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하는 조선업

조선 불황이 극에 달했던 2016년. 업계 안팎에선 독자생존 가능성이 낮은 대우조선해양을 매각하고 빅2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하지만 정부는 대우조선해양에 산소호흡기를 붙였고, 빅3 체제는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문제는 여전히 빅3 체제론 성장 가능성에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최근 대우조선해양 매각 이슈가 불거지면서 한국 조선은 또다시 빅2와 빅3의 갈림길에 섰다. 이번엔 어떨까. 더스쿠프(The SCOOP)가 격변하는 조선업의 생태계를 분석했다. 

대우조선해양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매각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이 빠른 회복세를 보이면서 매각 작업에도 속도가 붙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사진=연합뉴스]

2015년 10월. 대우조선해양 채권단은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하면서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 시기를 2019년으로 내다봤다. 그로부터 3년여 대우조선은 여전히 정상화와는 거리가 멀다. “정상 궤도에 올랐다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회복세가 빠른 건 사실”이라는 평가가 냉정한 현주소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5년간 이어져온 적자순환의 고리를 끊었고, 올해는 나쁘지 않은 수주실적을 쌓았다. 정성립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지난 11월 열린 간담회에서 “2019년엔 (목표로 세운) ‘작지만 단단한 회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한 데에도 정상화가 임박했다는 판단이 담겨있다. 

대우조선해양의 정상화를 향한 기대감이 흘러나오자, 국내 조선업의 주요 화두인 빅2 체제 재편 이슈도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대우조선해양이 정상화하면 최종 목표인 ‘매각’ 작업에 속도를 낼 테고,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은 빅2 체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에서다. 빅2 체제로 재편한다는 건 현대중공업ㆍ삼성중공업ㆍ대우조선해양으로 대표되는 빅3를 두개 기업으로 통폐합하겠다는 얘기다. 가령, 대우조선해양을 청산하거나,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 중 한곳과 합병한다는 거다. 

뜬금없는 얘기가 아니다. 정 사장은 줄곧 빅2 체제 재편 가능성을 염두에 뒀고, 앞선 간담회에서도 “세계 조선업계의 수요와 공급 등 시장상황을 볼 때 국가의 산업경쟁력 측면에서 빅2 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과 산업 재편을 주도할 정부 부처는 말을 아꼈지만 전문가들은 빅2 체제 재편 가능성에 무게를 뒀다. “과거 산업통상자원부는 빅2 체제 재편을 주장했다. 최근 기업 구조조정에 있어 산업 논리가 중요해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우조선해양의 매각 방향이 빅2 체제 재편 쪽으로 진행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엔 한가지 의문부호가 따라붙는다. 빅3냐 빅2냐는 정부나 채권단이 아니라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 아니냐는 점이다.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성장하고, 그렇지 않은 곳은 도태되도록 자연스러운 흐름에 맡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렇다면 기존의 빅3 체제를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부터 살펴보자. 가장 큰 이유는 세계 조선 시장의 분위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점이다. 2000년대 초중반 조선 호황을 불러왔던 중국의 경제성장이 꺾이고, 글로벌 경기가 둔화화면서 시장 규모가 크게 축소됐다. 

일례로 세계 조선업계에 훈풍이 불던 2007년 9200만 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에 달했던 글로벌 발주량은 지난해 2558만 CGT로 쪼그라들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오는 2021년 발주량 전망치가 3500만여 CGT에 불과하다(클락슨 리서치 통계). 이런 맥락에서 빅3를 유지해선 되레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출혈경쟁을 유발해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거다.  

물론 시장의 변화에 따라 자연스럽게 빅3에서 빅2로 재편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한차례 타이밍을 놓쳤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산업이 불황을 겪으면 자연스럽게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몸집이 줄거나, 도산 절차를 밟는다”면서 “하지만 국내 조선업은 정부의 인위적인 간섭 때문에 정상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억지로 산소호흡기를 붙여 기업생명을 연명시킨 탓에 자연스럽게 빅2 체제로 재편됐어야 할 산업이 빅3 체제로 이어져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조선업을 빅2 체제로 재편해야 한다는 건 새로운 주장이 아니다. 조선업 불황이 극에 달했던 2016년 초 “한국 조선이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선 빅3 체제를 빅2로 재편해야 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이 주장은 그해 8월 글로벌 컨설팅업체 맥킨지가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선 양사 체제로 가는 게 바람직하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면서 본격 부각됐다. 이에 공감하는 목소리는 적지 않았고, 채권단 관리를 받고 있던 대우조선해양이 청산 절차를 밟을 거란 전망이 쏟아졌다. 

 

2015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반론이 적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2015년 산업은행이 대우조선해양에 공적자금을 투입할 때 반론이 적지 않았다.[사진=연합뉴스]

하지만 정부와 채권단은 청산 대신 4조2000억원의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시간과 돈을 들여 정상화한 뒤 매각하면 경제적 피해규모를 줄일 수 있을 거란 금융논리였다. 대우조선해양은 가까스로 청산 위기에서 벗어났고, 그후 수조원의 공적자금이 추가로 투입됐다. 대우조선해양의 회복세와 달리 세계 조선 시장의 전망은 아직 어둡다. 국내 조선업이 빅2 체제로 재편돼야 한다는 주장이 여전한 이유다. 

문제는 현시점에서 빅2 체제로 재편하는 게 쉽지 않다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매각을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은 방산 분야다. 일단 방산 분야는 보안 문제가 걸려 있어 해외 기업에 매각하는 건 불가능하다. 국내 기업에만 매각해야 한다는 건데, 빅2 체제로 재편하기 위해선 선택지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만 남는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과 마찬가지로 방산 분야가 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방산 분야를 독점하게 된다는 거다. 업계 관계자는 “방산 업체를 여러 곳 두는 것은 서로 경쟁시키고 기술개발을 촉진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의 방산 분야를 인수하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참고 : 국내 조선사들 중 방산 분야 사업을 하는 곳은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 강남조선 등 4곳이다. 그중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규모가 큰 배를 만들고, 한진중공업과 강남조선은 작은 배를 만든다.]

그렇다고 방산 분야만 따로 떼어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자구안이 나올 당시엔 방산 분야를 분리할 계획이었는데 안하는 걸로 결정됐다”면서 “한 조선소 안에 있어서 떼어내기도 힘든 데다, 설사 독립시킨다고 해도 공장 설비를 다시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방산 분야가 없는 삼성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는 데 무리가 없다. 하지만 삼성중공업의 수주목표 달성률은 지난 10월 기준 59.8%. 빅3 중 가장 저조한 실적을 기록하며 추가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인수가능성이 낮다. 

김영훈 경남대(조선해양시스템공학) 교수는 “시장 규모가 축소되는 상황에서 빅2 체제 재편은 고정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면서 “(빅2 체제로 재편할 수 없다면) 인력ㆍ설비를 줄이고 건조 능력을 축소하는 방향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정부가 표면적으로는 빅2 체제 재편을 주장하지만 사실상 의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점도 문제”라면서 “모호한 제스처를 취하다가, 시황이 좋아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손 떼는 게 부지기순데, 정리를 하려면 확실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준영 더스쿠프 기자 shamandn2@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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