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리병원 세가지 환상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거다.” “의료의 질과 서비스가 개선될 거다.” “제주도에만 예외적으로 만드는 것일 뿐이다.” 제주도에 들어선 영리병원을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문제는 이런 주장이 단순한 거짓을 넘어 터무니없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점이다.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영리병원 설립 허가를 내준 이후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영리병원 설립 허가를 내준 이후 갑론을박이 끊이지 않고 있다.[일러스트=게티이미지뱅크]

지난 12월 5일 원희룡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중국 녹지그룹에 영리병원 설립을 허가했다. 국내 건강보험은 적용되지 않고, 외국인 대상으로만 진료하는 조건부 허가다. 효율성이 어쨌든 원칙을 저버린 결정이다. 도민과 국민들의 뜻을 반영하지 않고 정치적 결단을 내렸다.

전국에서 녹지국제병원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일 거다. 그런데 그 논박을 보고 있자니 상당수 사람들이 영리병원에 허상을 갖고 있는 것 같아 바로 짚어보고자 한다. 

영리병원의 정의부터 짚어 보자. 영리병원은 ‘영리법인병원’의 줄임말이다. 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해서 그 이익을 투자자가 가져간다는 뜻이다. 주식회사를 생각하면 쉽다. 일부 사람들은 지금도 국내 병원이 이익을 내고 있는데 무슨 차이냐고 하겠지만 분명히 다르다. 

법인격을 가진 ‘의료기관’은 병원 운영을 통해 얻는 이익을 외부투자자가 가져가지 못한다. 투자와 이익환수를 금지하고 있어서다. 의료의 공공성을 중요시 여겨 의료기관 개설 주체의 자격을 법으로 명시한 것이다. 

그런데 영리병원 설립을 주장하는 이들은 영리병원이 마치 비영리병원보다 훨씬 좋은 것인 양 떠든다. 과연 그럴까. 당연히 아니다. 환상일 뿐이다. 

영리병원의 첫번째 환상은 ‘국가나 지역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고 환상의 홍보물은 싱가포르다. 물론 싱가포르가 영리병원을 허용해 국가 수입을 올리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싱가포르는 제주도 절반 정도의 면적에 인구가 580만명에 불과한 도시국가다. 

 

우리나라는 싱가포르보다 면적은 수백배 더 넓고, 인구는 5000만명이나 되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경제 규모는 세계 10위권이다. 할 게 너무나도 많은 우리나라가 굳이 도시국가를 따라가려고 발버둥 쳐야 할 이유가 없다. 

제주도 지역경제를 살릴 것이라는 환상도 참담하기 짝이 없다. 48병상에 간호 인력을 포함한 의료진 58명, 행정인력 76명 등 134명이라는 수치가 과연 제주도 지역경제를 살릴 규모인지 묻고 싶다. 그 인력 중에 제주도민이 몇명일지도 궁금하다. 

설령 거기서 이익이 나온다고 제주도나  서귀포 시민들에게 온전히 돌아가지도 않을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파괴하고, 제주도의 자연을 망가뜨리면서 지역경제에 성냥불 수준의 도움을 줄 거라면 우리는 지금이라도 영리병원을 걷어치우라고 말해야 한다.

환상만 심는 영리병원

두번째 환상은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의 질 혹은 서비스를 높일 거라는 생각이다. 이야말로 중대한 오판이다. 영리병원을 통해 의료의 질을 높인 사례는 어디에도 없다. 이익을 좇다보니 필요한 인력을 감축해서 의료사고가 나기 쉽고, 환자 관리는 더 형편없다는 게 여러 나라의 경험이다.

싱가포르나 태국은 가뜩이나 부족한 의사들이 영리병원으로만 몰려 지방에 의사가 더 부족해지고, 의료의 질도 떨어졌다고 한다. 영국의 영리병원에선 심혈관센터, 응급실, 신생아실처럼 비용은 많이 들지만 수익이 적은 진료는 줄고, 고관절치환처럼 비용 대비 수익성이 높은 진료들만 판친다. 그나마도 수술 환자에게 합병증이 생기면 다른 병원으로 보내 버린다. 

미국만 봐도 비영리병원의 시설ㆍ장비ㆍ의료진이 영리병원보다 훨씬 훌륭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영리병원은 오히려 간호사를 덜 고용해 환자 관리가 잘 안 되고, 여러 부실로 유아 사망률이나 입원 환자 사망률이 더 높다는 통계도 있다. 영리를 좇아가다보니 학문적 성과나 서비스 만족도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영리병원의 단점은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영리병원의 단점은 숱하게 많다.[사진=연합뉴스]

세번째는 이번 녹지그룹의 작은 영리병원이 제주도 더 나아가 국내 보건의료체계엔 절대 영향을 주지 않을 거라는 환상이다. 물론 녹지국제병원은 규모가 작은 편이다. 하지만 잘되면(돈을 벌면) 규모를 키울 게 분명하고, 다른 지역에서도 영리병원 허용을 요구할 것이다.

게다가 의사들도 돈을 많이 준다는 영리병원으로 이직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은 의사 수가 부족해 건강보험 보장성이 60%를 겨우 넘는 수준이라는 걸 감안해도 의사들의 이동이 곧 필수 의료인력 부족을 심화시킬 거라는 건 자명하다. 나아가 민간보험을 통한 영리병원 이용이 증가하면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기둥인 국민건강보험에도 구멍이 생길 수 있다. 영리병원의 허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단지 큰 것들만 짚어 봐도 이 정도다. 

영리병원 설립 허가 취소해야

원희룡 지사는 “외국인 진료 중심이며, 국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는 선에서 영리병원을 허용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건강권에 대한 헌법 가치와 진료 거부를 불허한 의료법 등을 들고 나올 녹지병원 측과 어떻게 싸울 것인가. 차라리 영리병원의 허가를 반대한 공론조사위원회의 권고와 제주도민의 뜻에 따라 영리병원 취소를 결정하고 당장 비용이 들더라도 훗날의 더 큰 비용을 줄일 생각을 해야 한다. 

국민의 건강은 자본이나 불확실성과의 거래가 아니라 원칙을 지키는 선에서 출발해야 한다. 한 나라의 보건의료는 근본적으로 사회서비스이자, 공공재다. 따라서 투자자의 소득 극대화를 위해 지역경제 활성화라느니, 일자리 창출이라는 거짓말로 국민을 속여선 안 된다. 우리나라의 후진적 의료제도를 개선하고, 보장성을 더 강화하는 등 국민 건강을 위해 해야 할 일만 해도 태산이다.
글 : 고병수 한국일차보건의료학회 회장  bj971008@hanmail.net | 제이누리
정리 : 김정덕 더스쿠프 기자 juckys@thescoop.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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