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걸의 有口有言] 춘풍추상
[윤영걸의 有口有言] 춘풍추상
  • 김미란 기자
  • 호수 317
  • 승인 2018.12.11 05: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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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용은 아군 아닌 정적政敵에게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기강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사진=뉴시스]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기강 해이 문제가 도마에 올랐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사진=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월 ‘춘풍추상春風秋霜’을 언급하며 비서관실에 액자를 선물했다. ‘남에게는 봄바람처럼 따뜻하게 대하되, 자신에 대해서는 가을서리처럼 차갑고 엄격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 액자는 청와대 비서동인 여민관에 걸려있다.

현 정부는 출범 후 줄곧 과거 정권의 적폐ㆍ부정부패청산에 주력해왔다. 전직 대통령 두명을 감옥에 보내고 대법원 수장까지 칼끝을 겨누고 있다. 중국의 문화혁명이 떠오를 정도로 대변혁기라고 할 만하다. 이런 작업이 성공을 거두려면 스스로에게 얼음장처럼 엄격해야 한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신과 측근에게 가혹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

그러나 현 정부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민정수석실 산하 반부패비서관실 특별감찰관 비위 의혹과 관련해 야당으로부터 책임론이 제기된 조국 민정수석에 대한 신뢰를 분명히 했다. 민정수석실은 검찰ㆍ경찰ㆍ감사원ㆍ국가정보원 등 권력기관을 관장하고 여권의 공직기강, 측근비리를 점검하는 등 정권의 사활이 걸린 민감한 업무를 맡는 조직이다.

그런 업무를 최일선에서 담당하는 특감반의 한 직원 비위가 불거진 뒤 이 직원의 폭로로 직원들이 집단으로 골프를 치고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과학정보통신부 장관에게 직접 자신의 인사를 청탁했다는 말도 나온다. 조사 과정에서 일부 직원이 요구받은 휴대전화 제출을 거부하는 항명까지 나왔다. 평소 민정수석실의 기강 해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데도 민정수석의 잘못이 없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들어 국회 청문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는데도 임명을 강행한 장관이 무려 8명이다. 공직배제 원칙으로 문재인 정부는 병역기피, 세금탈루, 부동산ㆍ주식투기, 위장전입, 논문표절 등 5대 비리에 음주운전과 성범죄를 더해 7대 비리로 확대하면서 세부탈락기준은 낮춰준 바 있다.

대법관과 헌법재판관 후보 5명이 22차례나 위장전입을 했다. 일반인은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의 투기꾼 수준이다. 위장전입을 여러번 했던 대법관 후보자 중 한명은 과거 재판을 하며 위장전입 혐의 피고인에게 실형을 내리기도 했다.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이런 사람들을 사전에 제대로 거르지 못한 민정수석의 책임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세계 각국을 다니며 자신들이 ‘포용정부’라고 선전한다. 그러나 포용은 정적政敵에게 하는 것이지 아군에게 하는 게 아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통령이라면 넘어야 할 다섯 가지 고개가 있다고 말했다. 첫째가 여소야대의 정치지형이며 둘째는 동과 서로 갈라진 뿌리 깊은 지역감정이고, 셋째는 정치언론의 공세이고, 넷째는 여당 권력이라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면서 지지세력이 이탈하자 여당 내부에서의 공격으로 힘들어 했다. 다섯 번째는 조그만 틈만 보이면 주인(대통령)을 물어뜯으려는 야수와 같은 권력기관을 들었다. 노 전 대통령이 지적하지 않은 가장 중요한 게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신뢰다.

삼국시대의 제갈공명은 군령을 어긴 장수 마속의 목을 베며 울었다는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는 말을 남겼다. 아끼는 측근을 가혹하게 처벌함으로써 군사들의 신뢰를 얻으려는 포석과 다름없다. 공자는 “정치의 기본은 무엇입니까?”라는 제자 자공의 질문에 “경제, 국방 그리고 국민의 신뢰가 기본”이라고 대답한다. 자공이 두번째 질문에서 “3가지 중 부득이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망설임 없이 “국방을 버려야 한다”고 말한다.

자공이 “나머지 두가지 중 다시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또 묻자 공자는 “경제를 포기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공자는 국가의 기본인 국방이나 경제보다 국민의 신뢰를 가장 중요한 정치의 기본으로 생각했다. 백성의 신뢰가 없다면, 그 어떤 것도 존립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무신불립無信不立). 기원전 시대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가 놀랍다.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스스로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프리드리히 니체)”라는 말이 있다. ‘적폐청산’에 몰두하다 신뢰를 잃은 나머지 훗날 또다시 적폐청산의 대상으로 몰린다면 그건 국가적인 불행이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나오는 대사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너나 잘하세요.” 
윤영걸 더스쿠프 편집인 yunyeong0909@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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