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스마트폰 위기와 생태계

삼성전자 스마트폰은 글로벌 시장 점유율 1위다. 6년 내내 그랬다. 그래서인지 점유율 하락, 중국의 추격 등 최근의 위기론을 삼성전자는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되레 “4차 산업혁명의 플랫폼으로 스마트폰이 꼽히면서 더 큰 기회를 잡을 공산이 커졌다”는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이유야 어찌됐든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이 삼성전자의 제품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바로 여기에 한국 스마트폰의 위기가 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한국 스마트폰 업계에 깔리고 있는 무서운 위기 시그널을 취재했다. 

삼성전자, LG전자를 필두로 한 한국 기업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삼성전자, LG전자를 필두로 한 한국 기업은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지만 최근 위기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 스마트폰 산업이 위기에 빠졌다. 징후는 여럿이다. 무엇보다 2018년 야심작 삼성전자 ‘갤럭시S9’과 ‘갤럭시노트9’의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이 때문에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IM부문 실적은 매출 24조9100억원, 영업이익 2조220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0%, 32.5% 줄었다. LG전자의 사정은 심각하다. 이 회사 스마트폰 사업부는 14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평균도매가격(ASP)이 글로벌 7대 제조사 중 유일하게 마이너스를 기록한 것도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올해 2분기 삼성전자의 ASP는 247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 270달러보다 8% 하락했다. 순위도 2위에서 5위로 추락했다. 그 사이를 오포ㆍ비보ㆍ화웨이 등 중국 업체들이 비집고 들어갔다. 중저가 스마트폰으로 틈새시장을 공략하던 이들이 프리미엄 스마트폰 비중을 점차 높인 덕이다. 디자인이나 사양에 있어서 한국 제품에 뒤지지 않았다.

 

“한국폰이 중국폰보다 싸게 팔린다”는 건 충격적인 뉴스처럼 들리지만, 사실 ‘한국 스마트폰의 위기’는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출시했을 때부터 그랬다. 당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이전의 휴대전화인 ‘피처폰’ 시장에서만 존재감을 뽐내고 있었다. 삼성전자는 아이폰의 대항마로 ‘옴니아’를 출시했지만, 조악한 품질로 혹평과 조롱의 대상이 됐다. 이때만 해도 “삼성전자가 애플을 따라잡을 것”이라 생각한 이는 없었다.

최대 시장인 중국에서 2013년 3분기 21.9%에 달했던 삼성전자 점유율이 2년 만에 한자릿 수로 떨어졌을 때도 ‘위기론’이 고개를 들었다. 2016년 ‘갤럭시노트7’ 발화 사건은 충격이 더 컸다. 전면 리콜을 결정해 발생한 4조원대의 손실도 문제지만, 그간 쌓아온 품질 명성에 큰 흠집을 냈기 때문이다. 이밖에도 글로벌 시장 성장률 둔화, 스마트폰 교체 주기 증가, 기술 상향 평준화 등의 시장 구조의 한계가 거론될 때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한국 스마트폰은 위기임에 틀림없다.” 

“위기가 곧 기회라지만…”

숱한 위기를 겪은 한국 스마트폰 산업의 현주소는 어떨까. 삼성전자는 올해 3분기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점유율 20.3%로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IDC 조사자료). 전년 동기 대비 1.8%포인트 하락했고, 2위 화웨이와의 격차가 5.7%포인트까지 좁혀지긴 했지만 전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스마트폰은 여전히 삼성전자의 제품이다.

삼성전자가 2011년 3분기 애플의 점유율을 처음으로 꺾은 이후 1위 자리를 내준 건 세번(2011년 4분기, 2016년 4분기, 2017년 4분기)뿐이다. 위기를 기회로 삼고 슬기롭게 대처한 덕분이다. 이 때문에 이번 위기론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들이 많다.

이제호 서울대(경영학) 교수의 설명을 들어보자. “아이폰의 ASP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결국 가장 많이 팔린 스마트폰은 삼성전자 제품이다. 앞으로 사물인터넷(IoT), 무인차 등 4차 산업혁명이 스마트폰 생태계를 중심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인의 손에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들려있는 건 분명한 이점이다. 오히려 한국 스마트폰 산업의 위상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스마트폰으로 쌓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혁신과 융합으로 시장 영역을 넓히면, 한국 스마트폰도 살길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돌파구가 되레 위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IT 시장조사업체 관계자는 “한국 제조사들이 훌륭한 단말기를 만드는 데 강점을 갖고 있고 지금껏 이를 바탕으로 판매량을 높여왔다”면서 “하지만 생태계를 구축하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국 제조사의 생태계 구축 사례는 대부분 실패로 돌아갔다. 삼성전자는 구글의 운영체제(OS) 안드로이드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 OS인 바다를 만들었다가 실패했고, 뒤이어 나온 사물인터넷 OS 타이젠도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최근엔 AI ‘빅스비’를 중심으로 생태계 구축에 나섰지만, 존재감이 미미하다. 구글이나 아마존보다 2~3년 늦게 시장에 발을 들인 탓이다. 삼성페이는 국내 시장은 섭렵했지만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3%에 불과하다. 이밖에도 갤럭시워치, 삼성헬스 등의 생태계 구축 시도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다. 

플랫폼 구축 실패의 역사

LG전자 역시 생태계 관련 뼈아픈 과거를 갖고 있다. 2016년 LG전자는 프리미엄 스마트폰 ‘G5’를 통해 모바일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찬 전략을 세웠다. G5가 서랍처럼 스마트폰 하단을 빼고 넣는 방식으로 다양한 기기를 연결할 수 있는 모듈형 스마트폰이었기 때문이다. 이 신선한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자체 완성도가 낮았던 게 큰 이유지만, ‘다양한 기기’를 만들 개발자들을 생태계로 끌어들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발자 입장에선 G5 이후 나올 스마트폰에서도 모듈형 생태계가 유지돼야 기기를 개발하는데, 이를 보장하지 않았다. 실제로 LG전자는 후속작인 G6에서 아예 모듈형을 포기해 버렸다. 한국 스마트폰의 성패는 얼마나 많은 참여자가 한국 스마트폰을 플랫폼으로 사용하는지에 달렸다. 안타깝게도 한국은 이런 경쟁력이 떨어진다. 많이 팔리기만 할 뿐인 지금이 진짜 위기일 수 있다는 얘기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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