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회의 영화로 읽는 한국사회 | 더 씬 레드라인 ❶

‘더 씬 레드라인(The Thin Redline)’은 ‘영상의 철학자’로 불리는 테렌스 맥릭(Terrence Malick) 감독의 1998년 작품이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1943년, 지금의 솔로몬 제도인 태평양의 섬 ‘과달카날’에서 벌어진 미군과 일본군의 처참했던 전투를 배경으로 영화가 펼쳐진다.

인간의 본성인 맨 얼굴은 대개는 난폭하고 공격적이고 탐욕스럽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인간의 본성인 맨 얼굴은 대개는 난폭하고 공격적이고 탐욕스럽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과달카날 전투’는 미군과 일본군이 태평양에서 벌인 가장 처참했던 전투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주민이 10만명도 안 되는 거제도만 한 평화로운 섬 과달카날에 미군과 일본군이 들이닥쳐 3만명이 죽어나간다. 미군 6만명이 투입돼 7000명이 전사하고, 일본군은 19만명이 투입돼 약 2만명이 전사하는 지옥도가 펼쳐진다. 과달카날섬은 태평양의 천국으로 불릴 만큼 아름다운 ‘꽃 피고 새 우는 지상낙원’ 같은 곳이다. 에덴동산과 같던 이 섬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살육전은 백설 위에 흩뿌리는 핏방울처럼 보는 이들에게 전율을 불러일으킨다.

미군과 일본군이 가장 야만스럽다는 백병전을 벌이면서 서로 죽고 죽이는 모습을 나무 위의 원숭이들이 무표정하게 굽어본다. 알록달록한 열대의 아름다운 새들이 나뭇가지 사이를 날고 지저귀는가 싶더니 그 숲으로 포탄이 쏟아진다. 아직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어린 새가 피투성이가 돼 꿈틀대며 죽어간다. 포탄이 터지고 살점이 흩어지는 가운데 나뭇잎 사이로 번지는 햇살과 하늘은 평소처럼 너무나 아름답다.


자연과 대비해 보여주는 인간들의 짓거리는 더욱 끔찍하다. 과달카날의 모든 아름다운 자연은 분명 신의 창조물이지만 인간은 결코 신의 창조물도 아니고 당연히 자연의 일부가 될 자격도 없는 그저 자연생태계의 치명적인 바이러스쯤으로 보인다.

인간의 초월성, 영혼, 자연, 그리고 이성과 원초적 본능 사이의 갈등에 대해 철학적으로 천착穿鑿하는 영화 작업을 진행하는 맬릭 감독은 이 영화에서도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영화세계를 보여준다. 전체적으로 대중의 기호나 흥행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듯 불친절하다. 시종일관 세상의 종말을 예고하는 어느 선지자의 목소리와 같은 침중한 내레이션이 장면들을 정리한다. 임종을 앞둔 환자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듯한 넋두리나 세상을 향한 냉소처럼 들리기도 한다. 등장인물들의 성격 묘사나 스토리의 구성에도 별 흥미가 없어 보인다. 썩 대중적이지 못하다.

이런 불친절한 전쟁영화가 흥행의 마법사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1998년 동시에 개봉됐으니 그 결과는 불문가지다. 아카데미상 7개 부문 후보에 오를 정도로 작품성을 인정받고 평론가들에게는 환호를 받았으나 흥행은 예상대로 ‘폭망’이었다. 많은 경우 평론가들의 찬사는 흥행의 재앙으로 귀결되곤 한다.

‘더 씬 레드라인’은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가 배경이다.[사진=더스쿠프포토]
‘더 씬 레드라인’은 2차 세계대전 중 벌어진 ‘과달카날 전투’가 배경이다.[사진=더스쿠프포토]

맬릭 감독은 영화 전편을 통해 전쟁이 얼마나 인간을 타락하고 피폐하게 만드는지 끊임없이 보여준다. 그는 또한 우울해하고 개탄해 마지 않는다. 어쩌면 맬릭 감독의 인간관이나 세계관은 ‘인간이란 본래 과달카날섬의 자연과 같이 아름다운 것인데 전쟁이 인간을 악마로 만든다’고 믿는지도 모르겠다. 인간이 아니라 전쟁에 이 모든 지옥의 책임을 묻는 것 같다. 전쟁만 없어지면 인간은 과달카날섬의 자연처럼 아름답게 살 수 있는 존재일까.

고대 그리스 스토아학파의 대표 철학자인 에픽테토스(Epiktetos)는 맨 얼굴을 드러낸 인간의 위험성을 말한다. 그리스 로마의 배우들은 우리나라 가면놀이처럼 가면을 쓰고 연기를 했다고 한다. 만약 배우가 개인적으로 슬프거나 고통스러울 경우 웃는 연기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배우가 조용필의 노래가사처럼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면 어찌하겠는가.

배우들이 쓴 이 가면을 ‘페르소나(persona )’라고 했다. ‘사람(person)’의 어원이다. 에픽테토스는 인간이란 ‘맨 얼굴’과 ‘가면을 쓴 얼굴’ 이렇게 두개의 얼굴을 가진 존재로 파악한다. 인간의 본성인 맨 얼굴은 대개는 난폭하고 공격적이고 탐욕스럽다. 그러므로 배우처럼 가면을 쓰고 자신의 본 모습을 감춘 채 주어진 ‘역할’을 하며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에픽테토스는 “너희들이 가면을 쓰고 살고 있음을 잊지 말라. 함부로 가면을 벗지 말라”고 경고한다. 

‘페르소나(persona)’의 본래 뜻은 배우들이 쓴 가면이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페르소나(persona)’의 본래 뜻은 배우들이 쓴 가면이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우리는 흔히 “인두겁을 쓰고 어찌 그럴 수가 있냐”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하고 또 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인두겁’이 아마도 에픽테토스가 말한 페르소나와 같은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영화가 보여주는 전쟁의 참상은 인간이 가면을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낸 모습이 아닐까.

오늘도 여기저기서 정치인, 교육자, 목사의 페르소나를 쓴 사람들이 자신들의 페르소나를 벗어던지고 맨 얼굴을 드러낸 사건사고들이 전해진다. 에픽테토스의 우울한 경고가 마음에 와 닿는 요즘이다. “우리가 가면을 쓰고 산다는 것을 명심하고 함부로 가면을 벗어 던지면 안 된다.”
김상회 정치학 박사 sahngwhekim535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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