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토픽’이 달랐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무산 위기에 몰렸다. ‘고용절벽 해소’ ‘지역경제 활성화’ ‘제품 경쟁력 강화’ 등 1석3조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이 사업이 실행에 번번이 실패하는 이유는 뭘까. 광주형 일자리의 롤모델 ‘독일 슈투트가르트 구상’을 살펴봤다. 눈에 띄는 차이점은 협상 테이블에 올라온 토픽이 달랐다는 점이다. 광주에선 지리멸렬한 노사 갈등이, 독일에선 ‘지역과 기업의 미래’가 테이블에 올라왔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슈투트가르트와 광주의 차이점을 냉정하게 짚어봤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슈투트가르트 모델에 착안해 설계됐지만 결과는 180도 달랐다.[사진=뉴시스]
광주형 일자리 사업은 슈투트가르트 모델에 착안해 설계됐지만 결과는 180도 달랐다.[사진=뉴시스]

광주시와 현대차의 합의로 타결 직전까지 갔던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무산될 위기다. 차량 35만대를 생산할 때까지 단체협약을 유예하는 내용이 문제였다. 신설법인 공장의 위탁 물량을 연 7만대로 합의한 것을 감안하면 5년간 임금ㆍ단체협약 협상을 열 수 없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노동계가 즉각 반발하고 광주시가 해당 조항을 수정하자 현대차가 “합의 파기”라면서 거부했다. 협상이 무기한 연기된 이유다. 


광주형 일자리는 정부 역점 사업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00대 국정과제에 관련 내용을 포함했다. 기업이 낮은 임금으로 노동자를 대거 고용하는 대신, 정부와 지자체가 주거ㆍ문화ㆍ복지ㆍ보육 시설 등의 지원을 통해 저임금을 보전하는 방식이었다. ‘고용절벽 해소’ ‘지역 경제 활성화’ ‘기업 고비용 부담 완화’ 등의 효과가 기대되는 묘안이자, 청년실업 문제를 푸는 상생 모델로 주목받았다.

순탄하게 흘러갈 것 같던 이 사업이 좌초 위기에 몰린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 육성 성과를 대내외적으로 알리겠다며 투자협약식 일정을 잡았다가 연기한 것만 해도 이번이 두번째다. 2014년 윤장현 전 광주광역시장이 최초로 공약을 내걸고 이용섭 현 시장이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노ㆍ사ㆍ민ㆍ정이 그리는 그림이 각각 달랐던 게 문제였다. 그 때문인지 상생이 아닌 갈등만 증폭되기 일쑤였다. 

전문가들은 “고용절벽을 타개하기 위해 노사 양측 모두 대승적인 차원에서 한발씩 물러서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이는 원론적인 대안이다. 고용 유연화를 통해 제품 경쟁력을 갖추겠다는 게 현대차의 목표인데, 이게 노동계가 반대하는 ‘저임금 하향 평준화 경쟁’과 맞닿아있다. 한발 양보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는 거다. 

대안은 없을까. 이 사업의 닮은꼴이 독일에서 성공한 적이 있다. 슈투트가르트 모델이다. 애초 윤장현 전 시장이 벤치마킹한 것이 이 모델이다. 지방정부가 참여하는 가운데, 노사가 서로 양보하고 타협해 상생모델을 만들어 낸 사례다.

벤츠가 만들어진 도시로 유명한 슈투트가르트는 1990년대 초 경제위기에 처했다. 수출 제조업 중심의 산업구조를 갖추고 있던 이 지역의 수출량이 해마다 줄면서 기업 투자가 감소했기 때문이었다. 

지역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슈투트가르트는 노사정협의회를 설립하고 긴밀히 공조했다. 그 결과, 2000년엔 독일 평균 경제성장률인 2%보다 훨씬 높은 4%를 달성했다. 실업률 또한 독일 평균 10%의 절반 수준인 5% 수준으로 낮췄다.

또 무산된 광주형 일자리

겉으로 볼 땐 광주형 일자리와 슈투트가르트는 다를 게 없다. 노ㆍ사ㆍ민ㆍ정이 협력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데 총력을 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당시 슈투트가르트 역시 기업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길 원했고, 노조는 이를 극렬히 거부했다. 하지만 반대만 하다가 운신폭이 좁아질 것을 우려한 슈투트가르트 노조가 대안을 제시하기 시작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노조가 직접 ‘새로운 제품 및 시장 전략 개발’ ‘첨단 기술개발 투자’ ‘노동자 재교육’ 등을 협상 테이블에 적극 꺼냈다. 노동 유연화 강도를 높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기업 스스로 혁신하라는 요구였다. 이런 전환이 지역사회의 호응을 얻었고, 슈투트가르트 모델은 성공 사례가 될 수 있었다.”

독일 자동차산업은 1990~1996년 사이 연구개발비가 50%나 증가했다. 재활용 소재, 연료절약, 소음이 적은 모터, 유해가스 방지 기술 등 친환경 제품개발에 많은 투자가 이뤄졌다. 슈투트가르트 단체협상 테이블에 임금 문제가 아닌 ‘노동 및 생산조직 합리화’ ‘교육 및 연구개발 분야’ 등이 주요 의제로 오른 결과였다. 

아쉽게도 광주형 일자리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부터 ‘연봉 4000만원짜리 일자리 1만개 창출’이라는 숫자에만 매달렸다. ‘주 44시간 근무’ ‘단체협약 5년 유예’ ‘지분참여 비율’ 등이 주요 협상 내용이었다. 혁신은 오히려 후퇴했다. 협상 초반엔 ‘수소차’ ‘전기차’ 등 첨단 친환경차가 거론되더니 올 4월엔 소형 전기차, 최근엔 1000cc 경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바뀌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경형 SUV는 가격 민감도가 높아 대량 판매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만드는 것 자체가 손해일 수 있다”면서 “판매량이 연간 14만대에 불과한 국내 경차 시장도 갈수록 좁아지고 있어 (경차) 수요가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꼬집었다. 광주형 일자리가 진통을 겪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무엇보다 정치권의 관심은 표票밖에 없다. 기업은 저렴한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노동계는 기득권을 유지하는 게 최대 목표다. 슈투트가르트는 혁신모델의 현장으로 떠오르고, 광주는 노사간 세력다툼의 각축장으로 전락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동상삼몽 탓이다. 
김다린 더스쿠프 기자 quill@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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