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실패했다.” 출범한 지 1년 반을 넘긴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놓고 이런 비판이 쏟아진다. 정치적 노선을 달리하는 이들의 편협한 주장이 아니다.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현 정부를 지지한 경제학자들도 날선 비판을 하고 있어서다. 뭐가 잘못된 걸까.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정책의 순서를 바꾸라’고 조언했다. 그는 대표적인 진보 경제학자다. 더스쿠프(The SCOOP)가 그를 만났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해야 정책도 통한다”고 지적했다.[사진=천막사진관]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정한 경쟁구조를 만들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토대를 마련해야 정책도 통한다”고 지적했다.[사진=천막사진관]

올 초만 해도 70%대를 넘나들던 문재인 정부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50% 밑으로 떨어졌다. 원인이야 숱하게 많겠지만 신통치 않은 경제 성적표가 지지율 하락에 영향을 미친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지지기반이던 젊은 층까지 등을 돌리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올해 1월만 해도 30~40대에서 평균 78%(한국갤럽)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지만, 1년이 지난 12월엔 56%까지 떨어졌다.

소득주도 성장론, 최저임금 인상 모두 서민이나 저소득층을 위한 정책임에 분명한데, 정책 수혜자들까지 등을 돌리는 이유는 뭘까. 지난 11월 22일 한국개발연구원(KDI)과 한국경제학회가 공동 주최한 ‘경제 패러다임 전환과 한국경제의 미래 정책세미나’에서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강하게 비판한 박상인 서울대(행정대학원) 교수를 만나 그 이유를 들어봤다. 

✚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이 많은 비판을 받는다. 기본 방향이 틀렸나.
“아니라고 본다. 현 정부가 출범 당시 말한 것처럼 큰 틀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로 잡고 있다. 방향성은 잘 잡았다.”

✚ 소득주도 성장론을 ‘이론적 근거도 없는 비주류들의 주장’이라고 깎아내리는 이들도 많다. 
“그렇지 않다. 소득주도 성장의 등장 배경은 임금주도 성장이다. 임금주도 성장은 아이디어는 ‘비주류 경제학’의 전유물이 아니다. 가처분소득을 조정해 소득불평등을 완화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포용적 성장’ 정책,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경제자문을 하던 시절 주창한 ‘최저임금 인상’ 정책 모두 소득주도 성장에 기초하고 있다.”

✚ 각각의 소득주도 성장 정책엔 어떤 차이가 있나.
“임금주도 성장의 전제는 임금이 시장에서 결정되지 않고, 시장 참여자의 힘(파워)에 의해 결정된다는 거다. 반면 OECD 국가들의 포용적 성장 정책은 임금이 시장에서 결정된다고 인정하면서 재분배정책을 통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고 있다. 재분배정책을 통해 저소득층의 가처분소득이 증가하면 구매력이 상승해 경제가 선순환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임금을 올려주면 노동생산성이 늘어나 전체 생산성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주장은 어떤 건가.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최저임금을 끌어올리면 이를 감당하기 힘든 한계기업들은 문을 닫고, 일거리가 줄어든다. 구조조정이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자본과 노동력이 생산성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전체적으로 보면 생산성 낮은 한계기업들을 압박해 산업의 질을 개선하고, 나쁜 일자리는 좋은 일자리로 바꿀 수 있다는 얘기다. 바로 이것이 장하성 전 청와대 정책실장이 강조한 분수효과다.”

 

✚ 이론이야 어쨌든 재분배가 잘 돼서 구매력이 생긴 것도 아니고, 분수효과가 나타지도 않았다.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
“순서가 잘못된 탓으로 본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큰 틀은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다. 집권 초기부터 소득주도 성장을 얘기하면서 최저임금을 올렸고, 이제 혁신성장을 하겠다고 한다. 혁신성장이라 해봐야 박근혜 정부가 창조경제 운운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공정경제다.”

경제력 집중 문제부터 풀어야

✚ 공정경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토대를 먼저 만들어야 최저임금을 올리든 혁신성장을 하든 그 효과가 나타날 것 아닌가. 예컨대 최저임금 인상의 압박을 받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그들과 함께 일하던 노동자가 또 다른 시장의 기회요인을 찾아 이동해야 경제가 활기를 띤다. 우리나라에선 그런 이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 기회 요인이 넘치는 시장이란 어떤 건가.
“획기적인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이 신시장을 개척하려 할 때 미국 같으면 시장(대기업)이 비싼 값에 그 기술력을 인수한다. 새로운 스타트업이 등장하는 동기를 부여하고 시장은 활기를 띤다. 그게 바로 기회요인이 넘치는 시장이다.”

✚ 우리나라는 다른가.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비슷한 제품을 싸게 팔아 스타트업을 눌러 없애거나 심지어 기술력을 탈취해간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창업을 그렇게 외쳐도 자영업자만 늘어난 이유다.”

✚ 공정경제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답은 하나다. 재벌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걸 막아야 한다. 이를 통해 시장에 기회요인을 늘려줘야 한다.”

✚ 경제력이 집중됐다는 건 무슨 의미인가. 
“우리나라 경제구조는 재벌 총수 일가 입맛에 맞게 ‘블록화’돼 있다. 이런 블록을 통해 일감을 몰아주거나 단가를 후려친다. 어느 쪽이든 경쟁이 일어날 수 없는 생태계다. 이런 곳에서 혁신이나 투자가 일어나겠는가.”

 

✚ 블록화된 시장은 대개 어떤 구조인가. 
“주로 B2B(기업 대 기업간 거래) 시장인데, 그 규모가 엄청나다. 이 시장은 새로운 참여자에게 기회를 주지 않는다. 반면 기득권을 독점한 대기업이 이익을 고스란히 챙겨간다.”


✚ B2C(기업 대 소비자간 거래) 시장도 있지 않은가.
“그렇다. 문제는 B2B 시장 규모가 워낙 크다는 점이다. 큰 문제점을 해결하지 않고 놔둔 채 앞서 말한 ‘분수효과’를 기대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최근 4차산업혁명을 이끄는 시장으로 주목받는 국내 스마트홈 시장의 B2C 시장 규모는  B2B 시장의 20~25%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시장에 5세대(5G) 이동통신 이슈는 넘쳐나지만, 이를 이용한 스마트홈 아이디어들이 쏟아져 나오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반도체ㆍ자동차ㆍ조선 등 한국경제를 좌우하는 산업들도 대부분 B2B 중심 구조다. 

✚ 둑을 무너트리면 터져나오는 물이 많을텐데, 그 물을 담을 공간이 없다는 얘기인가.
“그렇다. 재벌의 수직계열화나 전속계약, 일감몰아주기 등을 막아 B2B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그러면 경쟁이 일어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가진 이들이 시장에 뛰어들게 마련이다. 혁신은 거기서 일어나고, 노동력을 흡수할 토대가 마련되는 거다.”

✚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에 경제력이 집중되는 건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닥칠 수도 있을 것 같다. 
“경제력 집중은 자본주의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은 공정 경쟁을 막아 자본주의의 발전을 힘들게 만든다. 공정한 경쟁은 자본주의를 살찌우는 요인이다. 이건 내 의견만이 아니다.” 

✚ 근거가 뭔가.
“자본주의의 대명사인 미국을 보자.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오일ㆍ철도산업을 독점한 경제권력이 탄생했다. 미국인들은 이를 다원주의적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것으로 판단했고, 반독점법을 만들어 규제했다.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 경제권력은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병들게 한다. 이는 정치적 민주주의와도 맞지 않는다. 사실 우리나라 법에도 경제력 집중을 막기 위한 장치가 있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걸었지만 공정경제를 위한 발걸음은 내딛지도 못했다.[사진=연합뉴스]
문재인 정부는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를 내걸었지만 공정경제를 위한 발걸음은 내딛지도 못했다.[사진=연합뉴스]

✚ 어떤 장치인가. 
“1987년 헌법이 개정될 때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제119조)’라는 문구를 넣었다. 같은 시기 공정거래법에도 ‘기업결합의 제한 및 경제력집중의 억제(제3장)’를 넣어 개정했다. 민주화 과정에서 우연히 넣은 게 아니다. 올바른 자본주의 경제질서를 만드는 데 그런 것들이 매우 중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있어서 법에 명시한 거다. 그런데 지금 법에 명시된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전혀 그렇지 않다.”

✚ 경제를 일으키려면 경제력 집중을 막고 경쟁을 부추겨라, 이런 뜻인가. 
“그렇다. 경쟁이 없으면 자본주의도 없다. 일례로 1960년대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은 큰 미국 시장 안에서 경쟁을 하지 않았다. 신차라고 해봐야 앞뒤 라이트만 교체하고선 몇년식 모델이라며 내놨다. 그러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미국에 진출한 일본 자동차에 확 밀렸다. 일본 회사들은 현지에 공장을 짓고, 부품도 현지 조달했다. 그러다보니 미국과 일본의 부품사 경쟁이 일어났는데, 미국은 탄탄한 기본기를 활용해 빠르게 다시 성장했다. 그렇게 미국산 부품이 개선됐고, 미국차는 다시 좋아졌다. 이는 미국 시카고대학 비즈니스스쿨 교수들이 쓴  「자본가로부터 자본주의 구하기」라는 책에 등장하는 얘기다.”

✚ 지금까지 잘못된 재벌개혁이 이뤄졌다는 건가. 
“그동안 우리는 경제력 집중을 해소보다 ‘황제경영’을 막는 일에만 초점을 맞췄다.”

✚ 그 역시 경제력 집중 해소 아닌가.
“황제경영만 규제해서는 근본적인 구조를 바꾸지 못한다.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지 못하면 황제경영도 막을 수 없다.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 방법을 제시한다면. 
“앞서 말했던 것처럼 B2B 시장을 열어줘야 한다. 대기업의 수직계열화를 줄이고, 원ㆍ하청 간 동등한 계약관계가 가능해야 한다. 공정한 경쟁을 방해했을 때를 대비한 장치도 필요하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ㆍ강화,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 등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이익을 얻었을 때, 그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배상액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에서 원고의 증거 수집을 용이하게 하는 제도다. 법적 다툼 시 상대적인 약자의 증거확보를 돕는 효과가 있다.  

 

✚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해소하지 못하면 어떤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으로 보는가. 
“일단 구조적인 리스크가 점점 커진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삼성이나 현대차가 망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폭삭 무너진다”고 말하지 않는가. 물론 의견은 갈리지만 핵심은 실제로 삼성이나 현대차가 망하면 우리나라 경제가 큰 영향을 받는 건 분명하다는 점이다. 기업 하나가 무너지면 온 나라 경제가 휘청거리는 게 과연 정상인가.” 

✚ 대기업도 구조조정 해야한다는 건가. 
“현실을 보자. 총수 일가가 횡령을 해도, 부정부패를 저질러도, 심지어 자신이 지분 100%를 가진 경쟁력 없는 비상장사에 일감을 몰아줘서 모기업의 경쟁력을 갉아먹어도 ‘그래도 망하면 안 되니까 세금이라도 퍼부어서 살려야 되지 않겠나’라는 논리가 나온다. 정상적인 판단이 아니다.” 

✚ 대마불사大馬不死를 깨야 한다는 건가. 
“그렇다. 좀비 중소기업은 시장 논리 운운하면서 폐업을 시킨다. 하지만 대기업은 말 그대로 ‘불사不死’다. 이건 자본주의가 아니다.” 

✚ 지금 생각해보면 IMF 외환위기는 재벌 중심의 경제를 개혁할 절호의 기회였다. 
“그렇다. 우리는 그때 경제력 집중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빅딜’이라는 용어로 재벌을 더 크게 만들어버렸다. 빨리 회복하기 위해 살아남은 재벌끼리 덩치 큰 사업장을 주고받도록 하면서 경제력을 집중시킨 거다.”

✚ ‘매 정권이 재벌개혁을 외쳤는데 바뀐 게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당연하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재벌개혁이라고 말하면서 추진한 것들 가운데 근본적인 개혁, 경제력 집중 해소를 위한 노력은 단 한번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늘 말로만 하니까 국민들도 지치는 거다. 그러다간 진짜 재벌개혁을 할 기회조차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정말 되돌릴 수 없다.”

✚ 최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공정경제를 다시 꺼내들고 있는데 어떻게 보나. 
“그는 경제력 집중 해소를 얘기한 적 없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취임 후 가장 먼저 한 게 뭔지 생각해보라. 대기업이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휘어잡았다. 재벌개혁은 충분히 시간을 주고 천천히 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현 정부와 코드를 철저히 맞춘 거다. 이제 와서 공정경제를 실현하겠다는 말은 믿을 수 없는 공허한 말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맨 오른쪽)은 취임 후 “재벌개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사진=연합뉴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맨 오른쪽)은 취임 후 “재벌개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했다.[사진=연합뉴스]

✚ 재벌개혁, 말은 쉽지만 참 어려운 일이다. 
“맞다. 건드리기도 어렵고, 이해관계자들이 많아 정치적으로 조율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그런데 어렵다고 손을 놓고 쉬운 것만 하겠다고 해서야 되겠는가. 더구나 이번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에 의해 탄생한 정부 아닌가. 이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는 게 안타깝기만 하다.”

✚ 재벌개혁으로 경제가 더 나아질 거라 확신하는가. 
“물론이다. 아직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GNI)은 미국의 반도 안 된다. 그런데 왜 우리 스스로 성장이 정체된 걸 당연시해야 하는지 그것부터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더 성장할 수 있지만 성장을 못하게 막고 있는 뭔가가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자.” 제18대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와 함께 숱하게 거론된 얘기다. 운동장을 바꿔야 한다는 건데 ‘기울어진 운동장’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고, 그건 한국경제에 짐이 되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지금이라도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 자세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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