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 좁아진 K-뷰티의 위기

J(Japan)-뷰티가 K-뷰티의 뒤를 이을 거란 전망이 나온다. 중국을 비롯한 미국ㆍ유럽 시장에서 일본 화장품 브랜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서다. 문제는 J-뷰티의 성장이 K-뷰티의 입지를 좁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장인정신과 기술력으로 무장한 J-뷰티의 성장은 K-뷰티의 앞날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더스쿠프(The SCOOP)가 J-뷰티의 부활과 불안해진 K-뷰티의 입지를 취재했다. 

중국 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15년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사진=뉴시스]
중국 내 한국 화장품 수출액은 2015년 처음으로 일본을 넘어섰다.[사진=뉴시스]

J(Japan)-뷰티가 급부상하고 있다. 근원지는 중국이다. 2016년 중국의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ㆍTHAAD) 보복 조치 이후 K-뷰티 브랜드가 하락세를 걷는 동안 일본 화장품 브랜드들이 약진했다. 일본 화장품 시장 1위 업체인 시세이도가 지난해 사상 첫 매출액 1조엔(약 9조9270억원ㆍ전년 대비 18.2% 증가)을 넘어선 건 단적인 예다.

시세이도는 중국인 관광객의 ‘싹쓸이 쇼핑(백화점ㆍ면세점)’에 이어, 중국 현지에서 재구매가 이뤄지면서 품절 사태를 겪기도 했다. 이 회사가 ‘없어서 못 판’ 기회비용적 손실을 환산하면 100억~150억 엔(2018년 상반기 추정치ㆍ코트라)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시세이도뿐만이 아니다. 2위 업체인 코세의 지난해 매출액은 3034억 엔(약 3조85억원)으로 전년 대비 13.7% 증가했고, 3위 업체인 폴라 오리비스의 매출액은 전년 대비 11.8% 증가한 2443억 엔(약 2조4225억원)을 기록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일본으로 발길을 옮기면서, 중국 내 일본 화장품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ㆍ유럽 시장에서도 J-뷰티 붐이 일어날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4월 “잠자고 있던 거인 J-뷰티가 깨어나고 있다”면서 “더 정교하고 장인정신이 깃든 J-뷰티가 K-뷰티의 뒤를 이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도 “미국 내 K-뷰티 붐이 아시아 스킨케어 방식의 이해도를 높였고, 이는 J-뷰티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졌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올 들어 J-뷰티는 미국시장에서 K-뷰티를 맹추격하고 있다. 규모 면에서는 한국이 앞서고 있지만, 성장률은 일본이 훨씬 가팔랐다. 올해 상반기(1~6월) 한국 화장품의 대미對美 수출액은 2억3221만 달러(약 2620억원ㆍ5위)로 전년 동기 대비 16.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일본 화장품의 대미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27.1% 증가한 1억190만 달러(약 1150억원)를 기록했다. 수입 국가 순위도 8위에서 7위로 올라섰다.

J-뷰티가 떠오르는 사이 한국 화장품 업체들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표적인 로드숍 브랜드인 스킨푸드는 적자에 시달리다 최근 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스킨푸드는 지난해에도 98억원에 이르는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잇츠스킨을 운영하는 잇츠한불은 올해 3분기 매출액이 전년 동기 대비 28%가량 감소한 465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4%나 쪼그라든 22억원에 그쳤다. 중국 색조화장품 시장을 노렸던 클리오는 투자받은 금액을 토해내야 했다. 중국 내 화장품 편집숍 세포라를 운영하는 루이뷔통모엣헤네시(LVMH) 그룹은 지난 2016년 클리오에 570억원가량을 투자했지만, 2년여 만인 11월 5일 투자를 철회했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에서도 J-뷰티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중국뿐만 아니라 미국시장에서도 J-뷰티의 부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로드숍 브랜드뿐만 아니라 K-뷰티 대표 주자인 아모레퍼시픽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매출액은 5조1238억원으로 전년 대비 9.2%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29.7% 줄어든 5964억원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도 좁아졌다. 세계 100대 화장품 기업 순위 7위(2016년)에 올랐던 아모레퍼시픽은 지난해 12위로 5계단 내려앉았다.

문제는 J-뷰티의 성장이 K-뷰티의 설 자리를 더욱 좁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이유는 퀄리티에 있다. 트렌디함을 무기로 성장한 K-뷰티와 달리 J-뷰티는 장인정신으로 만든 제품을 쏟아내고 있어서다. 예를 들어보자. 일본 화장품 기업 코세의 경우, 코세(72년)ㆍ알비온(62년)ㆍ코스메 데코르테(48년) 등 장수 브랜드를 다수 보유하고 있다. 주력 품목도 미백ㆍ주름개선 등 고기능성ㆍ고부가가치 상품이다.

시세이도는 2015년 이후 ‘일본 1등에서 세계 1등’을 지향하는 중장기 성장전략 ‘VIS ION 2020’을 추진하고 있다. 럭셔리 브랜드 강화, 이커머스 투자, 해외 브랜드 M& A(로라 메르시에ㆍ나스 등)를 이어왔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 논란으로 하락세를 걷던 일본 화장품이 J-뷰티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면 트렌드만을 좇던 K-뷰티는 역풍을 맞고 있다. 마유크림ㆍ달팽이크림ㆍ마스크팩 등 ‘뜬다’하는 제품에 너나 할 것 없이 뛰어든 탓에 브랜드 차별화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김주덕 성신여대(뷰티산업학) 교수는 이렇게 지적했다. “트렌디한 제품의 인기는 길어야 2년밖에 가지 못한다. 한국 화장품은 사용감 면에서는 해외 선진 브랜드와 큰 차이가 없지만 미백ㆍ주름 등 기능성 면에서는 여전히 격차가 크다. 갭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연구ㆍ개발(R&D)에 적극 투자하지 않으면 K-뷰티는 단기간 내에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본다.”

경영컨설팅 업체인 트렌드랩506 이정민 대표도 우려를 표했다. “중국 현지 조사를 나가보면 중국인들이 일본 브랜드를 더 높이 평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서 “한국 브랜드는 트렌드에 민감하고, 가성비가 좋다고 생각하는 반면 일본 브랜드는 기능성이 뛰어나고,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중국 화장품 시장이 성숙 단계에 접어든 만큼, 혁신적인 기능성 제품을 개발하는 등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덧붙였다.

예견됐던 K-뷰티 하락세

아울러 한류 열풍에 올라탄 마케팅 방식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16년 SK-II가 선보인 광고 캠페인은 좋은 예다. SK-II는 ‘결혼 대신 꿈을 선택하는 골드미스’를 콘셉트로 광고 캠페인을 벌여 반향을 일으켰다. 중국에서 급증한 고소득 미혼여성의 니즈를 캐치해 성공을 거둔 셈이다.[※참고 : SK -II는 미국 P&G에 인수됐지만 일본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정민 대표는 “그동안 한국 화장품 브랜드들은 한류 연예인을 앞세운 천편일률적 마케팅을 펼쳐왔다”면서 “한류 의존도를 낮추고 더욱 현지화한 마케팅을 펴야 한다”고 말했다.

여기저기서 시그널이 울리고는 있지만 K-뷰티는 여전히 건재하다. 지난해(39억2400만 달러)에 이어 올해도 사상 최대 수출 실적을 갈아치울 전망이다. 하지만 지금이 넥스트 K-뷰티로 도약하기 위한 골든타임이라는 것도 분명하다.
이지원 더스쿠프 기자  jwle11@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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