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편 제1장 여수❷

진남관과 여수 앞바다는 이순신을 중심으로 인재가 모이고 길러지는 보금자리가 됐습니다. 이곳에서 거북선이 만들어졌고, 곧 닥칠 전란에서 목숨을 바쳐 나라와 백성을 지켜낼 수군들이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순신의 기적적인 승리와 영광이 바로 이곳에서 태어난 것입니다.

실제 거북선은 농구장 절반 정도의 크기다.[사진=연합뉴스]
실제 거북선은 농구장 절반 정도의 크기다.[사진=연합뉴스]

거북선을 만들던 곳 : 선소 유적지
여수 선소는 배를 만들고 수리하는 ‘굴강掘江’, 글자 그대로 칼을 씻는다는 뜻의 ‘세검정洗劍亭’, 그리고 칼과 창을 만들던 대장간이 대표적인 유적지입니다. 세검정은 서울에도 있습니다. 인조반정을 주도했던 이귀, 김유 등이 광해군 폐위를 결의하고 칼을 씻었던 곳이지요. 이를 기념하기 위해 영조 때 정자를 짓고 그 이름을 세검정이라 했습니다. 주소는 서울시 종로구 세검정로 244입니다. 선소는 거북선을 만들고 수선하던 곳입니다. 거북선이 여기서 만들어졌을까 싶을 정도로 크기가 작습니다. 

거북선의 선체에서 후미를 뺀 길이는 약 28m 이하였습니다. 꼬리에 해당하는 후미를 포함하면 36m였습니다. 폭은 약 7m로 추정됩니다. 크기가 감이 안 온다면 농구 코트를 생각하면 됩니다. 농구장 표준 규격이 길이 28m, 폭 14m이니 거북선은 농구 코트의 절반 정도인 셈입니다.

그렇다면 거북선에는 몇명이나 들어갔을까요? 그 배의 가장 밑바닥에는 50여명의 격군노를 젓는 수군들이 있습니다. 그 위층에는 활을 쏘는 사수, 각종 총통을 다루는 포수, 신호수, 지휘관 등이 타고 있습니다. 이들을 모두 합치면 약 150명이 됩니다. 농구장 절반 크기에 15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 들어갈 수 있었을까요? 그 해답은 거북선 구조에 있습니다. 거북선은 2층 혹은 3층 구조였고, 당시 사람들은 현대인들보다 키가 작았습니다.

거북선 복원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습니다. 여기에 제 의견을 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거북선은 목선木船, 나무로 만든 배입니다. 거북선 지붕에 왜군들이 배에 올라타지 못하도록 쇠못이나 창칼을 꽂아 두었습니다. 그렇다고 거북선의 선체나 지붕을 철판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나무는 세월이 지나면 썩습니다. 전투 중에 불에 타서 잔해조차 남지 않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그림이나 문서 자료뿐인 이유입니다. 태종 이후에 만들어진 거북선은 시대나 상황, 또는 지역에 따라 모양이나 성능이 조금씩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사진 찍듯이 완벽히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물론 최대한 실물에 가깝게 복원할 수는 있습니다. 저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봅니다. 복원된 거북선은 당시의 기록대로 작동해야 하지 않을까요? 실제로 작동되는 거북선이 빨리 복원되기를 기원합니다. <다음호에 계속> 
장정호 교육다움 부사장 passwing7777@naver.com | 더스쿠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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