결혼을 해도 고달프고 안 해도 고달프다. 안식은 찾을 수 없고 항상 살 떨리는 일상이다.

그리스 신화의 오디세우스의 항해에서 스킬라(Scylla)라는 괴물과 카리브디스(Ch arybdis)라는 괴물이 양쪽에 도사린 좁아터진 해협을 지난다. 스킬라는 초자연적인 괴물로 키가 약 4m에 머리가 6개이고 목은 뱀처럼 길다. 머리마다 상어 이빨 같은 날카로운 이빨이 3줄로 나 있었으며 허리에는 짖어대는 개의 머리들로 둘러 있었다. 동굴에 있는 자기 보금자리로 들어오는 것은 무엇이든 먹어 치운다.

그 무시무시한 스킬라를 피하려고 배를 해안으로 조금만 가까이하면 카리브디스가 기다린다. 카리브디스는 조금 떨어진 건너편 기슭에서 무화과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하루에 3번씩 물을 삼켰다가 물대포처럼 쏘아댄다. 경찰차 물대포 정도와는 차원이 다르다. 한번 맞으면 순식간에 배가 산산조각 난다.

델마와 루이스의 도주 항해는 곧바로 난파선 신세가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델마와 루이스의 도주 항해는 곧바로 난파선 신세가 된다.[사진=더스쿠프 포토]

델마는 인생항로에서 대럴이라는 스킬라에게 잡아먹힌 꼴이 됐다. 루이스는 절친 델마의 불행한 결혼생활을 지켜보면서, 떠돌이 뮤지션 지미와 가끔 잠자리는 가지면서도 결혼은 안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스킬라를 피하니 반대쪽 괴물 카리브디스가 루이스를 기다리고 있다. 허름한 식당 웨이트리스로 밥벌이를 해야 하는 생활의 고달픔이다.

델마는 자신을 덮치는 스킬라와 같은 남편을 피해 루이스와 술집에서 모처럼 흥겨운 시간을 보내려 한다. 하지만 그 순간, 카리브디스와 같은 또 다른 변태적인 마초에게 걸려 강간당하기 일보 직전까지 몰린다. 델마와 루이스는 그 괴물을 처단하고 멕시코를 향한 도주에 나서지만 또 다른 카리브디스가 기다리고 있다. J.D.라는 떠돌이 마초에게 생명 같은 도피자금 6000불을 몽땅 털리고 절망적인 상태에 빠지고 만다.

결국 총 들고 동네 슈퍼와 은행까지 터는 막장으로 치닫는다. 세기의 매력남 브래드 피트가 연기한 여자 등쳐먹는 떠돌이 J.D.는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스킬라나 카리브디스라기보다는 오히려 오디세우스의 항해를 위협한 또 다른 재앙인 사이렌(Sir en)을 닮았다. 사이렌은 모두를 넋 빠지게 하는 아름다운 모습과 목소리로 선원들을 매혹시켜 배를 난파시킨다. J.D.의 수려한 외모와 말재주에 빠진 델마와 루이스의 도주 항해는 곧바로 난파선의 신세가 된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가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거칠고 위험한 항해가 꼭 여자들만의 인생은 아닐 것이다. 남자들의 인생 항해도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를 피해가야 하는 ‘오디세우스의 항해’처럼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모두가 오디세우스와 같은 절세 영웅이 될 수 없기에, 모두에게 믿고 의지할 반려자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배우자를 영어로 흔히 표현하는 ‘베터 하프(better half)’를 우리말로 번역하기는 조금 애매하지만 굳이 번역한다면 ‘나보다 나은 반쪽’쯤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상대의 가치를 존중한다는 의미인 듯하다.

영어로 배우자를 ‘베터 하프(better half)’라고 표현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영어로 배우자를 ‘베터 하프(better half)’라고 표현한다.[사진=게티이미지뱅크]

자웅동체 생물이 아닌 이상 스스로는 완결체가 될 수 없는 모든 생명체나 조직이 받아들여야 할 운명적 선언이기도 하겠다. 그것이 규범적인 의미에서든 현실적인 의미에서든 꽤 그럴듯한 인식이다. 영화 델마와 루이스는 자신의 배우자 혹은 연인이 베터 하프인지 생각하게 한다. 또 왜 배우자는 서로에게 베터 하프가 돼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세상이 각박해지다 보니 배가 헤쳐나가야 할 해협도 점점 좁아지고 물살도 거세다. 스킬라와 카리브디스도 많아지고 다양해진다. 그래서 더욱 편안한 휴식과 안식을 갈망하게 된다. 그런데 스킬라를 피해 다가간 것이 안식처가 되지 못하고 카리브디스가 되거나 사이렌이 되곤 할 때 그 실망과 배신감은 가늠하기 어려울 듯하다.

아마 그래서 ‘한남’이니 ‘메갈’이니 하고, 혹은 ‘여혐’이니 ‘남혐’이니 하는 아수라장이 되는 모양이다. 서로에게 ‘베터 하프’까지 돼주지는 못할망정 최소한 스킬라를 피해온 사람에게 카리브디스나 사이렌이 되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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