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값싼 저주파 자극기는 공산품이었다
그 값싼 저주파 자극기는 공산품이었다
  • 고준영 기자
  • 호수 317
  • 승인 2018.12.12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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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기기 위협하는 공산품

“질병이나 상해를 진단ㆍ치료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기기.” 의료기기법에 명시된 의료기기의 사용목적이자 정의다. “공업적인 과정을 통해 만든 생산물.” 공산품의 정의다. 그렇다면 두 제품의 원리ㆍ사용방법ㆍ기능이 모두 동일한데, 사용목적만 다르다면 어떨까. 가령, ‘근육통 완화’와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의료기기와 거의 유사한 제품을 사용목적만 살짝 바꾼 채 공산품으로 팔고 있는 곳이 숱하다. 더스쿠프(The SCOOP)가 의료기기 위협하는 공산품의 현주소를 취재했다. 

가정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성장을 가로막는 공산품이 혼재해 있어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가정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들 사이에서 곡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성장을 가로막는 공산품이 혼재해 있어서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의료기기 시장의 성장세가 부쩍 가팔라졌다. 시장조사기관 BMI 에스피콤에 따르면 지난 5년간(2012~2017년) 세계 의료기기 시장은 14.5% 커졌는데, 앞으로 4년(2017~2021년) 동안은 25.2% 성장할 전망이다. 국내 의료기기 시장도 2012~2016년 4조5923억원 규모에서 5조8733억원(증가율 27.9%)으로 크게 성장했다(식품의약품안전처 통계).

여기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세계 각국의 고령화가 시작된 데다 신흥국들이 경제적으로 성장해 의료 서비스의 수요가 늘었기 때문이다. 웰빙 바람이 불고 스마트 헬스케어 시대가 도래하면서 가정용 의료기기를 향한 관심도 급증했다. 의료기기 산업이 미래 먹거리로 손꼽히는 건 이런 흐름이 갈수록 확대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숱한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곡소리도 끊이지 않는다. 특히 가정용 의료기기를 만드는 중소기업 중에는 도산 위기에 처한 곳도 적지 않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가정용 의료기기 업체의 한 관계자는 “의료기기들이 의료기기가 아닌 공산품과 경쟁해야 하는 아이러니한 시장 구조 때문에 죽을 맛”이라면서 “이런 구조가 의료기기 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고 토로했다. 

이를테면 유사한 제품을 한쪽에선 공산품으로, 다른 한쪽에선 의료기기로 팔고 있는 탓에 골치가 아프다는 건데, 실제로 그럴까. 식약처 관계자는 “의료기기는 (공산품과) 정의가 다르고, 사용목적이 다르다”면서 “의료기기와 공산품은 같지 않다”고 강하게 반박했다. 간혹 공산품을 의료기기로 둔갑해 파는 경우(올 상반기 적발건수 1164건)는 있지만 비슷한 제품을 공산품과 의료기기로 판매할 순 없다는 거다. 

식약처의 말처럼 공산품과 의료기기의 정의는 다르다. 의료기기법에 따르면 의료기기는 ‘질병이나 상해, 장애를 진단ㆍ치료하거나 임신을 조절할 목적으로 사용되는 제품’을 말한다. 반면, 공산품은 ‘공업적인 과정을 통해 만든 생산물’을 뜻한다. 

사용목적 다르면 공산품도 OK

하지만 이런 기준은 다소 애매하다. 사용목적만 다르면 된다는 뜻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약처의 주장과 달리 이런 허점을 교묘하게 이용한 제품은 숱하게 많다. 가령, 가정용 의료기기인 저주파 자극기를 보자.

시장엔 ‘저주파 자극기’라는 이름으로 팔리는 의료기기와 공산품이 엄연히 존재한다. 제품설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는 내용만 보자면 두 제품은 기능부터 사용방법까지 거의 동일하다. 사용목적만 다를 뿐이다. 의료기기로 등록된 제품의 사용목적은 ‘근육통증 완화’인 반면, 공산품은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것’이다.[※참고 : 의료기기는 ‘의료기기입니다’고 명시돼 있거나 광고심의필 마크를 달고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의료기기도 적지 않다. 소비자가 일일이 확인하기는 쉽지 않다.] 

문제는 소비자들의 인식에 두 제품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공산품을 구매한 소비자들의 사용한 후기만 봐도 “저주파 치료기 좋다” “병원 가서 물리치료 할 필요 없다” “매일 물리치료 할 수 있어서 좋다”는 식의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저주파 자극기뿐만이 아니다. 고주파 주름개선 의료기기, 파라핀 용해기, 온구기(쑥뜸기), 보청기 등 의료기기에서 명칭이나 사용목적만 살짝 바꾼 공산품이 숱하게 많다. 심지어 한 업체에서 같은 제품을 공산품과 의료기기 두가지로 출시하는 경우도 있다. 공산품과 의료기기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이런 시장 구조가 의료기기 업체들에 불리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에선 “제품에 자신이 있다면 경쟁해서 이기면 되지 않느냐”고 지적할지 모른다. 하지만 의료기기는 의료용 목적으로 사용되는 만큼 까다로운 규제를 받는다. 
 
일례로 생산시설은 의료기기를 제조하기에 적합한지 품질심사(GMP)를 받아야 한다. 한번 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끝이 아니다. 3년마다 정기심사를 받아야 한다. 생산시설 심사 이후엔 개별 제품의 인증 절차를 밟는다. 업체는 의료기기의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하는 문서를 제출하고 심사를 받아야 한다. 임상시험이 필요한 의료기기라면 절차는 더 복잡해진다. 의료기기를 출시하기 위한 금전적ㆍ시간적 비용 부담이 크기 때문에 제품 단가가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뿐만이 아니다. 출시 이후에도 식약처로부터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받고, 재심사 과정도 거친다. 광고도 깐깐한 심의를 거쳐야 한다. 가령, 의료기기의 성능을 암시하는 기사나 사진을 사용하면 안 되고, 의사ㆍ한의사 등이 의료기기의 효과를 보증ㆍ추천해서도 안 된다. 

반면 공산품은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롭다. 같은 제품을 만든다면 가격경쟁력이 높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우위에 설 수 있다는 거다. 실제로 같은 품목의 공산품과 의료기기는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5배 이상까지도 가격차이가 난다.

그럼 의료기기 업체들도 공산품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무작정 전환하기엔 리스크가 많다”고 설명한다. 한 의료기기 업체 관계자는 “본사나 공장이 해외에 있는 회사나 수입업체들은 제품에 문제가 생겼을 때 폐업하고 잠적하면 그만이지만 시설이 국내에 있는 곳들은 그러기가 쉽지 않다”면서 “사실 그런 업체들은 장기적으로 사업을 하기보다는 단기적으로 한몫 잡으려는 곳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공산품을 판매하는 곳들은 대다수가 중국에서 생산된 OEM(주문자상표부착) 제품을 들여온다. 리스크가 낮은 데다 단가를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인 셈이다.

 

의료기기를 생산하려면 까다로운 입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사진=뉴시스]
의료기기를 생산하려면 까다로운 입증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크다.[사진=뉴시스]

또다른 업체 관계자는 “공산품으로 바꾸는 것도 비용”이라고 설명했다. “이미 의료기기로 인증을 받았는데 다시 공산품으로 바꾸려면 추가로 드는 마케팅 비용도 만만치 않다. 게다가 수출을 염두에 두고 있으면 어차피 인증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최근 공산품으로 바꿔 팔거나 수입업체로 전환하는 의료기기 (제조)업체들이 늘고 있는 건 사실인데, 여기엔 어차피 수출은 어렵고, 안 되면 폐업한다는 식의 자포자기 심정이 담겨 있다.”

이는 소비자에게도 좋을 게 없다. 공산품은 안전성을 철저하게 검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저주파 자극기를 예로 들어보자. 의료기기로 등록된 제품은 의료기기 제조업 허가증과 의료기기 제조 인증서를 받고, 식약처로부터 안전성과 효과를 입증한 기술문서를 심사받는다. 반면 공산품은 국립전파연구원으로부터 방송통신기자재 등의 적합등록 필증을 받은 게 전부다.

안전성 담보하지 않은 공산품


문제는 이 인증서가 안전성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국립전파연구원 관계자는 “인증을 받기 위한 테스트는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제품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다른 기계에 영향을 주는지와 외부 전자파로부터 영향을 얼마나 받는지를 검사하고, 둘째는 인체보호기준에 적합한지 점검한다”면서 “하지만 해당 제품(저주파 자극기)은 두번째 테스트를 거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저렴한 가격의 공산품은 의료기기 업체의 성장을 가로막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않은 제품은 시장의 존폐 여부를 위협한다. 중소 의료기기 업체들이 장밋빛 전망에도 활짝 웃지 못하는 이유다. 정도를 걷는 기업들이 되레 손해를 보는 의료기기 시장, 이젠 손봐야 할 때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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